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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크스


BY 모퉁이 2008-12-08

스물다섯에 결혼하여 올해 쉰이 되는 동안  여섯 번의 이사를 했다.

신혼살림을 부리던 첫집부터 세번째까지는 일반주택이었고

그 뒤 세번은 아파트형 주택이다.

첫 살림을 나던 집은 몇 가구가 나란한 골목 맨 끝집이었다.

한 주택에 두 가구가 살 수 있게 지어진 집에 셋방살이였는데

주인댁 담 쪽에서는 옆집을 기웃거릴 수 있었지만

셋방인 우리집 쪽에서는 담 옆으로 집이 없었고

대신 주인댁의 넓은 밭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 집에서 큰아이가 태어나고 돌을 지내고서 이사를 해야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돈이 맞으면 집이 마음에 안차고

집이 마음에 들면 돈이 모자라는 형편인지라

두 가지 충족된 집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고르고 골라 이사를 한 집은 골목 첫집이자 마지막 집이었다.

이 집 역시 주인댁 땅으로 담 옆으로 넓은 밭이 있었는데

훗날 이 땅에는 집이 몇 채 들어서고 목욕탕이 지어졌다.

앞집 아줌마는 있었어도 옆집아줌마는 없는 셋방살이의 징크스는

작은 아이를 낳고 세번째 이사한 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두 해씩 살다가 이사를 한 세번째 집은

아랫채가 있고 주인댁과 함께 합이 네 가구가 한 마당을 쓰고 살았다.

이 집도 우리는 웃채의 주인댁과 함께 살았고

아랫채에는 젊은 새댁네 두 가구가 살았는데

이 집 역시 옆집 대신 작은 도랑이 흐르고 있었으니

이 무슨 희한한 일인가.

 

이렇게 일반주택 셋방에서 전세로 세 곳을 전전하다

남편의 전근 관계로 고향을 떠나면서 마침내 내 집으로 입주하게 되었다.

작은 평수의 연립주택이지만 아파트형이어서 옆집이 생겼다.

갑작스런 발령에 시간적 여유와 집을 고르는 지식이 없던 나는

그저 내 손에 쥔 만큼에 맞는 집이 때마침 나왔길래

일곱살 다섯살 아이 맘 편히 키울수 있을 내 집이 생겼다는 것에 만족했다.

 

네 번째 이사에서 옆집은 생겼지만

이 집이 은근히 지대가 높다는 것이 단점이었다.

아주 언덕이 아니어서 평소 눈으로는 짐작이 안되다가

자전거를 타고 노는 아이를 보면 눈에 확 들어왔다.

아주 위험한 질주를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놀다 돌아올 땐 자건거를 끌고 오는 이마에 땀이 송송했다.

 

그래도 그 집은 괜찮았다.

큰아이가 중학교 들어갈 무렵 다섯번째 이사를 했다.

이번에는 15층짜리 아파트의 14층에 이사를 했는데

집도 꼭대기지만

아파트 자체가 일반 도로보다 높은 곳에 위치하다보니

오르내리는 길이 경사가 심했다.

이 길도 평소는 다닐만 하다가

양 손에 짐이라도 든 날이거나

겨울철 눈이라도 내리면 그땐 환장할 노릇이었다.

 

그렇게 그렇게 그 길이 익숙해지자

다시 여섯번째 이사를 하게 되었는데

그 집이 지금 햇수로 9년째 살고 있는 현재 집이다.

앞에 세번의 이사는 우리 형편과 사정상 이사를 했지만

나머지는 직장관계로 이사를 하게 되었는데

점점 고향에서 멀어지는 이사가 되어

남부지방에서 중부로 옮겨지더니 지금은 서울까지 오게 되었다.

지금 집은 서울치고는 공기가 맑은 곳이다.

 

버스에서 내려 걷는 거리는 얼마 되지 않는데

숨가쁘기로는 100미터를 단숨에 뛴 듯 가쁘다.

이 길도 이제 이력이 날만큼 단련이 되었으련만

한 여름이나 겨울이면 끔찍한 일이 몇 번은 생긴다.

한 여름에는 더워서 참 구질해지고

오늘처럼 눈 내린 날이면 또한번 조바심이 생긴다.

 

미끄러운 길을 잘 걷는 비결이 있는 사람이 있나 모르겠다만

나는 정말 이 미끄러운 길이 쥐약같다.

눈이 내리면 강원도 산골에서만 고립되는 것이 아니라

서울 한쪽 구석에서도 고립된 사람이 있으니 바로 나다.

 

새로운 주일을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

출근을 서두르는 딸아이.

날씨도 궂은데 밝은 겉옷이 거슬리긴 하지만

애써 차려입은 모양에 흠내기 싫어

나오는 한마디 삼킨게 잘못이었나.

집 나간지 10여분이 지나 걸려온 전화에

아이의 목소리가 징징거린다.

아침부터 뭔 일이랴?

미끄러졌단다.

멈추지 않아 아주 썰매를 탔단다.

어디에 할퀴었는지 손에서 피가 난단다.

머리에 피가 난다는 줄 알고 놀랬다.

짐작컨데 동네 어느 모퉁이 그 쯤에 얼어붙은 눈바닥에서 생긴 일 같다.

잠시 후 버스는 탔다는데 안심이 안된다.

회사에 도착해서 온 연락은 삭신이 쑤신단다.

팔꿈치도 엉덩이도 손바닥도 ..

 

여섯번의 이사에 이상한 징크스가 있다.

세번은 옆집없는 집이었고

세번은 언덕위의 집이다.

앞으로 이사할 집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고향으로 내려갈런지 이 곳 어디에 정착을 할 지 모른다.

지금 사는 이 집은 내가 아주 살 집은 아니다.

앞으로 내가 살아갈 집은

옆집은 있고 언덕은 없었으면 좋겠다.

오늘같은 날,외출이 두렵지 않은 그런 곳이었으면 좋겠다.

헌데,요즘은 점점 집이 산으로 올라가고 있으니

내가 원하는 위치에 내가 원하는 좋은 집이 있을라나...

식구들 돌아올 때 쯤이면

눈도 녹고 얼음도 녹아서 찧은데 또 찧는 불상사는 없어야 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