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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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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BY 순복이 2003-05-26

몇몇 손님을 내려주고 버스가 부웅하고 출발했다.
비포장된 도로의 마른 흙먼지가 뿌옇게 날렸다. 며칠 전 부터 우리 동네에 들어오기 시작한 새마을 버스였다.
엄마는 빨래 방망이를 두드리다 말고 먼지를 등지려는 듯 몸을 조금 돌렸다.
나는 물에 동동 떠내려가는 비누거품을 잡는 놀이를 하다가 잽싸게 도로로 뛰어 올라가 버스가 출발하자 버스 뒷꽁무니를 따라 달렸다. 곧 먼지만 뽀오얗게 덮어쓰고는 다시 엄마가 빨래를 하고 있는 도랑으로 되돌아왔다. 엄마는 그런 나를 쓸데없는 짓 한다는 듯 잠시 노려보더니 계속 하던 빨래를 했다.
그런 엄마가 참 예뻐보였다. 장터에 나가봐도 우리 엄마만큼 예쁜 여자는 본 적이 없었다. 아버지와는 정말 어울리지 않는 엄마였다.
엄마는 큰 키에 보름달처럼 둥그런 얼굴을 하고 있었다.
눈,코,입의 선이 시원시원하고 두 볼은 나이 어린 소녀처럼 발그스럼해서 엄마를 제 나이로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또 치아는 아침 저녁으로 소금으로 대충 헹굼질만 하는데도 어찌나 희고 가지런한지 나는 그런 이를 드러내며 웃는 엄마의 모습이 세상에서 제일 좋았다.
그러나 엄마는 잘 웃지를 않았다. 그렇게 웃는 엄마의 모습은 고작 일년에 서너번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다.
여러 말 할 것 없이 엄마의 모습은 한 마디로 우리 집 장독 옆에 이른 아침 촉촉하게 이슬을 머금고 소복히 피어있는 함박꽃을 닮아 있었다. 무엇보다 도랑에 빨래를 하러 다라이를 이고 갈 때면 앞으로 살짤 내민 엄마의 도톰하고 포동포동한 젖가슴은 아이들한테는 강한 모성으로, 동네 아저씨들에게는 또 다른 뭔가 야릇한 충동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나는 그런 엄마의 품에 안기고도 싶고 때로는 잠 잘 때 팔베게도 하고 앞집 병욱이 처럼 엄마 젖도 조물조물 만지고 싶었지만 엄마는 절대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거부 정도가 아니라 거부하는 그 손길은 차디 찼다.
나는 예쁜 우리 엄마가 동네 아이들한테는 자랑이었지만 가끔 엄마를 바라보는 아저씨들의 끈적거리는 눈길은 은근히 부아가 치밀었다. 그럴 때는 차라리 엄마가 못난 째보였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저번에도 빨래 하러가는 엄마를 따라 도랑으로 가고 있는데 우리 집 바로 뒤, 대나무 집에 사는 아저씨가 모내기 할 논을 갈고 오는지 무거운 지게를 구부정하게 지고 소를 몰고 오고 있었다. 엄마와는 꾸벅 인사를 하고 지나치는가 싶더니 곁눈질로 엄마의 몸 구석구석을 훑고 있는게 아닌가. 그것도 마치 침이라도 삼키는 듯 툭 불거진 시커먼 목 뼈가 실룩거리며.
'씨이-'
나는 왠지 모르지만 화가 났다. 그래서 자꾸 뒤돌아 보는데 몇발짝 앞서가던 엄마가 순간 걸음을 딱 멈추었다. 그리고 아저씨와 나를 한 번 씩 힐끗 쳐다 보더니 곧 나를 확 잡아 당겨 걸음을 재촉했다.
그제서야 아저씨도 겸연쩍은 듯 헛기침을 두어 번 하더니 고개를 돌려 괜히 작대기로 소의 엉덩짝을 갈기더니 가던 길을 서둘렀다.
나는 그 때, 돌아서는 엄마의 입이 웃는 듯 마는 듯 뭔가 묘하게 살짝 일그러지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