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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수등 무거운 물건을 반품할 때 수수료를 내야 한다는 주장에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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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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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BY 순복이 2003-05-31

엄마는 또 도랑에 빨래를 씻으러 갈 모양이었다. 방망이와 비누를 주섬주섬 챙기고 있었다. 그것도 거의 점심 때나 저녁 시간에 맞추어서.
요즘은 거의 매일 빨래를 했는네 예전에 비해 퍽이나 잦은 편이었다. 내가 놀면서 자주 옷을 버리거나 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농한기에 접어 든 아버지의 옷이 많지도 않았다. 장롱 속에 있는 계절 지난 옷에서 부터 씻어대더니 정 빨래가 없으면 심지어 걸레라도 들고 나갔다. 어떤 때는 빨래 속에 기름 때 묻은 하늘색 셔츠가 살짝 엿보이기도 했다. 그런 색의 아버지 옷은 본 적이 없었다.
그 하늘색 셔츠만은 어찌나 깨끗하게 빠는지 비비고 방망이질 하고 헹구고 하는 반복을 어떤 때는 열 번도 넘게 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그 반복된 행동은 버스가 지나가고 나면 비로소 멈추었다. 그때쯤이면 운전사 아저씨가 예쁘다고 한 엄마의 손은 허옇게 불어 있었다.
덕분에 언제나 때가 묻어 반질반질하던 내 옷소매 뿐만 아니라 우리집에 있는 물로 씻을 수 있는 물건들은 모두 눈부시도록 깨끗했다.
세숫대야를 들고 대문을 나서 던 엄마가 마침 소꼴을 베서 지게를 짊어지고 들어오는 아버지와 딱 마주쳤다. 아버지와 눈이 마주친 엄마는 뭔가에라도 들 킨 듯 흠칫하더니 곧 아무렇지도 않은 듯 빨래 좀 하고 오겠노라며 휑하니 아버지를 지나쳤다.
또 하나 이상한 것은 빨래가 잦아진 만큼 엄마의 외출도 부쩍 잦아 진 것이다. 그때마다 새마을 버스를 타고 다녔다. 대신 사람들 많이 타는 오일장 장날은 잘 가지 않았다.
그런 시간이 계속 될 수록 아버지는 담배 피우는 시간이 많아졌다. 어떤 때는 몇개피의 새마을 담배가 다 타들어 가도록 아버지는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럴즈음 나도 자주 새마을 버스를 탈 수 있었다.
한 번은 아저씨가 은밀하게 특별하게 너만 공짜로 태워 준다며 타고 싶으면 언제든지 타라고 했다. 아저씨의 웃고 있는 흰 이가 반짝거렸다. 그 말은 뿌리칠래야 뿌리 칠 수 없는 내게는 엄청난 사탕발림이었다. 그렇지만 왠지 아버지를 봐서는 버스를 공짜로 타고 다녀서는 안 될 것 같았다. 그러나 어른이 되면 꼭 버스 운전사가 되리라 했던 나는 기분 나쁜 아저씨의 웃음이 싫었지만 결국 그 사탕을 꿀꺽하고 말았다.

그 날도 병욱이랑 몇몇아이들과 버스를 탔다.
아이들의 왁자지끌함 속에 버스가 거의 동네 어귀에 다다를 무렵, 갑자기 버스가 멈추어 섰다. 그 바람에 아이들이 앞으로 우루루 쏠렸는데 어떤 아이들은 목이 아픈 듯 이리저리 돌려 보기도 했다.
버스에 타고있던 아이들은 무슨 일인가 하고 아저씨를 쳐다 보는가 하면 차창 밖으로 얼굴을 내밀어 보기도 했는데 특별한 일은 없는 것 같았다. 다만 저어기에서 아재와 엄마가 같이 타고 오던 오토바이가 방금 버스 옆으로 지나쳐 갔다는 것 밖에는.
그것은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왜냐하면 걷는 것 외에는 동네에 달리 탈 것이 없어 아재는 엄마 뿐만이 아니라 나가는 길에 자주 다른 아저씨,아줌마들을 태워주고는 했기 때문이다. 물론 엄마가 다른 사람들과 다른 것이 있다면 다른 사람들은 나갈 때만 아재와 함께 였지만 엄마는 나갈 때와 마찬가지로 올 때도 꼭 아재와 함께 오토바이를 타고 왔다는 것 밖에 없었다.
버스는 곧 다시 출발 했지만 아저씨는 몹시 기분이 나쁜 것 같았다. 버스의 움직임이 굉장히 거칠어 졌다.

한 번씩 나가면 엄마는 점점 늦게 오는 시간이 많아졌다. 어떤 때는 아버지가 직접 쌀을 씻어 밥을 지어 저녁을 차리기도 했다.
그 날도 읍내 좀 다녀오겠다던 엄마는 아버지와 내가 밥을 다 먹고 저녁상을 물릴 즈음 허겁지겁 집으로 들어왔다. 새마을 버스도 막 윗동네를 향해 출발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엄마한테 어떤 말도 하지 않앗다.
아버지가 불쌍했다. 요즘 들어 머리가 더 히끗히끗 해 진 것 같았다. 엄마가 미워지려 했다.
그때 였다.
밖에서 누눈가 대문을 확 열어 젖히고 저벅저벅 걸어 들어 오는 것 같았다. 아버지가 누군가하고 문을 열려는데 부리부리한 눈을 한 아재의 성난 얼굴이 칠흑같은 어둠을 뒤로 한 채 먼저 방으로 쑥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