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
나비 정 은영 꾸역꾸역 밀려드는 노을빛이 화단 옆에 쪼그리고 앉은 내 얼굴도 붉게 물들인다. 가루분 통 같은 방 안에서 곰방대에 봉초를 채우던 고모의 눈동자는 허공에 머물다가 간간이 팔랑개비 같은 손으로 이리저리 꽃과 잎사귀 사이를 헤집으며 나비를 쫓는 ..
56편|작가: 캐슬
조회수: 2,565|2009-05-20
꿈의 꿈
꿈의 꿈 비 내리는 아침, 부드러운 물안개에 휩싸인 산 풍경이 어쩌면 살아 왔던 날들보다 더 오래된 기억처럼 흐릿하다. 구름에 엷게 가린 봉우리가 구름 띠를 두르고, 바람 따라 흐르는 물안개는 신비로워 보인다. 잎을 다 떨어뜨린 나무 가지들이 빗속에서..
55편|작가: 캐슬
조회수: 1,960|2007-02-28
우물
우물 우리 집 마당의 우물은 물맛이 좋기로 동네에서는 으뜸이었다. 충충하게 늘 그만큼 검게 괴어 있던 물은 아무리 가물어도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으며 여름의 긴 장마에도 흘러넘치지도 않았다. 물맛과 물의 깊이 까지도 여느 우물과는 분명 달랐다. 두레박이 첨벙하고 ..
54편|작가: 캐슬
조회수: 1,941|2007-01-28
바늘
어디에 뒀더라? 혼잣말을 반복하며 집안 이곳저곳을 마구 헤집어 댄다. 온 집안을 난장판을 만들어 놓고서야 겨우 서랍장 구석에 박혀있는 바늘 쌈지를 찾아내었다. 바늘 쌈지를 바라보다가 오늘은 어딘가 바늘을 둘 곳을 꼭 정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집안 벽을 따라 마땅히 둘 ..
53편|작가: 캐슬
조회수: 1,838|2006-09-10
아무거나
아무거나 정은영 모임이 있어 친구들을 만났다. “뭐 먹을까?” “……” “복날인데 우리 삼계탕 먹을까?” “아무거나” “찜 먹을까?” “아무거나” “그러지 말고 먹고 싶은걸 말하라고……” “그냥 아무거나 먹어“ 친구들..
52편|작가: 캐슬
조회수: 1,482|2006-08-29
파랑
아무나 붙잡고 차나 한잔 하자며 수작이라도 부려야 할 것처럼 뜨거운 날. 여름바다는 축제가 한창이다. 끓어오르는 젊음은 시원한 맥주의 거품처럼 모래밭 위 군데군데서 흘러넘친다. 차가운 맥주병을 딸 때 \'팡!\'하고 터져 나오는 소리처럼 내 몸 속에 갇혀있던 소리들이 ..
51편|작가: 캐슬
조회수: 1,661|2006-08-10
꽃멀미
불청객 봄꽃 이우는 창밖을 바라보는 여행길에 함께 가자며 불청객이 슬며시 무임승차를 했다. 수상한 불청객은 오늘 얼마만큼 떼를 쓰며 나를 힘들게 할런지 알 수 없어 마음을 단단히 동여맨다. 버스로 통학 하는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불청객과의 동행이 시작 ..
50편|작가: 캐슬
조회수: 1,652|2006-08-06
다기 [茶器]
출판사 가는 길모퉁이에 불교에서 차를 공양하는 헌다의식(獻茶儀式)에 사용하는 불구(佛具)인 도자기 파는 가게가 있다. 도자기 가게 앞을 지나다가 곧잘 걸음을 멈춘다. 내 시선이 머무는 곳에는 이미 눈에 익어버린 백자 다기가 있다. 청소 때문인지 가끔 다기의 자리가 조금..
49편|작가: 캐슬
조회수: 1,517|2006-07-21
비밀
비밀 우편함에 담겨져 있는 몇 통의 우편물이 오늘은 집 주인의 문 밖 출입이 없었음을 말해 주는 듯하다. 우편물을 손에 들고 대문을 밀어보니 스르르 문은 소리 없이 열린다. 이층으로 오르며 아이처럼 엄마~를 불렀다. “오냐 나 여기 있다’ 현관..
48편|작가: 캐슬
조회수: 1,468|2006-07-11
도깨비 쌀뜨물
도깨비 쌀뜨물 정 은 영 여자의 몸에 가시가 돋아나고 있다. 처음엔 소름처럼 올라오던 피부가 조금씩 단단해지더니 이윽고 날카로운 가시가 된다. 피부가 날카로워져 자신을 보호하려는 본능으로 가시는 하나 둘 늘어 마침내 온몸이 가시로 뒤덮여지고 있다. ..
47편|작가: 캐슬
조회수: 1,447|2006-06-30
기일
기일 시 할머님의 기일이다.며칠 전부터 조금씩 장을 보아 두었다. 장을 보기 전 무엇을 사야 할건지 메모를 하면서부터 그동안 잊었던 시할머니 생각을 장보는 사이나 자투리 시간이면 간간이 할머니 생각을 하게 된다.처음 시집을 오니 할머니는 손자며느리라고 좋아서 어쩔 줄..
46편|작가: 캐슬
조회수: 1,461|2006-06-25
닭
닭 늦은 아침 잠을 즐기고 싶은 날. 오늘도 어김없이 \'꼬끼오~\'하고 울어 대는 수닭의 울음 소리에 잠이 깨었다. 아이 씨!~ 저 놈의 수닭 머리나쁜 이 들을 닭 대가리라더니 저 놈은 잊어버리지도 않고 아침마다 울어대니...한 마리가 아니어서인지. 한 놈이 울기..
45편|작가: 캐슬
조회수: 1,606|2006-0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