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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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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펴지는 소리


BY 박예천 2009-01-05

 

날개 펴지는 소리

 



아들이 감각 치료를 받는 한 시간 삼십 분은 잠시나마 나를 독서에 몰입하게 해 준다. 가방에 습관처럼 책을 넣고는 다니지만 사실 제대로 읽을 틈이 주어지지 않았었다. 이제 더없이 좋은 공간에서 책을 펼칠 수 있음이 행복이 된 것은 눈만 들면 보이는 설악산이 곁에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가을 끝이 남겨주는 절경은 곳곳에서 유혹하며 시선을 책에만 머물러 있지 말라 손짓한다. 한 차례씩 바람은 노란 은행잎으로 스란치마를 해 입고 인공의 냄새 짙은 상점이며 도로를 슬쩍슬쩍 건드리고 있다.


바람과 잎사귀의 관현악을 듣던 나의 귀에 찢어질 듯한 아이의 비명 섞인 울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아들일까 청각을 곤두세우는데 계속되는 울부짖음은 아무래도 수정이가 맞는 듯 했다. 아이들끼리 다투기라도 한 것인가 추측을 해 봤지만 예사롭지 않은 울음소리였다. 상황을 알아보려다 선생님이 따로 도움을 요청할 때까지 기다려보기로 하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 소리는 쉽게 그치지 않았다. 밖에서 듣는 나로 하여금 갖가지 상상을 하게 만들었다. 수정이 아빠는 직장업무 때문에 아이를 두고 갔고 덜렁 대기실에 혼자 남아 안절부절 당황하고 있었다.   

오늘 아침에는 치료실로 들어서며“이모! 나 빨리 걸어서 자전거도 타고 발레도 할 거예요.”라고 말하던 수정이의 웃음을 보았기에 고통스러워하는 소리가 더욱 가슴 아프게 전해졌다.

 

아이답지 않게 속이 깊은 수정이는 가끔씩 어른들을 놀라게 한다. 도저히 장애를 지닌 상태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의 해맑은 모습과 심성을 지녔다.

언젠가 미술활동 준비물인 색연필이 많이 닳아서 선생님이 새것을 꺼내 수정이에게 건넸다고 한다. 지켜보던 사내 녀석이 대뜸 그것을 빼앗으려하자 “선생님, 그냥 새 거를 쟤 주세요. 내가 쓰던 걸로 할게요.”하더라는 것이다. 여덟 살이나 되는 아이에게 다섯 살 어린 수정이가 넓은 마음으로 양보를 했다. 선생님은 오히려 그런 수정이를 탓하며 차라리 떼를 써 보라 하셨다.

측은지심으로 바라보다가도 걷고자하는 의지가 강한 아이의 노력을 보며 나는 매순간 사지 육신 멀쩡하나 욕심 많은 어른인 것이 부끄러웠다. 쇠막대를 잡고 왕복 걷기 연습을 할 때도 선생님을 졸라 몇 번을 더 해야 직성이 풀리는 아이다.

처음 수정이와 만났던 봄날에는 겨우 발가락 끝만 바닥에 질질 끌고 팔의 힘으로 매달리다시피 했었다. 그러던 것이 요즘엔 제법 발전체가 빈틈없이 치료실바닥과 닿는 형태가 되었다. 수정이가 땀방울을 흘리며 체중을 지탱하고 일어서려는 모습을 보노라면 어느새 아들은 뒷전이고 박수를 힘껏 치며 정권욕에 불타는 국회의원이 되어 온갖 공약을 마구 내민다.

“잘한다! 이모가 분홍구두 사줄게. 수정이 걸으면 부츠도 사줄 거야.”

정말 걷기만 한다면 신데렐라의 유리구두인들 못 구해올까. 같은 아픔을 지닌 부모의 입장이기에 남의 자식 내 아이라는 선을 긋지 않고 한마음이 되는 것이다.

 

치료시간이 끝나갈 무렵 읽던 책을 가방에 넣고 안으로 들어갔다. 수정이 눈가는 촉촉했고 손으로 비빈 탓인지 주위가 벌겋게 되어 있었다. 영문을 몰라 궁금해 하는데 선생님은 좀 전의 상황을 설명해주신다. 울음의 이유를 듣던 나는 가슴이 울컥 뜨거워졌다.

다섯 살이 되기까지 단 한 번도 걷지 못했던 뇌성마비인 수정이의 다리는 뻣뻣하게 굳어져 있어서 찜질을 병행하며 바르게 펴야 한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힘을 주어 교정을 하니 얼마나 고통이 따르겠는가. 휘어진 곳을 직선으로 세우고 뭉쳐진 인대를 풀어 걸음의 서곡을 선생님과 준비하고 있었다.


한 마리 비 맞은 작은 새가 나무 위 둥지에서 땅으로 떨어져 구부리고 누워 있음을 본다. 깃털까지 젖어들어 날개는 오그라들었고 퍼덕거려보지만 제 힘에 겨워 날지 못한다. 정성껏 깃털을 말리고 다친 날개에 새살이 돋아 기운차게 날 수 있는 날을 기약하며 수정이와 선생님을 비롯한 부모 그리고 지켜보는 나까지 주먹을 불끈 쥐는 것이다.

 

일주일 내내 아들의 치료 길을 동행하다보면 피곤으로 지치게 된다. 엄마이기에 참고 자식 앞이라 견뎌야 하는데 어이없이 무너지는 나 자신을 향해 수도 없이 돌팔매질을 했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아들 앞에서는 한숨 내쉬거나 피곤한 내색을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징징거리는 아이 엉덩이를 사정없이 두들긴 적도 있다.

날개 접힌 수정이가 내 곁으로 찾아든 것이 참 다행스러운 일이 된다. 주저앉고 싶을 적마다 그렇게 수정이는 나를 일으켜 세운다.


흘린 눈물은 굳은 다리로 보드랍게 스며들 것이며 고통 섞인 외마디 비명들은 날개 펴지는 소리라고 이름 짓는다. 같은 어미의 심정으로 내 아들과 다른 또 다른 아이들에게도 날개를 붙여준다.

걷지 못하는 수정이 다리에는 ‘가뿐 날개’ 선물하고 말 못하는 내 아들에게는 재잘재잘 ‘수다날개’를 혀끝에 매달아 줄 것이다.

인심 좋게 나누어주고도 한 개쯤 남는 날개가 있다면 마음 중앙에 꽂고 다니리라.  

인내와 기다림으로 똘똘 뭉쳐 질 나의 날개 이름은 ‘모성(母性)날개’.



2003년 9월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