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거나
정은영
모임이 있어 친구들을 만났다.
“뭐 먹을까?”
“……”
“복날인데 우리 삼계탕 먹을까?”
“아무거나”
“찜 먹을까?”
“아무거나”
“그러지 말고 먹고 싶은걸 말하라고……”
“그냥 아무거나 먹어“
친구들은 나의 “아무거나” 라는 말에 곤란한 얼굴이 된다. 딱 부러지게 이게 먹고 싶다든가 뭘 먹으러 가자든가하면 메뉴 선택의 고민이 없어질 텐데 나는 늘 먼저 의견을 내놓지 못하는 편이다.
나름대로 오늘은 뭘 먹을까 궁리를 하긴 하는데 결론은 항상 물에 술을 탄 듯, 술에 물을 탄 듯 두루뭉수리 한 대답들뿐이다. 그래 놓고도 친구들이 어느 음식점을 정해서 앞서 들어가면 난 이거 맛없어 라며 뒤늦게 의견을 내놓아 친구들의 기분을 상하게 한다.
아무거나 라는 말은 “네 맘대로 해도 난 아무상관 안 할 테니 라는 뜻이거나, 당신이 원하는 대로 해 난 뭐든 좋아 당신이 좋다는 것이면 뭐든지 다”라는 뜻이다.
가끔씩 나 말고도 아무거나 라는 말을 별다른 생각 없이 부부거나 연인사이나 친구들 간에 쓰는 경우를 흔히 보게 된다.
암묵적으로 상대방의 의견에 동의한다는 것을 표현한다는 이 말은 대화를 원활하게 하는 역할도 한다. 아무거나 는 한 쪽이 의욕을 갖고 일을 추진할 때엔 약간 애매하기도 하지만 긍정하고 지지하는 방향이 더 크기 때문에 때로는 힘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게 말이다. “그래, 나도 좋아”란 말하고는 비슷해 보이지만 질적으로 다르다. “그래 나도 좋아”라는 말은 100퍼센트 상대방의견에 동의한다는 뜻이다. 하여 그 의견을 행동에 옮겼을 때 행여 실패를 하더라도 책임을 함께 나누어 가져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적극적인 동의는 정말 좋아할 때 말고는 흔쾌히 나오기는 그러나 이 아무거나 에도 예외가 있기는 하다.
예를 들자면 남편과 나 사이의 의사소통은 회사 일이나 사회생활의 한 부분처럼 의미전달을 분명히 하지 않아도 되는 경우도 있기는 하다. 대부분의 집안일을 결정하는데 있어 묵시적으로 주도권을 갖는 사람은 나로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주도권을 가지고 있지 않은 남편은 어떤 일을 결정할 때 소극적인 동의나 반대의 의사를 가볍게 표현하기만 하면 된다.
부부로 사는 게 오래일수록 나의 아무거나 라는 표현은 늘어나고 있다. 의사소통의 수질이 3급수쯤으로 떨어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내가 할 때는 아무 부담 없이 하던 아무거나 라는 표현이 막상 다른 사람에게서
아무거나 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어느 순간 짜증이 나고 인간관계 사이의 소통방식에 문제가 생기려한다. 나 자신은 아무렇지 않게 쓰던 아무거나 라는 말이 타인으로부터 내가 들었을 때는 왜 문제가 되는 건지 모르겠다.
진부한 표현이겠지만 부부생활이나 사회생활은 이인삼각경기와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결정에 대한 책임을 나누어 가지고 양발이 균형을 이루게 해 앞으로 달려 나갈 수 있어야한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불화는 자신도 모르게 쌓이는 말버릇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없도록 해야겠다. 애매한 아무거나 라는 말보다는 삼계탕이 먹고 싶다든가 이것을 하겠다는 분명한 표현을 이제부터는 분명히 하도록 해야겠다.
이젠 멀리 하려하는 아무거나를 위하여 축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