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방이라도 한차례 소나기를 따를 듯 먹구름이 잔뜩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엄마는 외할아버지께 좀 다녀와야 겠다고 했다. 외할아버지가 노환으로 몸져 누우신지는 꽤 오래 되었다. 방학이고 해서 따라 갈려고 마음만 먹으면 나도 갈 수 있었지만 엄마도 같이 가자는 말도 없을 뿐더러 나도 굳이 동네 아이들이랑 하던 말타기 놀이도 멈추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늘 할아버지 방에서 나는 퀴퀴한 냄새는 구역질이 날 정도로 참을 수 없었다. 뿐만 아니라 외가에서 먹는 밥도 꺼림칙해서 도저히 목구멍으로 삼킬 수 가 없었다. 그래서 밥하고 반찬 다 해 놨으니 아버지와 밥 잘 챙겨 먹고 있으라는 엄마의 말에 순순히 그러겠노라고 했다.
도랑 옆에서 하얀 블라우스를 입고 갸느린 목을 한 엄마가 버스를 기다렸다. 엄마 외에는 버스를 타려는 사람은 없었다. 버스가 좀 늦어지는 듯 했지만 엄마는 조금의 미동도 없었다.
'엄마는 한 번도 안 타던 버스를 갑자기 왜 타려는 걸까?'
며칠전 이었다.
엄마가 고무신 한켤레 사준다고 하길래 장을 따라 나섰다. 동네에서 장까지의 거리를 한 반쯤 가고 있는데 새마을 버스가 우리 옆에 멈추어 섰다. 무슨 왕비를 모시는 황금마차가 대기라도 하 듯 조심스러웠다. 운전사 아저씨가 썬글래스 아래로 또 흰 이를 드러내면서 씩 웃더니 차비 안 받을 테니까 그냥 타라고 했다. 버스에는 저 윗동네 아이들이 몇 명 타고 있을 뿐이었다. 가까우나 머나 기본요금이라 해서 내는 돈은 똑 같아서 저 윗동네 사람들은 우리 동네 사람들보다는 버스를 좀 많이 타고 다녔다.엄마는 두 뺨만 새빨개져서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 머뭇거리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먼저 낼름 버스에 올라 탔다. 그러자 엄마도 올라탔는데 마지못해 오르는 것 같지는 않았다. 음흉한 듯한 아저씨가 조금은 기분이 나빴지만 너무 신이 나는 바람에 곧 그런 기분은 잊어버렸다. 그런데 걸어가는게 빠르다 싶을 정도로 버스는 거북이 걸음을 하는 게 아닌가.
한 아이가 버스가 왜 이렇게 천천히 가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아저시는 '글쎄다. 이 고물버스가 어디 고장이 낫나...'하고 능글맞게 웃을 뿐 내려서 살펴볼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아저씨의 썬글래스 낀 눈이 백미러로 엄마를 마음놓고 살피고 있었다. 엄마는 겉으로는 먼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것 같았지만 두 손은 쉴새없이 손수건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 며칠간 엄마는 너무 수다스러워 졌다. 거울을 한 참 바라보고 있기도 하고 한 번은 나에게 엄마가 아직도 예쁘냐고 묻기까지 했다.
그런 생각을 하니 나는 갑자기 말타기 놀이가 재미없어졌다. 그때 후두둑하고 굵은 빗방울이 떨어졌다. 엄마는 잠시 주위를 돌아보는것 같았지만 어차피 집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는 한 그곳에서 달리 비를 피할 데는 없었다. 내 반소매 셔츠가 젖듯 엄마의 흰 블라우스도 이미 비에 젖어 들었을 것이다.
동네 아이들이 일제히 집으로 뛰었다. 엄마는 나를 보고 어서 들어가라며 손을 내 저었다.
버스가 왔다.
갑자기 엄마를 그렇게 버스에 태워 보내면 안 될 것 같았다.
살짝 들 춰진 치마 아래 빗물이 튀어 더러워진 엄마의 왼쪽 구두가 먼저 버스에 올랐다.
엄마를 향해 뛰었다.
그러나 버스는 어느새 엄마를 철커덩하고 삼키더니 큼직한 두 바퀴가 저만큼 질펀한 땅위를 구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