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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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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말을 신고 자는 여자


BY 모퉁이 2008-12-19

설겆이를 마치고 고무장갑을 벗은 손을 남편의 등에다 쑥 집어 넣었다.

몸서리를 치듯 부르르 떠는 남편.

나의 무기는 눈물이 아니라 손과 발이다.

자리에 누워서도 남편 허벅지나 종아리 밑으로 내 발을 집어 넣는다.

처음엔 깜짝 놀라 움찔하더니 이젠 그짓에도 이력이 났는지 별 기척이 없다.

손발이 차가운 마누라와 함께 살자니 벼라별 짓을 다 당하고 사는 남자다.

 

손발이 유난히 차다.

손이 차가운 사람이 마음은 따뜻하다고 하는 말은

누군가가  지어낸 말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손발이 차가운 것도 일종의 병이라는 것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한의원에서 내려준 처방을 받아도 봤지만

꾸준하지 못해서인지 특별히 나아지는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한여름에나 잠깐 양말을 벗을까

거의 양말을 신고 지내는 편이다.

 

작년 봄에 병원에 며칠 있을 때

옆 침상의 여자가 예쁜 양말을 신고 있었다.

깊은 겨울은 지났고 봄이 오고 있는 3월이었는데

그 여자의 양말이 포슬하고 도톰해보였다.

따뜻해 보여서  어디서 샀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퇴원을 하고 한참 뒤

어느 속옷가게에서 땡처리를 하고 있었다.

팬티며 메리야쓰를 고르느라 알뜰파 아줌마들이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고

한쪽에서는 양말을 쏟아놓고 무조건 300원이란다.

싼 물건 잘 못 샀다가 낭패본 적이 어디 한두번이디?

그럼에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기웃거려 보는 심리란...

예쁜 양말은 많은데 거의가 아동용이다.

내 발에 맞는 양말이 없다.

이리저리 뒤적여가며 양말을 고르는데

가만, 이건 무슨 양말인고?

발목이 휘휘 늘어날 듯 탄력도 없고

봉제인형처럼 북실북실한 양말이 눈에 띄었다.

이리저리 살펴보는 내게 사장님 말씀이 순면양말이란다.

양말이 대개 면이지 나일론인가 뭐..

"순면양말이요?"

"아니~수면양말이요.잘 때 신는 양말이라고요."

일반 양말은 흘러내리지 않게 발목에 고무처리가 되어 있지만

수면양말은 그런게 없어서 발목이 편하고 가볍고 포근해서

잘 때 신어도 갑갑하지 않아 발이 차가운 사람에게 좋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이미 아는 사람은 다 아는 물건이더만

정작 필요한 나만 모르고 있었다.에구~

그러니까 병원에서의 그녀가 신었던 양말이 바로 수면양말이었던 것이다.

땡처리 가게에서 구입한 300원짜리 수면양말은 내게 아주 좋은 발벗이 되어주었다.

 

지난 해 연말에 케잌을 샀더니 작은 선물이 하나 딸려왔었다.

장갑이었다.

애들 장갑같다.

막내동생네 조카놈 한테나 어울릴성 싶은데

에구~아서라 옆집 꼬맹이나 주면 되겠다.

때맞춰 줘야 될텐데 어찌하다보니 장갑 낄 철이 지나가고

장갑은 어디에 들었는지 기억도 없고

해가 바뀌어 손 시린 철이 오고서야 겨울양말통에서 작은 장갑을 찾았다.

그런데 말이지 장갑의 질감이  수면양말과 비슷하다.

옆집 꼬맹이 줄까던 장갑이 수면장갑이란다.

그렇다면 이것도 내가 필요한 것 아닌가.

양말은 신고 자봤지만 장갑은 끼고 자 보지 않았는데

양말을 신고 자는 여자,이제 장갑까지 끼고 자게 생겼네.

 

'손이 차가운 사람은 마음이 따뜻하다'

근거없는 이 말이 왜 자꾸 들먹거려지누...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