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릿골 20 - 그해 겨울
그해 겨울 아버지가 읍내 오일장에서 무쇠화로를 사오셨다. 전에 쓰던 질화로가 깨지는 바람에 살림장만을 하게 된 것이다. 튼튼한 새끼줄로 동여맨 청회색 화로에서는 비릿한 쇳내가 났다. 마른 헝겊에 들기름 묻혀 어머니가 정성껏 윤기 나게 문지르고 양쪽 손잡이는..
95편|작가: 박예천
조회수: 1,818|2009-01-06
독백 - 어머니의 여름휴가
어머니의 여름휴가 속초사람 누구나 겪는 일이지만 정말 죽을 맛이었습니다. 유난히 올해여름엔 휴가손님 치르는 일이 버거웠지요. 예전엔 방문하는 손님들 일정에 간격이 있어 숨 돌릴 여유가 있었습니다. 허나 올해여름은 일주일이 십년만 같았습니다. 시댁손님..
94편|작가: 박예천
조회수: 1,672|2009-01-06
독백 - 새댁!
새댁! 봄기운은 언 땅을 녹이기도 전에 내 가슴팍에 벌써부터 똬리를 틀고 들어앉아있었다. 아지랑이 쳐다본 적도 없고 나무마다 움트는 소리에 귀 기울이지도 않았는데 욱신거리며 명치끝부터 아려온다. 그래서 봄 인줄 알았더랬다. 생각지도 않았던 첫사랑. ..
93편|작가: 박예천
조회수: 2,344|2009-01-06
독백 - 사월독백
사월독백 윤 사월 바람에 꽃눈이 흩날린다. 저렇게 벚꽃이 지는구나. 설악산 깊은 골에서 오래 웅크렸던 기운이 평지를 덮는다. 키 큰 나무는 하늘 꼭대기로 여린 손바닥을 흔들고, 마른 잡풀들 사이마다 흙을 딛고 또 싹이 돋는다. 산 바닥에서 고물거리며 ..
92편|작가: 박예천
조회수: 1,836|2009-01-06
졸시 4 - 사마귀
사마귀 햇살 나른한 예배당 앞마당에 사마귀 한 마리 서있다 제 짝 통째로 잡아먹고도 슬픈 기색이 아니다 꾸역꾸역 헛구역질이 난다 여태 그의 속을 파먹고도 나는 계속 허기가 진다.
91편|작가: 박예천
조회수: 1,800|2009-01-06
마릿골 19 - 때 벗기기
때 벗기기 “가만 좀 있어라 그렇게 움직이면 때를 어찌 밀라고 그러냐? 아이고! 여기 때가 엄청나다. 까마귀가 보면 동생삼자고 하겠다.” 어머니는 등이며 겨드랑이를 밀 때마다 간지러움을 견디지 못해 발버둥을 치는 우리 삼 남매의 등을 사정없이 손바닥으..
90편|작가: 박예천
조회수: 2,273|2009-01-05
독백 - 놀이터에서
놀이터에서 놀이터가 비에 젖는다. 여섯 개의 벤치 중 한 개만 남고 모두 축축해졌다. 정자 모양으로 지은 곳의 지붕틈새가 엉성하니 그럴 만도 하다. 유일하게 한 개 남은 자리가 뽀송하게 말랐건만 젊은 총각이 앉아있다. 어색한 웃음 흘리며 지나치려는데 남은 ..
89편|작가: 박예천
조회수: 1,518|2009-01-05
독백 - 놀이터에 가는 이유
놀이터에 가는 이유 다시 놀이터의 계절이다. 삭풍이 몰아치는 겨울이거나 모진 비바람 쏟아 붓는 폭풍의 날들만 아니라면 놀이터는 의당 내차지다. 집 근처 낯익은 놀이터를 팽개치고, 아침마다 버스와 택시를 번갈아 타며 이곳을 찾는다. 특별히 ..
88편|작가: 박예천
조회수: 1,571|2009-01-05
내 글의 잉걸불
내 글의 잉걸불 글 쓰는 일이 고통이라는 것을 이제 조금은 알겠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라고 했듯이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는 지금처럼 힘이 들지 않았다. 그야말로 겁 없이 덤벼들었고 오로지 열정만 가득했으므로 앞 뒤 가리지 않고 마구 쏟..
87편|작가: 박예천
조회수: 2,410|2009-01-05
독백 - 내 맘은 비를 맞고
내 맘은 비를 맞고.... 아침부터 쉴 새 없이 비가 내린다. 잠시 비가 그치니 초록 빛 잎에도 잔디 싹에도 온통 싱그러움만 가득하다. 목안까지 매캐했던 먼지조각들은 남김없이 물기 젖은 흙냄새 속으로 곤두박질 치고 있다. 공평하게 뿌려지는 장대비다. ..
86편|작가: 박예천
조회수: 1,552|2009-01-05
날개 펴지는 소리
날개 펴지는 소리 아들이 감각 치료를 받는 한 시간 삼십 분은 잠시나마 나를 독서에 몰입하게 해 준다. 가방에 습관처럼 책을 넣고는 다니지만 사실 제대로 읽을 틈이 주어지지 않았었다. 이제 더없이 좋은 공간에서 책을 펼칠 수 있음이 행복이 된 것은 눈만 들..
85편|작가: 박예천
조회수: 1,563|2009-01-05
나의 신록
나의 신록 경기도 여주 마릿골 땅에 씨 뿌려져 싹과 잎으로 자라다 줄기만 머쓱하게 자란 이십대에 고향을 떠났다. 어른께 고분고분 하지 못하고 옳은 말은 꼭 하고 마는 버릇없는 성격이라 아버지는 사회생활 첫발 내딛는 것을 만류했었다. 살림이나 곱게 배우다..
84편|작가: 박예천
조회수: 1,756|2009-0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