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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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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


BY 캐슬 2006-09-10

 


 어디에 뒀더라?

혼잣말을 반복하며 집안 이곳저곳을 마구 헤집어 댄다. 온 집안을 난장판을 만들어 놓고서야 겨우 서랍장 구석에 박혀있는 바늘 쌈지를 찾아내었다. 바늘 쌈지를 바라보다가 오늘은 어딘가 바늘을 둘 곳을 꼭 정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집안 벽을 따라 마땅히 둘 곳을 생각해본다.

 아침저녁 제법 선선해지니 아이들이 춥다고 가을 이불을 달란다. 꺼내 주마 꺼내 주마하면서 하루 이틀 미루다 보니 큰 아이가 감기에 걸려 버렸다. 그깟 이불하나 꺼내어 주는 게 무어 어려운 일일까 마는 문제는 빳빳하게 풀 먹인 호청을 꿰매야 한다는 데 있었다. 풀은 어찌어찌 미친년 길 가듯 먹여 두었지만 호청을 바늘로 꿰맨다는 게 또 숙제처럼 남아 내일, 내일 하면서 미루었다.

오늘은 어떻게든 해결해 주어야겠다고 거실 바닥에 이불과 호청을 맞물려 놓고 나니 바늘 쌈지를 찾지 못해 한바탕 소동을 벌였다.

  옷장이나 침대처럼 어느 특정한 공간을 차지하기에는 턱없이 작은 미미한 존재이고 가위나 면봉처럼 작지만 주기적인 소용을 갖는 것들에 비하면 바늘의 소용은 너무나 불규칙하기만 해서 필요 할 때마다 자꾸만 어디에 두었지 하며 바늘 둔 곳을 기억해내지 못해 허우적댄다.

 자꾸 잊혀져가는 존재, 그러나 바늘이 꼭 필요할 때는 대부분 바늘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들이다. 침대가 없으면 바닥에서도 잠은 잘 수가 있고 도마가 없다면 접시에 대고 사과든 무를 자를 수도 있다. 하지만 떨어진 교복치마의 아랫단은 바늘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해결해 낼 수가 없다. 더구나 손톱아래나 손가락사이에 박혀버린 작은 가시는 바늘만이 뽑아낼 수가 있다.

 예전 엄마는 바늘 쌈지가 담긴 바구니를 무슨 보석함처럼 밤이면 어두운 백열등 아래서 곧잘 꺼내들고 앉으시고는 했다. 바구니 속엔 고작해야 알록달록한 자투리 천이거나, 어느 옷에 매달려 있었던지 기억조차 희미한 색의 단추들이 고작이었다.   엄마는 바구니를 쏟아 부어 하나씩 다시 제 자리를 정해 담기 시작하셨다. 하지만 보잘 것 없는 것들의 그 자리라는 것이 아무런 경계선도 없이 차곡차곡 차례대로 놓아두는 것이라서 누구라도 한번 손을 넣어 뒤적이기만 해도 원래 놓아둔 그 작고 보잘것없는 것들의 제 자리는 없어져 버렸다.

 바늘을 뽑아든다.

바늘은 작고 미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늘은 위험한 도구로 분류된다. 작은 단추나 골무 따위를 잃어버렸을 때는 찾다가 그만두기도 하지만 바늘을 잃어버리게 되면 필사적으로 찾아서 어딘가 안전하게 꽂아두고 나서야 안심하게 된다.

 엄마는 늘 바늘을 함부로 다루는 나에게 약간은 과장된 이야기를 들려 주셨다.

예전 어떤 여자가 바느질 후 바늘을 잃어 버렸다. 여자는 자신이 잃어버린 바늘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이내 기억에서 지워버렸다. 어느 날 여자는 자신이 잃어버렸던 바늘에 찔리고 말았다. 여자의 살 속을 파고든 바늘은 피를 타고 들어가 여자의 심장에 꽂혀 죽어버렸다고 하셨다.

 날카로운 바늘 끝이 여자의 심장에 꽂혔다는 사실에 나는 공포감을 느껴야 했었다. 지금도 바늘을 잡을 때면 그 여자가 생각나서 바느질이 끝난 후 어디에 바늘을 꽂아둘 것인가를 미리 정하곤 한다.

 빳빳한 이불호청위에 바늘이 하얀 실을 흔적처럼 남기고 지나간다. 바늘이 뚫고 지나간 자리는 고요하다. 여물게 맞물린 이불과 호청은 하얀 실로 인해 단단한 결속력으로 맞붙게 되며 간간이 공기구멍을 만들어 주어 포근함을 더해 줄 것이다.    젊었던 엄마가 이불호청을 손질하시던 날이 생각난다. 나는 곧잘 엄마의 곁에서 이불 호청 모서리를 마주 잡아 드리다가 잠깐씩 이불 위에 누워 빳빳하게 말라버린 밀가루 풀 냄새를 맡고 좋아했었다. 그 달작지근하고 고소한 풀 냄새라니……좀 일어나라는 엄마의 채근에 두어 바퀴 굴러 이불아래 바닥으로 내려 누워 엄마를 바라보면 엄마는 간간이 바늘을 까만 머리칼 속에다 문지르시고는 하셨다.

 풀 먹인 호청 속으로 힘겹게 밀어 넣어지던 바늘은 엄마의 머리카락에 몇 번만 쓱쓱 문지르고 나면 부드럽게 호청 속으로 밀려들어갔다. 바늘이 오후나절 내내 저 할 일을 마치면 돌아가 마지막으로 꽂히던 곳도 엄마의 머리카락으로 만들었던 바늘 쌈지 속이었다.

 바늘을 들여다본다.

바늘귀가 흐리게 보인다. 어느 날 부터인가 천천히 나빠지는 시력 때문인지 바늘귀가 자꾸만 작아지더니 간혹 바늘귀가 겹쳐져 보이기도 한다.

 나를 시집보내시던 그해 가을 엄마는 긴 머리카락을 절반쯤 자르셨다. 무명으로 네 귀퉁이 반듯한 바늘 쌈지를 만드시고 그 속에다 엄마의 머리카락을 채워 넣으셨다. 엄마의 머리카락이 든 바늘 쌈지는 때로는 부드럽지만 가끔 알 수 없는 말랑말랑한 느낌으로 만져지고는 한다.

 친구들이 깜찍하고 예쁜 바늘 쌈지를 결혼 선물로 주었지만 쌈지에는 안타깝게도 바늘이 없었다. 엄마의 쌈지에는 용도대로 쓰도록 바늘이 가지런히 꽂혀 있었다. 그 많던 바늘이 어디론가 하나 둘 달아나버리고 이제는 작고 여린 바늘이 두개만 남아있다. 간혹 두개의 바늘도 곧잘 쌈지 속에 숨어들어버린다. 바늘이 없어 휑한 쌈지는 엄마의 사랑이 날아가 버린 것만 같아 쓸쓸하다.

 바늘은 이제 어디서건 쉽게 살 수 있는 물건이 아니기 때문에 내일은 큰 시장으로 나가야겠다. 예전에 엄마가 꽂아주셨던 것처럼 크고 작은 저마다의 용도를 가진 바늘들을 쌈지에 가지런히 꽂아 두고 싶다. 꼿꼿한 바늘 같던 엄마를 닮아가는 나와  이런 나를 닮아올 내 딸. 아마 우리는 바늘을 멀리 할 수 없는 모녀 삼대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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