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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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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BY 순복이 2003-06-02

"서방님, 오셨어요?"

아재의 눈을 피하면서 엄마는 가볍게 고개만 숙이고는 밖으로 나가려 했다. 그때였다.
들어 올 때부터 뭔가 쌍욕을 끌어 붓기라도 할 기세였던 아재의 눈이 희번득하더니 엄마의 팔을 확 나꿔챘다. 그 바람에 엄마는 바닥에 내동댕이 쳐 지고 말았다.아버지가 엉거주춤 엄마의 팔을 잡아 부축했다.

"형수, 좋은 말로 할 때 앉아보소. 내 형수하고 오늘 할 말이 있어서 왔소"

엄마는 아버지의 손길을 뿌리치더니 해 볼 테면 해 보라는 듯 아재를 노려보았다.

"흥! 요즘 들으니 재미가 좋다면서요? 나 참, 집 안 망신스러워서... 아예 시장 바닥에 모르는 사람이 없더구만. 아마 서너살 먹은 애도 다 안다지?"

"내가 물 어?다고 그래요? 나는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는데 그런 헛소문은 사실 서방님이 다 퍼트리고 다닌다면서요? 말 같지도 않는말을 시장 바닥에 나발 불고 다니는 사람이 누군데 지금 어딜 와서 행패예요? 서방님 처신이나 똑바로 하고 다녀요!"

"뭐,뭐,뭐야?"

엄마는 작정을 하고 덤비는 것 같았지만 아재를 상대로 하는 한 어쩔 수 없는지 목소리가 약간은 떨리고 있었다. 한 번 화가 나면 아이고 어른이고 눈에 뵈는게 없는 아재였다.그러나 다음 날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 먼저 말을 걸어오기도 했지만 화가 난 그 순간은 사람을 죽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아버지는 '어허'하고 헛기침만 할 뿐 어떻게 해야 될 지를 몰라 엉덩이만 들썩거리고 있었다.
한대라도 후려 치려는 듯 아재의 손바닥이 위로 쏟구치는가 싶더니 아버지와 나를 보고 두 사람은 좀 밖에 나가 있으라는 듯 두 손을 내저었다.
엄마의 남편은 분명 아버지이고 아버지는 분명히 아재에게서 형님이라고 불렸다. 그런데 그런 아재의 행동은 참으로 무례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예전 부터 그런 모습을 자주 봐 왔기 때문에 아재는 당연히 그러해도 되는 사람처럼 줄곧 내게 인식 되어왔다.지금 같이 아버지를 아예 엄마와의 사이에서 없는 사람 취급한 것은 사실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어?든 말, 말로 하게' 하며 더듬다시피 겨우 한 마디 하더니 내 손을 잡아 끌었다. 아버지는 뭐가 그렇게 무서운 걸까?
엄마의 눈빛에서 야속함이 언뜻 스쳤다.
나와 아버지가 방문 밖으로 나오고 잠시 뒤 엄마의 앙칼진 소리가 또 들렸다.

"그래, 내가 설사 어느 놈하고 붙어먹었다 치자, 그런데 그게 서방님하고 무슨 상관이냐구요? 집 안 망신 좋아하네. 피만 조금 튀면 다 집 안 이야? 어디서 감놔라 배놔라 참견..."

" 이 년이!"

철썩하고 따귀를 때리는 소리가 났다.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다.곧 방문을 발로 걷어 차고 아재가 엄마의 머리채를 잡고 축담 밑 마당까지 질질 끌고 나왔다.

"이 개 차반 같은 년,누가 뭐라고 했나? 말 하는 것 좀 보게.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들리는 소리가 사실은 사실인가 보네. 지 아가리로 다 불어 제끼네"

아재는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엄마의 입가에서 선홍색 피가 비쳤다. 순간 나는 아재를 죽이고 싶었다. 어서 엄마를 아재의 손아귀에서 구해야 할 것 같았다. 낫이 있는 연장 창고로 눈이 갔다. 헉헉하고 숨이 차 올랐다. 한 대여섯걸음이면 될 것 같았다.
그러나 이미 몇몇 동네 사람들이 담장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아버지의 친구이기도 한 옆집 아저씨가 다급하게 오더니 거의 미쳐있는 아재를 말렸다.그러나 아재의 장사 같은 힘을 감당해 내기에는 무리였다.그러나 목소리만은 뭔가 거역할 수 없는 위엄이 있었다.

"어이, 용팔이. 지금 애 보는데서 뭐 하는건가? 진정하게. 아무리 나이가 자네보다 어리고 못 마땅해도 형수는 형수아닌가.그런데 이 년 저 년이라니. 쯧쯧"

아재는 그제서야 머리채를 잡고 있던 손의 힘을 풀었디.그리고는 밤하늘을 올려보며 크게 한 숨을 쉬더니 자조적인 소리로 말했다.

"흠, 형수라...형수라...형님은 다 알면서 왜 모르는 척 하구 그러슈? 공공연하게 다 아는 사실을...."
의외로 그 목소리는 젖어 있었다.

"어이, 자네 지금 무슨 쓸데없는 소리를 하려는겐가. 입 닥치게!"
아저씨가 낭패인 듯 한 얼굴을 하고 아재의 말을 가로 막았다.

평상시라면 그쯤하고 끝낼 아재가 아닌데 아재는 고개를 푹 숙이고 힘없이 대문 밖으로 걸어 나갔다.
아재는 분명 어떤 꼬투리를 잡아서라도 다시 한 번 올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는 그대로 땅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찢어진 옷 사이로 하얀 엄마의 어깨가 드러나 있었다. 달빛을 받아 더욱 하얀 그 어깨 위로 주루르 눈물이 타고 내렸다.
동네 사람들의 호기심어린 얼굴들도 하나 둘씩 담장위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같은 여자인데도 엄마의 어깨를 덮어 주는 아줌마는 한 명도 없었다.
옆집 아저씨가 마루 기둥에 걸려있던 아무 옷 하나를 내려 내게 건네 주었다. 가늘게 떨고 있는 엄마의 어깨와 등을 감싸 주었다. 그때까지 참고 있던 엄마의 흐느낌이 복받쳤다.
축 쳐진 눈꺼풀을 한 눈으로 아버지는 먼 하늘만 바라보고 있었다.

'아버지는 빙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