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돌아온 지 보름쯤 지나자 혜란은 슬슬 초조해졌다.
큰오빠 때도 그랬지만 아버지는 누가 됐든 집에서 놀고먹는 꼴은 절대 못 보는 사람이었다. 날씨 외에도 여러 가지 변수가 많은 노가다의 특성상 한 달이면 절반은 아버지도 일을 안 하면서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아버지는 술주정을 하면서 혜란의 이름을 본격적으로 거론하기 시작했다. 자신을 밥만 축내는 식충이 취급을 하는 건 어느 정도 참을 수 있었지만, 직물 공장이 망한 것까지 자기 탓으로 몰아붙이는 데는 정말 혜란도 진저리가 쳐졌다. 기숙사에서 밤마다 집 생각에 뒤척였던 걸 당장이라도 무르고 싶었다.
그때 마침 봉제 공장 시다 자리가 나타났다. 직물 공장을 소개해 줬던 이웃아줌마가 미안하다며 서둘러 다른 곳을 알아봐 준 것이었다. 봉제 공장은 집에서 20분 거리에 야간 근무가 없고 일요일마다 쉰다는 장점과 직물 공장에 비해 월급이 적고 기숙사가 없다는 단점이 있었다. 혜란은 직물 공장을 나올 때 다음 직장은 좀 시간을 두고 찬찬히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줌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무조건 가겠다고 나섰다. 계속 눈칫밥을 먹느니 위험을 무릅쓰는 게 더 나을 것 같아서였다.
다음날, 혜란은 출근 시간에 맞춰 봉제 공장을 찾아갔다.
밖에서 보기엔 일반 주택이었는데 들어가 보니 제법 넓고 규모가 컸다. 마당의 아기자기한 정원을 중심으로 왼쪽은 사무실과 본채였고 오른쪽엔 작업장이 있었다. 함께 따라와 준 엄마는 혜란을 사무실로 밀어 넣고는 그냥 가 버렸다. 경리는 청소를 하는 중이었는데 혜란이 따위는 관심 없다는 듯 제 할 일만 했다. 혜란은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구석자리에 얌전히 서 있었다. 잠시 후 문이 벌컥 열리더니 어떤 여자가 고개만 쏙 들이밀고 외쳤다.
“오늘 새로 온다던 시다 왔어?”
경리는 비질을 계속하며 고갯짓으로 혜란을 가리켰다.
“이리 와라!”
여자는 곧장 혜란을 현장으로 데려갔다.
밖에서 신발을 벗고 작업장에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벽을 따라 쭉 늘어선 재봉틀과 중앙에 거대한 산처럼 쌓여 있는 각종 원단이었다. 사람들은 경리와 마찬가지로 새로 들어온 초짜 따위는 본척만척 각자 손에 쥐고 있는 일을 하느라 분주했다. 혜란은 일단 베틀 소리에 비하면 양반인 재봉틀 소리에 안도했다. 어둡고 음침했던 직물 공장과 달리 실내가 환한 것도 마음에 들었다. 거슬리는 게 하나 있다면, 사람이 움직일 때마다 풀풀 따라다니는 먼지였다. 환풍기 몇 대가 돌아가고는 있었지만 날개에 켜켜이 쌓인 먼지 때문에 움직임이 둔해 보였다.
여자는 혜란의 손에 쪽가위를 쥐어 주고 실밥 따는 법부터 가르쳐 주었다. 그 여자는 알고 보니 사장의 처형이면서 공장장이었다. 하지만 ‘공장장님’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아줌마들은 ‘동수엄마’라 불렀고, 아가씨들은 ‘언니’라고 했으며, 혜란이 같은 조무래기들은 ‘저기요’ 하면 되었다. 혜란은 첫 일감으로 팬티 한 무더기를 받아 배운 대로 열심히 실밥을 땄다. 그 일을 끝낼 때까지 고개 한 번 들지 않았다. 그런데 다 하고 나서 주위를 둘러보니 그런 일감들이 사방에 널려 있었다. 얼른 맡은 일을 끝내고 칭찬을 받아야겠다던 생각은 쏙 들어가 버렸다.
할 일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시다’는 모두의 손과 발이 되어 온갖 자질구레한 일을 다 처리해야 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임무는 재봉사들의 일감을 대주는 일이었다. 재봉사들은 일당이 세기 때문에 그네들의 손을 잠시라도 놀리는 것은 곧 회사의 손해로 이어진다고, 만일 그런 일이 생기면 그건 전부 시다 책임이라고, 동수엄마는 혜란에게 단단히 일렀다. 대부분은 동수엄마가 알아서 하니까 문제될 게 없는데, 가끔 동수엄마가 없을 때는 혜란이 임의로 재단부에 가서 일감을 받아와야 했다. 한데 그 일감이라는 것이 공정의 편차가 있어서, 재봉사들 사이에선 수시로 신경전이 벌어졌다. 왜 자기한테만 까다롭고 골치 아픈 일감을 주느냐는 것이다. 그 불똥은 고스란히 시다인 혜란에게로 떨어졌다. 기가 센 재봉사들을 제압할 수 있는 사람은 동수엄마뿐이었다. 그래서 혜란은 동수엄마가 있으면 느긋하게 일을 했고 외근이라도 나가면 불안해서 허둥댔다.
