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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백 - 어머니의 여름휴가


BY 박예천 2009-01-06

 

어머니의 여름휴가

 

 


 

속초사람 누구나 겪는 일이지만 정말 죽을 맛이었습니다.

유난히 올해여름엔 휴가손님 치르는 일이 버거웠지요.

예전엔 방문하는 손님들 일정에 간격이 있어 숨 돌릴 여유가 있었습니다.

허나 올해여름은 일주일이 십년만 같았습니다.

시댁손님이 연거푸 삼박사일일정으로 두 팀 다녀가시고, 한주일의 끝부분 친정에서 또 한 팀이 오셨지요.


세 가정의 휴가를 팔일 정도에 쪼개어 보내는 일은 인간의 한계를 느끼게 했습니다.

이불빨래며 수건을 말려대기 무섭게 들이닥쳤지요.


시동생네 두가정이 첫 번째로 테이프를 끊은 다음날.

시어머니와 시누이가족이 찾아왔습니다.

매번 외식을 할 수도 없는 일.

끼니마다 땀을 흘리며 음식을 해대는 것이 여간 힘들지 않더군요.

이제 저도 나이 먹는가봅니다.

손목마디가 시큰거리고 허리며 등짝까지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지요.

아침밥을 지으려 몸을 일으키는 순간 털썩 주저앉을 지경이었습니다.

그럼에도 혹여 귀찮은 내색이라도 얼굴에 그려질까 조심스러워 했습니다.


바로 어제 저녁 무렵.

친정 부모님을 비롯한 두 동생네 가족들이 모두 왔습니다.

두 차례 손님을 치른 뒤라서 몸은 솜뭉치였지만,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말이 맞는지 ‘시’자 들어가지 않는 것만으로도 맘이 편해지더군요.


시부모님 모시고 원주에서 살다가 속초로 분가하여 산지 십여 년.

울 엄마 맘 놓고 놀러 오실 수 있으리라 혼자 신나했던 지난날이었습니다.

그러나 89세 치매 할머니를 모시느라 흔한 외출한번 편히 못하게 되는 지경이 되셨지요.


이번 여름휴가는 어머니에게 있어 딸네 집 나들이 세 번째였습니다.

작은 어머니께 할머니 대소변 받아내는 일이며 식사 챙기는 일을 잠시 맡긴 후 멀리 사는 딸을 보러 오셨습니다.


어머니는 우리 집에 도착하여 저녁을 드시고는 틈만 나면 구부려 졸거나 피곤에 절어 하십니다.

당신의 곤한 몸 맘껏 쉬어보지 못하셨는지 자꾸 주무시려합니다.

도란도란 얘기꽃을 피우려던 저는 얼굴만 찡그렸지요.


아! 어찌 하필 울 엄마 오시는 날에 태풍이 비를 뿌리고 가는지요.

시원한 물놀이 한 번 못하게 되어 바다라도 보고가시라고 비오는 백사장에 모시고 갔습니다.

소녀처럼 좋아라하십니다.

양 손으로 바지 끝을 올려 쥐고 밀려오는 파도를 피하며 팔짝팔짝 뛰십니다.

까르륵 웃기도 하시고 온몸이 비에 젖든 모래에 발이 범벅이 되든 상관없다는 표정입니다.

엄마는 순수한 모습으로 웃는데 지켜보는 내 눈엔 뭔가 뜨거운 게 맺힙니다.


정성들여 매운탕이며 갖가지 음식들을 해드렸지만 하룻밤이 너무 짧게 느껴졌습니다.

몇 시간에 한 번씩 작은어머니께 전화하여 할머니 안부를 묻는 어머니.

몸만 딸에게 와 있고 마음은 치매할머니 곁에서 서성거립니다.


금요일 저녁에 오신 어머니가 토요일 바로 오늘 저녁에 가십니다.

아파트 주차장에서 배웅하며 새새거리듯 잔 농담을 지껄였습니다.

“엄마, 가서 전화해요!”

그 순간 까지도 덤덤했습니다.


동생이 운전하는 승합차 뒤통수가 주차장 모서리를 돌아 갈 즈음......, 울컥 설움 한 덩이가 목울대를 넘어왔습니다.

곁에 남편과 아이들이 서 있건만 꺼이꺼이 울고 말았습니다.

겨우 하루 머물다 가신 엄마가 안쓰럽고 내 속이 타서 그냥 펑펑 울었습니다.


차라리 음식으로 깔끔하게 해오지 귀찮게 푸성귀며 과일들을 왜 가져왔느냐며 철없이 툴툴댔던 어젯밤 제 모습이 떠올라서 더욱 서럽기만 했습니다.


단 하루만이었지만, 어머니의 짧은 여름휴가가 조금이라도 삶에 생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머니 부디 건강하세요!  





2007년 8월 4일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