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일
시 할머님의 기일이다.
며칠 전부터 조금씩 장을 보아 두었다. 장을 보기 전 무엇을 사야 할건지 메모를 하면서부터 그동안 잊었던 시할머니 생각을 장보는 사이나 자투리 시간이면 간간이 할머니 생각을 하게 된다.
처음 시집을 오니 할머니는 손자며느리라고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셨다.
남편이 첫 손자였으니 할머니의 사랑이 어련하셨을까?
친정에서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안 계셨으니 나는 할머니라는 그 따뜻한 호칭만으로도 마음이 포근해지는 느낌을 받았었다. 하지만 할머니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시댁식구들의 마음을 헤아리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할머니는 치매를 앓고 계셨는데 식구들은 이미 많이 지쳐가고 있었다.
할머니~ 하고 부르면 '뉘요' 하면서 실눈을 뜨시고 나를 빤히 바라보시고는 했는데 '저 에요.' 하면 '누구라고?' 하셔서 할머니와 나는 한참씩 통성명을 하느라 정말 해야 할 이야기보다는 서로가 누구인지 확인하는데 더 오랜 시간이 걸리고는 했다. 실컷 이야기 다 해놓고 나면 또 ' 누구라고? '하셨던 할머니이셨다.
은발의 머리카락에 은비녀를 찌르셨으며 치아가 불편하셔서 늘 누룽지 삶은걸 좋아하셨으며 긴 장죽을 물고 눈을 지그시 감은 채로 담배를 즐기시던 할머니. “네가 홍이 마누라 맞자” 거짓말처럼 할머님은 어느 날은 말간 기억으로 손자며느리인 단박에 알아보시는 날도 간혹 있었다. 그런 날은 제법 할머니랑 남편의 어릴 적 이야기를 덤으로 들을 수 있는 시간도 오붓하게 가지고는 했었다.
할머니의 인정스러움은 끝이 없어서 어느 날은 입에 물고 계시던 사탕도 쓱 꺼내서 한사코 입에다 물리시려고 하셨는데 나는 곧잘 기겁을 해서 얼른 받아 먹는척하고는 뱉어버리고는 했었다. 치매라는 병의 특성상 할머니는 무엇이든 드시던 것들을 이곳저곳에 숨겨두셨다. 가끔 이것저것 꺼내셔서 먹으라고 하셨는데 자주 그것들이 변했거나 차마 덥석 받아 먹기는 뭣한 것들이어서 당황스러웠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시 할머님의 치매중세가 점점 심해지면서 가족들에게는 또 하나의 일거리가 생겼다. 할머니는 곧잘 집을 나가셨는데 집을 찾아오시지 못하시니 그런 날은 온 식구가 총 출동하여 서면 거리를 이 잡듯이 찾아다녀야만 했다. 그날도 집 근처에서 시할머니를 찾지 못해 집에서 조금 먼 곳까지 구역을 정해 시할머니를 찾아 나섰다. 부산에서 가장 번잡하고 복잡한 서면 로터리 주변을 제가 맴돌며 할머니를 찾고 있을 때였다. 지나가던 버스도 갑자기 속도를 줄이며 천천히 가고 버스 속의 사람들도 길 가던 사람들의 시선도 도로 한가운데로 모아지고 있었다. 무심코 고개를 돌리던 나는 악! 하고 소리를 지를 뻔했다. 세상에 시 할머님이 8차선 도로 한가운데를 이리저리 다니시고 계셨다. 지팡이를 들어 차들을 향해 꾸지람을 하시면서 화가 많이 나 계셨다. 차들은 빵! 빵! 거리고 도로 위는 엉망이었다. 급기야 연락을 접한 교통순경 아저씨가 오셔서야 할머니를 인도로 모셔낼 수 있었다. 인도로 나오신 할머니는 갑자기 교통순경아저씨를 향해 빨갱이 놈이라고 지팡이를 휘둘렀다.
이 나쁜 빨갱이 놈이 어디서 온기여 죽어야 된다. 나쁜 빨갱이 놈아. 우리 영감 내 놔 어디다 숨긴 거여. 공산군이 지금 처 들어 오는 거 몰러. 지금 빨리 피난가야 혀. 자네도 빨리 가서 봇짐을 싸란 말이여.
교통순경아저씨가 눈치를 채고 '예 알겠습니다.' 하면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하셨다. 시 할머님은 6.25 때 피난 가시던 아픈 기억 속에 순간순간 갇히는 듯하셨다. 전쟁으로 시할아버지를 잃으신 시할머니는 전쟁의 휴유증을 죽는 순간까지 고통 받으신 것이다. 할머니는 6.25사변을 겪으시며 할아버지와 사별하셨다. 할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깊어서였을까? 가끔 그렇게 할아버지를 내 놓으라고 떼를 쓰셨다.
경찰 아저씨의 도움으로 집으로 무사히 돌아오시면 시 할머님은 피곤하신 듯 며칠 동안은 깊은 잠을 주무셨다.
할머님은 개나리 봇짐을 잘 싸셨다. 아마 지금이라도 짐을 야무지게 잘 싸는 대회가 있다면 우리 할머니가 단연코 일등을 하시지 싶다. 할머니의 개날 봇짐의 압권은 단연코 사기요강이었다. 차곡차곡 싼 봇짐의 높이는 간들간들해 보여도 툭 건드려 넘어트려도 단단한 모양새는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봇짐의 맨 위 자리는 언제나 사기요강이 단단히 매여져 있었다.
"할머니 이 요강이랑 짐은 왜 싸셨나요?"
내가 물으면 그거 꼭 가져가야 혀. 손대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시고는 했다.
간혹 파출소 순경을 대동해 오시기도 하셨는데 우리 집 다락방에 시아버님이 간첩을 숨겨 두었다고 신고를 하신 것이다. 그 때만해도 간첩이 종종 잡히던 때라 시할머니의 치매를 모르는 경찰들은 긴장해서 출동하실 수밖에 없었다. 또렷하게 정말 본 것처럼 전황설명을 하시니 어느 순경 아저씨가 믿지 않았을까? 이후에도 시할머니는 관내 여러 파출소를 돌며 간첩신고 소동을 일으키셨다. 나중에는 경찰서까지 소문이 나 시할머니가 간첩신고를 하시면 웃으시며 '간첩 잡으러 가자'하시며 시할머니를 집에다 모셔다 주시고 가셨다.
시할머니가 떠나신 지도 벌써 스무 해가 넘었다.
이제 시아버님이 시할머니와 같은 치매를 앓고 계신다.
돌아보니 세상일은 아무것도 아니다.
모든 것은 흘러가는 것이고 흘러가면 그만이다.
붙드는 순간 흘러가 버리는 것에 집착한다는 것은 모두 쓸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