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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 당새기


BY 모퉁이 2009-04-17

 반짝이는 햇살이 옷장을 열게 했다.

가지런하게 개어 넣었던 옷가지들이 이것저것 뒤섞여 싸움질을 하고 있는 듯 하다.

앞줄 꺼내니 뒷줄이 또 싸우고 있다.

와락 꺼내어 차근차근 다시 개고 접어 정리를 하다가

아이들 셔츠 밑단에 너덜거리는 실밥이 거슬려 생각없이 잡아 당겼다가

이런...일이 커졌다.

올이 풀려 꿰매야 되었다.

가위질로 마감하고 실을 꿰어 풀어진 올을 기웠다.

딸아이 근무복 스커트 뒷트임도 약간 풀려 있어서 바느질로 꼼꼼하게 메꾸고

남편 셔츠 단추도 헐렁하여 실 꿴 김에 점검했다.

오랫만에 반짇고리를 열어보니 참 오래된 색색의 실이 제 빛깔을 잃어가고 있었다.

검정색은 흰 먼지가 앉아 있었고, 흰색은 누렇게 변해가고 있었고,

하늘색과 회색은 서로 닮아가고 있었다.

 

옛날 엄마들은 손수 옷을 지어 입거나 솜씨가 좋은 사람은

한복이나 양장 삯일을 해서 가정을 꾸려나가기도 했다.

주름을 주렁주렁 접어 허리말을 엮어 단추구멍을 내거나

고무줄을 끼워 만들어 입었던 내 치마도 엄마 솜씨였다.

여름 내내 입던 포플린 치마에 활짝 핀 꽃이 희미해 지면 가을이 오고 있었다.

재단을 따로 배운 것도 아니고 줄 자 대신 굵은 실로 길이 재고 품을 재서

밤새 어둔 눈으로 골무가 터지도록 옷을 만들고

구멍난 양말을 깁고 헤진 내복 무릎과 겨드랑이를 엮어대던 고단한 엄마의

초라한 바늘당새기가  기억에 선하다.

 

우리집은 재봉이 없어서 오로지 엄마 손에 의지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엄마 옆에서 바늘 귀도 꿰었고

바느질 하는 것을 보고 따라 해보기도 했다.

걸레를 만들어 오라는 지시가 내려진 날이면

헌 수건이나 내복을 접어 걸레도 내가 만들었고

운동회날 콩주머니도 내가 만들었다.

더 커서는 이불 호청 네 귀 접는 것도 했고

엄마 옆에서 시침질을 하기도 했다.

요즘은 이불호청도 시치지 않고

구멍난 옷을 입을만큼의 시절이 아니어서 바느질을 할 일이 거의 없다.

웬만한 것은 세탁소나 수선집에 맡겨버리고

더 한 경우는 아예 버리지 기워 쓸 생각이 지워지고 있다.

이러는 나 역시 바느질을 언제 해봤는지 기억이 멀다.

오늘 맘 먹고 퍼질러 앉아 이것저것 단단히 여미다가

나 어릴적 포플린 치마의 꽃물결도 만나고

콩주머니 속에 든 팥알 같은 붉은 추억도 만났다.

체기 끝에 배를 움켜쥐기라도 한 날이면

"가서 바늘당새기 갖고  와 봐라~"

그 속에는  체기를 가라 앉히는 요술 바늘이 있었던 것이다.

이래저래 엄마의 바늘당새기는 만능요술당새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