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알을 세고 있냐?"
어릴 때 엄마한테 참 많이도 듣던 소리다.
일일이 열거하기는 그렇지만
살면서 일등을 해본 기억이 그닥 없다.
공부도, 달리기도, 로또도 아직 일등 한번 못해봤다.
하다못해 밥 먹는 것은 맨날 꼴찌다.
얼마나 답답하게 밥을 먹고 앉았으면
밥 알을 세고 있느냐는 소리를 다 들었을까.
세 살 버릇 여든간다더니
그렇게 오래 먹고 앉았던 밥 버릇이 지금도 그렇다.
밥이야 내가 많이 먹으니 그렇다고 치더라도
같은 양을 주는 자장면도 짬뽕도 헌날 꼴찌다.
"엄마는 밥 안 먹었어?"
숟가락을 놓으며 딸아이가 하는 말이다.
글쎄다..열심히 씹었는데 왜 밥이 안 줄지?
젓가락 대신 숟가락을 쓰라는 남편의 타박을 받고는
숟가락을 쓰는데도 여전히 오래 먹는다.
밥을 빨리 먹는 남편이 볼 때는 참 답답할 것이다.
그렇다고 다그치지는 않지만
식탁에 혼자 남아 씹어대는 깍두기 소리가 어떤 날은 거슬렸는지
"거 참 요란하게도 씹네." 한 번 들었다.
어제는 지인의 딸 결혼식이 있었다.
혼주와 인사하고 하객 중 안면 있는 분들과 같이 식사를 하게 되었다.
잘 차려진 뷔페식당에서 접시를 들고 몇 가지 챙겨 자리에 앉으니
기껏 챙겨온 것이 초밥 두 개, 샐러드 약간, 연어회 두 점.
육회니 뭐니 수북히 담아온 앞사람은 어느새 접시를 비우고
다시 일어서는데 나는 샐러드를 덜 먹었다.
남편이 가더니 이것저것 챙겨왔다.
두어번 왔다갔다 하더니 배 부르다며 차를 갖고 올까나 한다.
나는 배 부르다는 느낌이 하나 없다.
국수를 소복하게 담아온 같은 테이블 남자가
내가 샐러드를 먹는 동안 후루룩 마셔버린다.
그리고는 나를 쳐다보는 느낌이 들어
남은 연어회에 고추장을 찍다 쳐다보는 눈이 마주쳤다.
남편이 가져다놓은 음식이 그대로 있으니
음식 욕심이 많아보인 듯 쳐다보는 것 같았다.
남편도 빨리 먹는 편이지만 이 남자는 더 한듯 하다.
한 사람 한 사람 자리를 뜨고
남편은 먹고 있는 나를 기다려주느라 지쳐가고
나는 기다리는 사람 때문에 느긋한 식사도 못하고
누가 밀어내는양 일어났다.
이런 일이 허다하다.
식구들이 다 모이는 자리에서도 나는 늘 독상(?)을 받고 앉아있다.
설겆이도 나 때문에 늦어진다.
누가 보면 뒤처리는 내가 다 하는 줄 알 것이다.
우리집 식구들이야 내가 천천히 먹는 줄을 알기에 괜찮지만
어려운 자리에서는 나 정말 배 주린적 있다.
남들 수저 놓았는데 혼자 꾸역꾸역 먹고 있는 거
그거 심장 두꺼운 사람 아니면 쉬운 일 아니다.
내 벌어진 입만 쳐다보는 것 같아 괜히 흘리기도 하고 수저질도 서툴러진다.
이 나이에 그만한 배짱도 없나 싶지만
다소곳할 해야 될 때는 아직 조신(?)하다.
음식 먹는데 쳐다보는 게 얼마나 상대방이 불편한지...
양푼이 비빔밥을 같이 먹는 날은 숟가락으로 줄을 긋는다.
고기 쌈도 앞 접시에 놓고 먹지 않으면 몇 점 못 먹는다.
2인분이 함께 나오는 칼국수는 자칫 국물만 먹는 날도 있다.
고추잡채가 맛있었다는데 그게 나왔는지도 몰랐다.
해서, 같이 먹는 음식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한 입 먹고 나면 동이 나서 내 몫이 없어진다.
그럼에도 수저는 꼴찌로 놓으니 내가 제일 많이 먹은 걸로
누명을 쓰기도 한다.
남들은 많이 먹었다는데 나는 모자랄 때가 좀 억울하다.
오늘 점심은 혼자 먹었다.
이런 날은 더 천천히 먹어진다.
이래저래 꼴찌일걸 밥 알 세어가며 천천히 느린 점심을 비웠다.
시계를 보니 밥 먹는 시간이 길긴 길다.하하하...
오늘도 나는 꼴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