혜란은 매일 아침 간이나 쓸개는 집에다 빼놓고 출근한다는 심정으로 집을 나섰다.
그럼에도 순간순간 욱하고 올라오는 일들이 많았다. 그럴 때마다 정우오빠를 생각했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연락하라고 했지만 굳이 그러지 않아도 정우오빠의 주소를 갖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었던 것이다. 가끔 정우오빠와 편지를 주고받고 싶다는 욕심이 들 때도 있었다. 하지만 정우오빠한테 따로 편지를 쓴다는 것은 혜란으로선 꿈도 못 꿀 일이었다. 그건 용기와는 별개의 문제였다. 그를 맘속에 품었다는 것만도 누가 알까 두렵고 숨 막히는 일인데, 거기다 편지까지 쓴다는 건 도저히 혜란의 심장으로는 감당이 안 되는 일이었던 것이다.
봉제 공장의 일은 적응이 됨과 동시에 곧바로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매일 똑같은 일상이 반복된다는 점에서 일주일이든 한 달이든 일 년이든 다를 게 없었다. 아침 7시에 일어나 밥을 먹고 7시 50분에 집을 나와 8시 15분까지 회사에 출근, 일할 준비를 한 뒤 8시 30분부터 일 시작, 정오가 되면 도시락을 까먹고 12시 30분에 다시 일을 시작하여 오후 7시에 끝이 났다. 시다들은 청소까지 해야 돼서 퇴근해 집에 오면 8시쯤 되고 저녁 먹고 나면 9시, 설거지하고 어쩌고 하다 보면 훌쩍 10시가 넘어갔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때는 퇴근 후의 시간을 알뜰하게 잘 써야지 했는데 막상 닥치니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억지로 일기 몇 줄 쓰고 나면 자고 싶은 생각밖에 안 들었다.
혜란은 겁이 났다. 쓸데없는 상념에 시달리다 지쳐 떨어져 잠이 들 때는 물론이고 일하느라 정신없는 낮에도 머릿속을 뱅뱅 도는 생각은 단 한 가지였다. 자신의 인생이 여기서 이대로 끝나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었다. 실제로 봉제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그런 불안이 터무니없는 것만은 아니었다. 아직 미혼인 언니들은 대부분 결혼과 함께 공장을 떠나는 꿈을 꾸고 있었다. 하지만 거기서 일하는 절반 이상의 사람들이 아줌마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 꿈은 일시적인 것에 불과했다. 즉, 결혼하면서 일을 그만두었다가 생활고에 쫓겨 다시 그곳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그리고 혜란은 현재 그 악순환의 출발선에 서 있었다.
봉제 공장이 아니어도 달라질 건 없어 보였다. 어떤 직업이든 죽을 때까지 밥벌이를 해야 한다는 점에선 다 같았다. 혜란은 좀 억울했다. 어차피 평생 해야 할 밥벌이라면 너무 빨리 시작한 자신은 손해가 아닌가 말이다. 더구나 자기는 대학을 갈 것도 아니고 고작해야 고등학교 시절이 전부인데, 그마저도 다 못 채웠다는 게 속상했다. 그것은 어떻게 해서든 복학을 해야 한다는 또 하나의 이유가 되었다. 하지만 과연 복학할 수 있을지, 그때까지 견딜 수나 있을지, 모든 것이 불확실했고 그런 가운데 불안과 두려움은 쑥쑥 커져 갔다. 혜란은 그것들을 한방에 날려 버릴 대안으로 월급날만 기다렸다.
월급날은 매월 20일이었다. 12월 20일, 혜란은 드디어 첫 월급을 받았다. 자신의 이름이 적힌 누런 봉투에는 오만 칠천 원이 들어 있었다. 완전한 한 달 치가 아니고 일한 날만큼만 계산된 거였다. 혜란은 금액에 상관없이 일단 돈을 받았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이십여 일 일하고도 빈손으로 나와야 했던 직물 공장을 생각하면 감개무량했다. 혜란은 퇴근길에 붕어빵 한 봉지를 사 들고 집으로 갔다.
엄마는 월급봉투를 받으며 설핏 웃었다. 그리고 봉투에서 이만 원을 꺼내 혜란에게 주면서 수고했다고 말했다. 순간 혜란은 기분이 살짝 상했다. 딱히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다. 가령 엄마가 삼만 원을 주었다면 기분이 좋았을까 하면 그것도 아니었던 것이다. 월급이 얼마가 될지, 그 중에서 자신의 용돈으로 얼마가 떨어질지 따위는 생각지 않고, 그저 월급 타면 이것도 사고 저것도 사야지 하고 있다가, 막상 손에 이만 원이라는 구체적인 금액이 쥐어지는 순간에서야 어? 하면서 이상과 현실의 차이를 깨달았다고나 할까.
