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이면 시장통 목욕탕은 늘 만원이다.
휴일을 피하고 싶구만, 딸내미와 함께 가자니
토요일이나 일요일이 목욕가는 날이 되어 버렸다.
옛날식이긴 하지만 동네에 목욕탕이 있을 때는
목욕탕 가는 길이 쉬웠었는데
그나마도 재건축하면서 사라지자
목욕탕 가는 길도 준비 과정이 필요했다.
머리도 대충 빗어야 되고, 목욕바구니 대신 가방을 챙겨야 하고
돌아오는 길도 벌겋게 상기된 얼굴을 보여주는 시간이 길어졌다.
모두 생략하고 싶은 과정이다.
시장통 목욕탕은 아주 신식 목욕탕이 아니다.
사우나실이 두 곳 있고, 냉탕 온탕에 물바가지를 사용하는 탕이 있고
절수식 꼭지가 달린 샤워기 앞에 앉아 몸을 씻고 헹구는 평범한 목욕탕이다.
그리 넓지 않아서 휴일 낮에 시간을 잘못 맞추면
어디에 앉아야 할 지 난감할 때도 있다.
겨우 비집고 앉은 자리.
사우나실에 잠깐 들어갔다가 본격적으로 몸을 씻는다.
간이침대 두 칸에는 이미 젊은 여자 둘이 자리잡고 누웠다.
딸내미가 저도 몸을 맡겨 씻고 싶다고 했다.
두 딸을 데리고 다닐 때부터 여적 남의 손에 몸을 맡겨본 적이 없는 나는
혼자 몸 씻는 것도 힘들다는 딸을 콕 쥐어 박는 시늉을 했더니 웃는다.
에미를 닮았는지 딸내미도 등판이 길다.
둘이서 서로의 등을 내주고 손 닿지 않은 곳을 긁어준다.
딸내미 옆에 키가 작고 통통한 할머니가 앉아 계셨다.
짧게 자른 머리가 하얀 할머니의 등이 심하게 굽어있다.
짧은 팔로 물을 퍼서 몸에 끼얹으시다 자꾸 내 눈과 마주치인다.
뭐라고 할 말이 있으신듯 하다 말고 또 그러다 눈길을 돌리신다.
벌써 몇 번째 마주친 눈길.
등을 밀고 싶으신가?
"등 밀어드릴까요?"
할머니 입가에 미소가 머무신다.
"힘들텐데.."
딸을 밀어주는 걸 보시고는 내가 힘들까봐
차마 등 좀 밀어달라는 말씀을 못하시고
그저 눈치만 보고 계셨던 모양이다.
통통하게 보였던 할머니 등이 자꾸 접힌다.
한 때는 고왔을 저 등이 축쳐진 빈가죽으로 남아있다.
등을 펴듯 한 손으로 잡고 등을 미는데
내 등길이 반이나 되실라나
아이 등처럼 조그만 할머니 등이 수줍은 듯 자꾸 움츠리신다.
미안해서 어쩌나 시며
먼저 나오는 내 등 뒤로 몇 번이고 고맙다고 하신다.
요즘은 목욕탕에서 서로 등밀기 하는 모습 보기가 어렵다.
등 밀자는 말을 했다가 외면 당하고부터는 나도 혼자 민다.
길다란 막대기에 때타올이 붙어 있는 목욕용품이 있어서
차라리 그걸로 혼자 해결한다.
혼자 오신 할머니 등을 가끔 밀어드리면
어떤 할머니는 요구르트를 사주시기도 한다.
요즘은 가정에서도 목욕을 쉽게 할 수 있어서
딸이 둘이나 있어도 같이 목욕할 시간이 별로 없었다.
초등학교때나 같이 다녔지
사춘기에 들면서부터는 엄마랑 목욕하기를 거부해서
한참을 아이들 몸을 보지 못했다.
다 자란 몸을 보면서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있음이 신기했다.
목욕을 같이 하면서 아이들이 커가는 과정도 알 수 있지만
몸에 이상이 있음도 알게 된다.
큰아이가 3학년 때 우연찮게 아랫배 사타구니쪽이 볼록한 것을 발견했고
검사 결과 탈장으로 수술을 받은 예도 있다.
그동안 가끔 배 아프다는 소리를 했고
검사를 해보면 단순히 변이 찼다는 말만 들었는데
이유는 탈장으로 인한 통증이었던지
수술 후 같은 고통은 겪지 않았다.
친정에 가면 엄마랑 목욕을 간다.
나는 엄마 앞에서 옷을 훌렁 벗는데
엄마는 오히려 부끄러운듯 몸을 가리신다.
엄마 등을 밀고 쳐진 가슴을 들어 올려 씻어 드리면
간지럽다며 몸을 숨기시고
엄마는 길다란 딸의 등을 살점 없다며 안타까워 하신다.
여든이 넘으신 손매가 딸의 등을 밀때만큼은
어린시절 엄마의 매운 손맛이 그대로 느껴진다.
세상살이가 개인주의로 변해가고 있는 탓에
나눔에 인색해지고 있다.
물질로 나누는 것 뿐만 아니라
몸으로 나눌 수 있는 인심은 변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 중에 하나가 목욕탕에서
서로 등을 밀어주던 옛날의 정서가 새삼 아쉬운 요즘이다.
"등 밀어 드릴까요?"
주저함 없이 건낼수 있는 인사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