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회]
아들의 예기치 못한 방문에 어머니는 몹시 상기되어 있었다. 된장을 끓이고 내가 좋아하는 겉절이를 한 양푼이 해서 어머니는 금방 밥상을 차려냈다. "양놈들이 먹는 음식이 입에 맞기나 했겠냐? 어서 먹어라. 네 좋아하는 된장찌게야. 한국사람들은 뭐니뭐니해도 된장이..
12편|작가: 순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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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과 귀국
동네로 들어가는 입구도 많이 바껴있었다. 뽀오얗게 먼지 날리던 길은 튼튼한 시멘으로 포장되어 있었고 굽이 지던 논은 경지 정리로 바둑판처럼 반듯했다. 그래도 아직 공기만은 변함없이 상큼하게 코끝에 와 닿아서 나는 크게 한 번 숨을 들이 마셨다. 미국에서 출발해서 거의..
11편|작가: 순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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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
"저 년의 구녕을 확 막아버려야 돼!" 치매끼가 있는 할머니가 방문을 열어 놓고는 혼잣말처럼 중얼중얼거렸다. 밖에서 불을 때며 제사에 쓸 전을 굽고 있던 엄마의 속눈썹이 순간 바르르 떨렸다. "아이구 어머니도.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큰엄마가 난처해 하..
10편|작가: 순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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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마을에서 한 대 뿐인 대동 경운기, 어버지와 같이 부역을 갔다 오는 몇명의 아저씨들과 같이 아버지도 내리고 있었다. 예정대로 라면 오늘 아버지가 와서는 안 된다. 이번 주 일요일 쯤에야 오기로 되어 있었는데, 아버지는 집에서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도 모르고 보퉁..
9편|작가: 순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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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학교 갔다 집에 오니 아무도 없었다. 아버지는 저수지 공사에 부역을 나가서 며칠째 집에 들어오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그러려니 했지만 엄마 마저도 없어서 실망스러웠다. 그래서 병욱이랑 딱지치기라도 할 요량으로 다 쓴 공책을 북북 찢어 딱지를 접었다. 한 예닐곱개를 ..
8편|작가: 순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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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그 일이 있은 후 엄마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버렸다. 여전히 농삿일을 열심히 했지만 밤이면 거의 매일같이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일부러 아버지는 눈을 지그시 감고 자는 척했지만 정말 자고 있다고는 나도 엄마도 생각지 않았다. 그 다음 날도 아버지는 엄마의 밀행에..
7편|작가: 순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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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서방님, 오셨어요?" 아재의 눈을 피하면서 엄마는 가볍게 고개만 숙이고는 밖으로 나가려 했다. 그때였다. 들어 올 때부터 뭔가 쌍욕을 끌어 붓기라도 할 기세였던 아재의 눈이 희번득하더니 엄마의 팔을 확 나꿔챘다. 그 바람에 엄마는 바닥에 내동댕이 쳐 지고 말..
6편|작가: 순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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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엄마는 또 도랑에 빨래를 씻으러 갈 모양이었다. 방망이와 비누를 주섬주섬 챙기고 있었다. 그것도 거의 점심 때나 저녁 시간에 맞추어서. 요즘은 거의 매일 빨래를 했는네 예전에 비해 퍽이나 잦은 편이었다. 내가 놀면서 자주 옷을 버리거나 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농한기에..
5편|작가: 순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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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금방이라도 한차례 소나기를 따를 듯 먹구름이 잔뜩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엄마는 외할아버지께 좀 다녀와야 겠다고 했다. 외할아버지가 노환으로 몸져 누우신지는 꽤 오래 되었다. 방학이고 해서 따라 갈려고 마음만 먹으면 나도 갈 수 있었지만 엄마도 같이 가자는 말도..
4편|작가: 순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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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아재가 왔다. 그때 아버지와 나는 쇠죽을 끓이기 위해 작두로 여물을 쓸고 있었다. 낮 술이라도 한 잔 했는지 원래 붉은 얼굴이 더욱 붉다. '헴요' 하면서 평소 아재 답지 않게 좀 과장된 듯 한 구슬픈 목소리, 대청마루에 제 집인냥 터억하니 걸터 앉았다. 마지..
3편|작가: 순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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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우리 아버지 이야기를 잠깐 할까 한다. 척 봐도 상당한 나이차를 가늠 할 정도로 아버지와 엄마의 나이 차이는 무려 열 세 살이나 났다. 얼굴만으로 본다면야 심하게는 며느리와 시아버지로 까지 보는 이도 있었다. 아버지는 덩치가 조그마했다. 마흔 나이인데도 불구하고 구..
2편|작가: 순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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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몇몇 손님을 내려주고 버스가 부웅하고 출발했다. 비포장된 도로의 마른 흙먼지가 뿌옇게 날렸다. 며칠 전 부터 우리 동네에 들어오기 시작한 새마을 버스였다. 엄마는 빨래 방망이를 두드리다 말고 먼지를 등지려는 듯 몸을 조금 돌렸다. 나는 물에 동동 떠내려가는 ..
1편|작가: 순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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