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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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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표 반찬


BY 모퉁이 2009-04-06


30여년 만에 흩어진 동창들을 찾기 시작할 때,

그녀를 기억해내는 단서 중 하나가 눈썹 앞에 제법 굵은 점이었고,

두 번째가 그녀의 도시락 반찬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오후수업이 있는 날은 도시락을 지참하든가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주어진 점심시간 내에 집으로 달려가 점심을 먹고 와야 했다.

 집이 가깝다는 것은 핑계였고,

도시락 반찬이 마땅치 않아 도시락을 싸가지 못하는 날이면 매번 점심시간에 달리기를 해야 했다.

어쩌다 계란 후라이라도 하나 얹어지는 횡재를 하는 날이면 점심시간 기다리는 재미에

오전 수업이 지루할 때도 있었다.

혼자 도시락을 숨겨가며 먹는 아이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왁자하게 풀어놓고 먹었는데

이 친구는 막장이라는 된장과 풋고추를 자주 가져왔다.

나 같으면 부끄럽다 여겼을 반찬을 그 아이는 성격만큼이나 시원하고 푸짐하게도 가져와서

어른이 되어서도 잊지 못할 참맛을 알게 해 준 도시락 반찬이었다.

도시락 반찬을 보면 맏이인지 막내인지 대충구분이 갔다.

맏이의 반찬은 맛깔스럽고 윤나게 볶은 멸치나 콩자반이 많았고,

막내인 경우는 같은 멸치볶음이라도 굵은 다시멸치에 고추 넣고 고춧가루나 고추장을 넣어

맵싸하게 볶아왔다.

맏이의 엄마는 젊은 엄마이고, 막내의 엄마는 대부분 연세가 있었던 터라 

도시락 반찬도 엄마의 입맛에 맞춰진 것이 아니었나 싶은 것이 지금의 내 추측이다.

막장에 풋고추를 싸오던 그녀 역시 칠남매의 막내였는데

그 어머니 지난 2월에 구순을 앞두고 영면하셨다.

 직장생활을 하게 된 딸아이가 점심 메뉴 고르기가 참 어렵다는 말을 했다.

매번 유명식당을 찾을 수도 없고, 주변 식당이 다 그렇고 그렇다 보니

한정된 메뉴로 고정 음식을 먹게 되어 질린다는 것이다.

해서 가끔 휴게실에서 밥을 해먹는다고 반찬을 싸 갈 때가 있다.

반찬이라고 뭐 거창한 요리를 해갈 수도 없고, 집에서 먹는 대로 조금 더 해서 가져간다.

양배추 쌈이나 다시마 쌈,콩나물 무침에 미역 초무침, 무말랭이김치,

계란말이(두툼하게 말아주었더니 인기가 아주 좋단다.), 아주 평범한 반찬들이다. 

 오늘 아침에 멸치볶음을 담아내다 흠칫 옛날의 내 도시락 반찬이 생각났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중간 멸치에 꽈리고추를 넣고 볶은 멸치가

엄마가 싸주시던 멸치볶음과 참 많이 닮아 있는 것이다.

자잘한 실치를 과자처럼 윤기 나게 볶아 오던 친구의 도시락과 비교되던 그 멸치볶음이

내 입맛에 박힌 탓일까. 그렇게 싫던 고추장 멸치볶음이 오히려 내 입맛에 맞고,

그것을 또 딸아이에게 가져가라고 내놓는다.

딸아이도 실치 볶음을 더 좋아하는 줄 알면서도 내 입맛에 길들여진 것을 아이에게 세뇌시키고 있었다.

 “언니들이 엄마 반찬 맛있대.”

 인사인 줄 알면서도 이 소리에 힘입어 계란말이를 만들고,

꽈리고추 큼직한 채 볶아낸 멸치를 싫증내지 않고 해대는 나를 보면서,

초등학생 도시락에 막장과 풋고추가 웬일이뇨 싶지만

언제나 푸짐하게 싸 보내던 친구의 엄마를 생각해 본다.

맛있다는 말에 넉넉한 마음을 담아 보내는 마음을 알 것 같다.

 막장과 풋고추를 보면 그녀가 생각나고, 멸치볶음을 하면 엄마가 생각나듯이

훗날 딸아이가 엄마가 되어 도시락을 싸거나 밑반찬을 만들다가

내가 만들어 준 반찬 하나 따라 해보는 날이 있을까.

나도 엄마 표 반찬 하나 각인시켜 줘야 될 텐데 말이지.

뜨거운 소금물에 살짝 데쳐 담근 오이소박이가 아삭하게 맛이 들었다.

내일은 오이소박이를 넉넉히 담아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