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재가 왔다.
그때 아버지와 나는 쇠죽을 끓이기 위해 작두로 여물을 쓸고 있었다.
낮 술이라도 한 잔 했는지 원래 붉은 얼굴이 더욱 붉다.
'헴요' 하면서 평소 아재 답지 않게 좀 과장된 듯 한 구슬픈 목소리, 대청마루에 제 집인냥 터억하니 걸터 앉았다. 마지못해 반기는 듯 했지만 아버지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아니 감추려고고 하면 할 수 록 드러나는 것 처럼 왠지 겁에 질려 있다는게 더 정확한 것 같았다.
면에서는 몇 대 안 되는 삐까뻔쩍한 혼다 오토바이, 그런데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그 혼다가 제 주인을 닮아 흙구덩이이다. 어?든 아재는 면에서는 제일 가는 멋쟁이로 겨울에는 항상 새까만 가죽잠바에 가죽장갑을 끼고 잘 손질 된 혼다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다.성질만 좀 개떡같지 않다면...
작지만 다부진 체구는 과히 위협적일 정도로 야무져 보여서 동네 사람들은 아재에게 함부로 하지 못했다. 자기 말에 의하면 젊었을 때는 한주먹 해서 읍내 깡패들조차 굽신신굽신 거렸다고 한다. 그리고 항상 면장이나 조합장같은 내노라하는 사람들이 아니면 상대도 잘 하지 않는, 딴에는 꽤 콧대가 높았다. 그 덕에 쌀장사를 잘 해 먹어 돈도 꽤 잘 벌었는데 전화, 냉장고, 전축이다해서 집에 가 보면 없는 게 없었다. 왠만한 방을 다 차지 할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큰 전축은 마을 계추를 할 때면 한 번 씩 틀었는데 어찌나 쿵쿵거리고 신이 나는지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동네 사람들의 어께를 절로 덩실거리게 했다.
"형수는 어디 갔소?"
두리번 거리는 시뻘건 눈이 누군가를 찾고 있는 듯 하더니 아재는 엄마의 소재를 물었다.
"니기미, 씨팔!"
밭에 가고 없다는 아버지의 말에 혀 꼬부라진 소리로 욕을 하더니 마당 한 가운데로 가래를 카악하고 뱉어냈다. 그리고 나에게 오라고 손짓을 하더니 잠바 안 주머니를 뒤적뒤적 거려 무언가를 찾는듯 했다. 그것은 사탕이었다. 아재의 큰 손으로 한 움큼은 되는 것 같았다.
"씨팔, 이것 가져 온다고 내 참 쪽팔려서..."
그것은 사탕이었다. 술 취한 손으로 한 두 개씩 찾아 꺼내 놓은 것이 아재의 큰 손으로 한 움큼은 되는 것 같았다.
' 내가 아직 사탕이나 쳐 먹는 줄 아나. 씨팔~'
아재가 제발 우리 집에 좀 안 왔으면 하는 생각 뿐이었다.
그런 아재 앞에서 어서 받지 않고 뭐 하느냐는듯 비굴하게 웃고 있는 아버지도 아재만큼 미웠다. 고맙다는 말도 하지 않고 받고만 서 있는데 아재가 그만 가 보라는듯 내 머리를 툭 밀었다.
그때 돌아 설 때 였다. 아버지와 아재는 보지 못했지만 나는 분명히 보았다. 살짝 열려있던 대문 사이로 엄마의 옷자락이 황급히 도망치듯 되돌아 나가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