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늘 당새기
반짝이는 햇살이 옷장을 열게 했다. 가지런하게 개어 넣었던 옷가지들이 이것저것 뒤섞여 싸움질을 하고 있는 듯 하다. 앞줄 꺼내니 뒷줄이 또 싸우고 있다. 와락 꺼내어 차근차근 다시 개고 접어 정리를 하다가 아이들 셔츠 밑단에 너덜거리는 실밥이 거슬려 생각없이 잡..
214편|작가: 모퉁이
조회수: 3,043|2009-04-17
엄마 표 반찬
30여년 만에 흩어진 동창들을 찾기 시작할 때, 그녀를 기억해내는 단서 중 하나가 눈썹 앞에 제법 굵은 점이었고, 두 번째가 그녀의 도시락 반찬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오후수업이 있는 날은 도시락을 지참하든가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주어진 점심시간 내에 집으..
213편|작가: 모퉁이
조회수: 2,981|2009-04-06
3월 바람
한 달여 만에 뒤바뀐 바람냄새가 난다. 일주일 정도 예상했던 일이 한 달을 채우는 동안 그만 계절이 바뀌어 버렸다. 내 어깨에 걸쳐진 옷무게가 묵직하다 싶던 것이 다 이유가 있었던 게다. 일상에 묻혀 주변을 놓쳐버린 것이다. 베란다 깊숙히 찾아든 햇살을 ..
212편|작가: 모퉁이
조회수: 2,209|2009-03-29
오늘도 꼴찌다
\"밥 알을 세고 있냐?\" 어릴 때 엄마한테 참 많이도 듣던 소리다. 일일이 열거하기는 그렇지만 살면서 일등을 해본 기억이 그닥 없다. 공부도, 달리기도, 로또도 아직 일등 한번 못해봤다. 하다못해 밥 먹는 것은 맨날 꼴찌다. 얼마나 답답하게 밥을 먹고 앉..
211편|작가: 모퉁이
조회수: 2,434|2009-02-23
손가락 하나 다쳤을 뿐인데
뭐 큰일이 난 것은 아니다. 그저 손가락 하나 다쳤을 뿐이었다. 뭐 잘해 먹는 것도 아니면서 정월 대보름이라 나물이나 몇 가지 볶아보려다 그만 헛손질에 왼쪽 중지에 칼자국을 남겼다. 섬뜩한 느낌으로 보아 슬쩍 스친 단순한 실수는 아닌듯 했고 나름 신속한 동작으..
210편|작가: 모퉁이
조회수: 2,819|2009-02-17
오늘은 그냥 갈께
전화벨이 한참을 울고서야 묵직한 남자의 목소리가 받는다. \"아줌마! 저 혁인데요. 엄마는 지금 검사중입니다. 마치면 연락 드리라 할께요.\" 녀석. 군대 갔다 오더니 어른이 되었네. 저 아빤줄 알았네. 대수술을 받았던 친구의 정기검진이 있을 즈음인데 당최 ..
209편|작가: 모퉁이
조회수: 2,713|2009-02-11
가까이 사는 자식이 효자다
설날에 뵙지 못했던 엄마를 생신을 이유로 다섯자매가 모였다. 막내가 결혼하면서 엄마 곁을 떠나자 한 때는 전국으로 흩어져 살았던 우리 다섯자매. 다행히도 둘째 언니가 엄마 곁을 지키며 살고 있었지만 둘째형부의 이른 실직으로 인하여 생활고를 겪던 둘째언니와 친정엄..
208편|작가: 모퉁이
조회수: 3,071|2009-02-02
주소를 찾아주세요
어제는 세가지의 물건이 배달되었다. 남편의 오랜지기가 보낸 연하우편과 딸내미 회사 상사분이 보낸 멸치상자와 생각하면 웃음나오는 배가 배달되었다. 그런데 세 가지 모두 엉터리 주소였다. 연하우편은 번지수가 틀리고 멸치상자는 아예 집 동호수가 없고 마지막 배는..
207편|작가: 모퉁이
조회수: 2,442|2009-01-20
등 밀어드릴까요?
휴일이면 시장통 목욕탕은 늘 만원이다. 휴일을 피하고 싶구만, 딸내미와 함께 가자니 토요일이나 일요일이 목욕가는 날이 되어 버렸다. 옛날식이긴 하지만 동네에 목욕탕이 있을 때는 목욕탕 가는 길이 쉬웠었는데 그나마도 재건축하면서 사라지자 목욕탕 가는 길도 준..
206편|작가: 모퉁이
조회수: 2,655|2009-01-05
김치국밥
며칠째 목구멍이 칼칼한 것이 아무래도 감기가 들러붙은 성 싶었다. 잔기침이 잦더니 콧물도 나오고 목소리에 변성이 왔다. 왠만한 감기증상에는 병원 대신 쉬는 쪽을 택하는 미련을 여지없이 움켜쥐고 나흘을 게으름에 엄살을 더해서 나름 호강을 했다. 딸내미가 끓여주는 ..
205편|작가: 모퉁이
조회수: 2,802|2008-12-24
양말을 신고 자는 여자
설겆이를 마치고 고무장갑을 벗은 손을 남편의 등에다 쑥 집어 넣었다. 몸서리를 치듯 부르르 떠는 남편. 나의 무기는 눈물이 아니라 손과 발이다. 자리에 누워서도 남편 허벅지나 종아리 밑으로 내 발을 집어 넣는다. 처음엔 깜짝 놀라 움찔하더니 이젠 그짓에도 이력이..
204편|작가: 모퉁이
조회수: 3,249|2008-12-19
징크스
스물다섯에 결혼하여 올해 쉰이 되는 동안여섯 번의 이사를 했다. 신혼살림을 부리던 첫집부터 세번째까지는 일반주택이었고 그 뒤 세번은 아파트형 주택이다. 첫 살림을 나던 집은 몇 가구가 나란한 골목 맨 끝집이었다. 한 주택에 두 가구가 살 수 있게 지어진 집에 셋..
203편|작가: 모퉁이
조회수: 2,272|2008-1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