자퇴 후
그즈음 새로운 시다가 한 명 들어왔다. 혜란은 신참이 들어와도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한 달도 못 채우고 그만두는 경우가 많아 굳이 정을 붙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은 좀 달랐다. 혜란과 동갑내기인 여자애가 들어온 것이었다. 동수엄마는 혜란에게 그 애..
17편|작가: 하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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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퇴 후
지독한 감기 몸살은 꼬박 열흘을 갔다. 겨우 기운을 차렸을 때는 어느새 연말이었다. 혜란은 밤 9시에서 10시까지 하는 FM 영화음악 애청자였는데, 연말 특집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영화음악 100선’은 특히 하루도 빼놓지 않고 들었다. 드디어 12월 31일, 최..
16편|작가: 하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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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퇴 후
집으로 돌아온 지 보름쯤 지나자 혜란은 슬슬 초조해졌다. 큰오빠 때도 그랬지만 아버지는 누가 됐든 집에서 놀고먹는 꼴은 절대 못 보는 사람이었다. 날씨 외에도 여러 가지 변수가 많은 노가다의 특성상 한 달이면 절반은 아버지도 일을 안 하면서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
15편|작가: 하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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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퇴 후
“이런 등신을 봤나! 그러면 십 원짜리 하나 못 받고 그대로 쫓겨났다 이 말이냐? 그 자리에 드러누워서라도 돈을 받아 갖고 기어 나와도 나와야 할 거 아니냐?” 어떤 일이건 혜란의 탓으로 몰아붙이는 엄마의 억지는 여전했다. 자다 깬 아버지는 혜란과는 눈도 안 마주치..
14편|작가: 하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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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퇴 후
혜란은 학교를 그만둔 지 5일 만에 직물 공장에 들어갔다. 이집 저집 다니며 수다 떨기를 좋아하는 동네 아줌마가 혜란이 자퇴했다는 소식은 또 언제 들었는지 일자리를 물고 찾아왔던 것이다. 혜란은 엄마가 어느 틈에 직장을 좀 알아봐 달라고 손을 써 놓았음을 눈치 챘다..
13편|작가: 하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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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다음날은 등교하자마자 서무실에 불려갔다. 서무 직원은 이번 토요일까지가 최종 시한임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었다. 혜란은 이미 자신의 문제가 임 선생의 손을 떠났음을 깨달았다. 혜란은 하루 종일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소정이는 하루 반짝 맑았다가 다시 흐려진 혜..
12편|작가: 하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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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월요일 아침, 혜란은 곧장 교무실로 불려갔다. “주말은 잘 보냈니?” 임 선생은 잔잔한 미소로 혜란을 맞았다. 확실히 임 선생은 지금껏 겪어 왔던 다른 선생들과는 달랐다. 일이 이 정도 되면 끝까지 좋은 낯을 보이기가 싶지 않는데, 임 선생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
11편|작가: 하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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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그즈음 학교에서는 교내 합창 대회를 앞두고 각 반마다 노래 연습이 한창이었다. 그런데 음악 선생이 너무 편파적이고 변덕이 심하다는 게 문제였다. 한 마디로 자기 기분에만 충실한 사람이었다. 아이들이 좀 떠든다거나 수업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면 그대로 피아노를 박차고..
10편|작가: 하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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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8월 26일, 지겨운 방학도 드디어 끝이 났다. 정우오빠를 만난 것 말고는 전혀 떠올리고 싶지 않은 방학이었다. 혜란은 조심스럽게 그림을 챙겨 학교로 갔다. 영화를 보고 온 다음날부터 혜란은 오드리 헵번의 초상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영화에 빵까지 얻어먹었으니 무언가 ..
9편|작가: 하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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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하루는 뜻밖에도 소정이한테서 전화가 걸려 왔다. 개학이 며칠 남지 않은 어느 날이었다. 오랜만에 듣는 소정이의 생기발랄한 목소리는 혜란의 귀에 참 낯설게 들렸다. 소정이는 영화를 보러 가자고 했다. 그 제안 역시 너무나 비현실적으로 들렸다. 혜란은 거절했다. “..
8편|작가: 하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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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7월 21일, 고등학교 들어와 첫 여름방학을 맞았다. 소정이는 뭐가 그리 좋은지 평소보다 두 배는 더 떠들어댔다. 혜란은 방학이 하나도 안 반가웠다. 공납금 독촉에서 잠시 해방되는 것만 빼고는. 사방이 꽉꽉 막혀 바람 한 점 통하지 않는 반지하에서 여름을 나기란 쉬..
7편|작가: 하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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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그날 이후 혜란은 오로지 기말고사만 기다렸다. 정우오빠를 공식적으로 다시 볼 수 있는 방법은 그것뿐이었다. 두 달이 채 안 되는 그 기간 동안 혜란의 속은 새카맣게 타들어갔다. 그리움을 도저히 주체할 수 없을 때면 무작정 소정이네 집에 쳐들어가고도 싶었지만 꾹 참아..
6편|작가: 하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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