혜란이 시무룩하게 있으니까 엄마는 바지도 살 겸 시장에 가자고 했다. 혜란은 출퇴근용으로 검정색 코르덴바지 한 장을 줄기차게 입고 다녔는데, 이젠 그 바지가 나달나달하다못해 구멍이 날 지경에까지 이르러, 월급 타면 사야 할 것 일 순위가 바로 바지였다. 썩 내키진 않았지만 옷은 있어야 하기에 엄마를 따라 나섰다.
먼저 옷가게부터 들렀다. 허벅지가 굵어 맞는 바지를 찾느라 시간을 좀 끌었더니 “넌 어째 일을 해도 살이 안 빠지냐?” 하며 엄마가 톡 쏘았다. 청바지를 산 다음 생리대, 볼펜, 편지지 같은 것들도 샀다. 엄마도 오랜만에 돼지고기와 계란을 샀다. 그렇게 시장을 돌아다니다 보니 기분이 좀 살아났다. 난생 처음 자기가 번 돈으로 뭔가를 장만했다는 사실이 은근히 우쭐했다.
혜란은 월급날의 풍요로운 분위기가 최소한 며칠은 갈 줄 알았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이 되자 돈도 기분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용돈 이만 원은 벌써 바닥이 났는데, 다음 월급날까지는 정확히 한 달이나 남아 있었다. 다음 월급을 받는다고 지금보다 상황이 나아진다는 보장도 없었다. 엄청난 허탈감과 함께 몸살기가 몰려왔다. 지난밤 찬바람을 맞으며 시장을 돌아다닌 게 화근이었다.
겨우 출근은 했지만 두통과 오한 때문에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꾹 참고 일했다. 시간이 멈춘 것처럼 더디게 흘러갔다. 영영 안 올 것 같던 점심시간이 되자 혜란은 얼른 구석 자리로 숨어들었다. 동수엄마가 밥은 안 먹느냐고 물었지만 대답할 정신도 없었다. 원단 더미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머리가 쪼개질 듯 아프고 어지러웠다. 안경을 벗고 무릎에 얼굴을 파묻었다. 머리를 조금만 움직여도 내용물이 다 쏟아질 것처럼 욱신거렸다. 너무 아프니까 눈물이 저절로 줄줄 흘렀다. 정우오빠가 생각났다. 보고 싶어 미칠 것 같았다.
점심시간 30분은 후딱 지나갔다. 밥 먹고, 뜨거운 물 후후 불어 마시고, 화장실 한 번 다녀오면 딱 맞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밥도 안 먹고 쉬었던 건데, 울다 보니 시간이 다 가 버렸다. 스피커로 라디오 방송이 울려 퍼졌다. 일을 시작하라는 신호였다. 혜란은 엉금엉금 기다시피 해서 아까 하다 말았던 일감 앞으로 갔다. 하지만 몸이 아예 말을 듣지 않았다. 혜란은 그냥 손을 놓고 멍하니 앉아 있었다. 빨리 일 안 하고 뭐하느냐고, 빽 소리를 지르던 재봉사 언니가 그때서야 혜란의 상태를 알아채고 동수엄마를 불렀다. 동수엄마는 펄펄 끓는 혜란의 이마를 짚어 보고는 당장 조퇴 하라고 했다.
“이렇게 아프면 진작 말을 했어야지. 쯧쯧, 미련스럽긴.......”
혜란은 작업장을 나와 탈의실로 갔다. 마당 한 귀퉁이 화장실 옆에 있는 창고를 개조해 놓은 게 탈의실이었다. 말만 탈의실이지 장판 깔고 도배해서 사방 벽에 못만 잔뜩 쳐 놓았을 뿐 거울 하나 없이 썰렁한 방이었다. 벽에는 사람들의 가방이며 옷이 빽빽하게 걸려 있었다. 그들은 아침저녁 옷 갈아입을 때만 잠깐 들를 뿐 볼일이 끝나면 뒤도 안 돌아보고 그 방을 떠났다. 난방을 안 해서 방바닥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옷을 갈아입는 그 짧은 순간에도 발이 시려 동동거려야 할 지경이었다.
그런데 거기라도 그냥 드러눕고 싶을 만큼 혜란은 상태가 안 좋았다. 억지로 옷은 갈아입었지만 움직일 기운이 없어 혜란은 한참 동안 문고리만 잡고 서 있었다. 머리가 빙글빙글 돌고 다리가 부들부들 떨려 도저히 집까지 걸어갈 엄두가 안 났다. 그렇다고 마냥 그러고 있을 수도 없었다. 혜란은 이를 악물고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 와중에도 정우오빠는 끈질기게 혜란의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