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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이 사는 자식이 효자다


BY 모퉁이 2009-02-02

설날에 뵙지 못했던 엄마를 생신을 이유로 다섯자매가 모였다.

막내가 결혼하면서 엄마 곁을 떠나자 한 때는 전국으로 흩어져 살았던 우리 다섯자매.

다행히도 둘째 언니가 엄마 곁을 지키며 살고 있었지만

둘째형부의 이른 실직으로 인하여 생활고를 겪던 둘째언니와

친정엄마와의 갈등도 고부갈등 못지않았다.

가까이 살다보니 사사건건 언니를 부르게 되고

넉넉치 못한 생활로 엄마의 청을 다 들어주지는 못하지만

나름 하느라 했어도 못한 것만 기억하는 엄마가 또 서운한 언니.

누구 말을 들을 것도 없이 나부터도 엄마와는 잘 부딪친다.

엄마를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아니 잘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걸러지지 않은 말투며 행동들이 서로에게 할큄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또 빨리 잊기도 하지만 때론 오랜 되새김으로 남기도 하는

묘한 관계가 모녀지간이기도 하던 것을...

 

결혼을 하고 일곱해를 엄마 옆동네에서 살다가 고향을 떠난지 스무해가 가깝다.

그러는 사이 엄마 나이 어느새 팔순을 훌쩍 넘어버렸고

살아가는 모습은 하루하루 힘들어지고

나야 어쩌다 한번씩 만나 하루 이틀 지내다 오면 그만이고

오랫만에 가는 길에 들고간 쉐타 하나 신발 한 켤레가 큰 자랑이 되니

사흘이 멀다하고 들여다보고 친구해준 딸은 그날만큼은 없는 사람꼴이다.

'엄마 작은언니한테 뭐라하지 마.

엄마 아프다하면 제일 먼저 옆에 와 있을 사람도 작은언니고

엄마 배고프다하면 국 끓여다주는 사람도 작은언니잖아.

큰언니? 멀리 산다고 일년에 몇 번이나 오기나 해?

아버지 기일에도 몇 번이나 참석했어?

아버지 기일 음식 준비 하는 사람도 작은언니여.

나? 그깟 신발 한 켤레 사준게 뭐가 그리 대수라고 작은언니 앞에서 자랑을 해.

내 얼굴이 화끈거리더만. 너무 그러지마'

 

아무리 일러도 일순간 물질에 마음가는 엄마를 통제할 수가 없다.

용돈을 드려도 몰래 드려야 하고, 옷 한 가지를 사가도 말없이 놓고 와야 된다.

그 옷을 입을 때마다 들먹거리시고,그러려니 넘어갈 세월도 되었건만

속에서 틀고 있던 똬리가 풀리듯 가끔은 울컥 토하고 싶을 때가 있을 언니 마음을 안다.

그럼에도 참 무던한 언니다.

 

막내동생이 엄마 옆으로 이사를 온 지도 몇 해가 되었다.

엄마 나이 마흔 둘에 낳은 막내가 그때 엄마 나이가 되었다.

그 막내가 엄마한테 또 각별하다.

언니들 몫을 해내고 있다.

용돈 조금 보내는 것으로 딸노릇 하는양 착각하며 살고 있는 나와는 다르다.

방이 뜨신지, 밥은 드셨는지, 감기는 나았는지, 일상생활을 챙기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님에도 불평없이 해내고 있어 미안하다.

막내아들처럼 살가이 대해주는 막내제부한테도 고맙고 미안하다.

 

이번 생신도 막내동생네서 차렸다.

다섯자매에 딸린 사위 손자들이 합치니 대식구가 되었고

막내와 작은언니가 준비한 음식으로 일박이일을 해치웠다.

입이 합죽한 엄마가 어리광이 심해졌다.

떡은 질기다,딸기는 시다,미역국은 물린다,

내다놓은 음식마다 먹기 싫다 맛이 없다며 타박이시다.

며느리가 들었으면 얼마나 속상할까 싶은 마음이 목욕탕 굴뚝처럼 높다.

딸이라서 짠한 마음도 있지만, 딸이어서 한마디 더 한다.

'안 먹는다고 그렇게 사래를 치던 머핀도 어느새 홀딱 먹었고

질기다며 밀어내던 떡도 설겆이 하다보니 오물오물 잘 씹고 계시더만...'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혼자 사는 엄마는 우리에게  어려운 숙제이다.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같이 살면 되지' 하고 쉽게 말하겠지만

그게 쉽지 않으니 숙제인 것이다.

안 보면 걱정 되고 막상 보면 나 스스로에게 나는 화가 엄마에게 던져질 때가 있다.

돌아오면  후회되어 한동안 몸살을 앓으면서도 또 반복되는 갈등을 겪는다.

 

깔끔하고  몸 가벼운 작은언니 씻고 치우는 일까지 마무리 했지만

남은 먼지와 찌꺼기를 치우느라 동생네도 분주했을 것이다.

엄마가 우리집에 다녀가신지도 벌써 10여년 되었다.

이제는 엄마가 먼 길 움직이기 힘들어하기 때문에 더 힘들어졌다.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생신상을 차리게 될 지 모를 일이다.

멀리 사는 딸은 손님처럼 다녀만 가고 가까이 있는 딸은 정성껏 생일상을 차린다.

엄마한테 엄한 소리 들어가면서도 묵묵히 엄마 시중 드는 작은 언니나

언니를 넷이나 두고도 큰일을 자처해서 치뤄내는 동생이 다섯자매 중

가장 효도하는 딸이다.

뭐니해도 가까이 사는 자식이 효자인 것이다.

밤 늦게 도착했다는 전화에, 먼 길 다녀가느라 고생했다는 말이 부끄러운 날이었다.

굽은 나무가 되어 엄마의 바람막이가 되어주는 언니와 동생이 고맙다.

정말, 많이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