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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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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국밥


BY 모퉁이 2008-12-24

며칠째 목구멍이 칼칼한 것이 아무래도 감기가 들러붙은 성 싶었다.

잔기침이 잦더니 콧물도 나오고 목소리에 변성이 왔다.

왠만한 감기증상에는 병원 대신 쉬는 쪽을 택하는 미련을 여지없이

움켜쥐고 나흘을 게으름에 엄살을 더해서 나름 호강을 했다.

딸내미가 끓여주는 죽사발도 받아봤고, 행주가 말랐는지 젖었는지

게의치 않기로 했다. 서랍장 위에 먼지가 눈에 거슬려도 못 본 척 했다.

나흘을 고비로 슬슬 진력이 나기 시작했고, 사과가 제 맛을 찾았고,

호도알이 큼직하게 박힌 호도과자가 내 입맛에 들었다.

텅텅 소리가 나는 냉장고 속에서 꺼낸 것은 한 줌 남은 콩나물봉지와

해를 묵힌 쉰내나는 김치였다.

김치를 숭숭 썰고 콩나물을 넣고 멸치를 손에 집히는대로 넣고

마른다시마를 넣고 김칫국을 끓였다.

감기 끝에 칼칼한 국물도 생각났지만 마땅히 끓일 국재료가 없어서가

더 큰 이유였다. 다 끓인 김칫국에 대파를 송송 얹어 맛을 낸다고 냈는데

뭐가 모자란지 입맛에 썩 들지 않는다.

아직 돌아오지 못한 입맛 때문이라 생각했는데 다른 식구들 입에도 영

내키지 않는 눈치다. 이상하다.옛날에는 이렇게 끓여서 많이들 먹었는데..

그땐 맛있었는데..이상하다 참 이상하다.

겨울방학이 되면 아랫목에 오롯이 앉아 엄마가 끓여주는 김칫국밥으로

점심을 떼우는 일이 많았었다.

김칫국에 김치반찬이 전부였던 때도 있었다.

찬밥 양으로는 끼니가 어려울라치면 엄마는 김치국밥으로 양을 늘리는 수를 썼다.

김치국밥이 채 끓기도 전에 초대하지 않은 손님의 인기척이라도 흘리는 날이면

엄마손이 솥뚜껑을 몇 번 더 여닫는 분주함이 느껴진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불쑥이 찾아든 손님의 대접에도 국밥이 한 그릇 놓이게 된다.

적당히 물을 더 붓고 김치 몇조각 더 썰어넣는 기묘한 수법이었다는 것을

지금 나는 알고 있다.

김치국밥에 들어있는 멸치도 걸러내지 않고 가시 발라 꼭꼭 씹어먹게 하던 엄마의

알뜰함 내지는 애잔함도 지금은 알고 있다.

몇 해전,오랜지기가  오랜 병원 생활을 해야 했다.

입원해 있는 동안, 병원밥 대신 하고 많은 음식 중에  하필이면 지겹게도 먹었던 

김치국밥이라 했을 때, 그것이 추억을 붙드는 의사표시였음을 늦게사 알았다.

국밥을 끓여 가던 날 의식이 혼미해졌고, 국밥통은 두껑도 열어보지 못한 채

친구는 중환자실로 이식수술로 무균실 격리로  생사를 넘나들었다.

며칠이면 되겠지..했던 입원기간이 가을가고 겨울도 보내고 봄을 맞을 즈음에야

끝이 났으니 참으로 아픈시간이 길었다.

수술이 끝나고 회복기에 있던 어느날 친구가 뜬금없이

메기의 추억을 불러주어 고맙다고 했다.

메기의 추억? 내가 언제?

중환자실에 있을 때 내가 메기의 추억을 불러주더라는 것이었다.

친구는 어느적 기억을 떠올린 것일까.

열여섯 소녀적에 둘이 부른 노래를 엊그제 일로 기억하는 건 아니었을까.

그때 부른 노래가 아니라 해도 믿지를 않아

김치국밥과 메기의 추억은 친구의 연상 단어가 되어버렸다.

김치국이 냄비에 그냥 남았다.

옛날에 엄마가 그랬던 것 처럼 찬밥 말아넣고 김치국밥을 끓여 점심상을 볼까  싶은데

혼자 먹는 김치국밥이 뭔 맛이나 있으려나.

이럴때 가까운 친구 하나 없음이 아쉽다.

격식 따지지 않고, 대충 치운 집안꼴도 흉이 되지 않고, 오래되어 귀퉁이가 찍힌

구닥다리 식탁에 앉아서 메기의 추억을 흥얼거리며 김치국밥 같이 먹고 싶은

친구가  지금 내게서 멀리 있다.

어쩌면 가까이 있다면 부려보지 못할 투정일지도 모르는 외로움이 살짝 번진다.

날씨가 흐린겐가.

어째 창 밖이 흐릿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