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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멀미


BY 캐슬 2006-08-06

 

                                  불청객


                                              


 봄꽃 이우는 창밖을 바라보는 여행길에 함께 가자며 불청객이 슬며시 무임승차를 했다. 수상한 불청객은 오늘 얼마만큼 떼를 쓰며 나를 힘들게 할런지 알 수 없어 마음을 단단히 동여맨다.

 버스로 통학 하는 중학생이 되면서부터 불청객과의 동행이 시작 되었다. 매일아침 30여분의 버스 통학은 참기 힘든 고통이었다. 아침이면 멀미약이 손에 쥐어졌다. 멀미약은 불청객인 차멀미는 달래주지만 대신 졸음과 어지러움 증을 덤으로 주어 학교에 이르면 오전 내내 책상에 엎디어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했었다. 겨우 차멀미가 가라앉는 오후가 되면 다시 버스를 타야하니 내 얼굴은 늘 잘 익은 탱자 같았다. 처음엔 차를 타지 않아서 그러니 조금 더 다니면 괜찮을 거라고 하시던 아버지께서도 두어 달이 지나도록 별반 달라지지 않는 딸의 차멀미에 걱정이 많아지기 시작하셨다.

 “이번은 효과가 분명 있을 거다. 누가 이렇게 해보았는데 정말 차멀미를 안 한다네.”

 하시면서 엄마는 민간요법들을 많이도 알아 오셨다. 다른 이들은 해보고 좋아졌다고 하는 비법들은 이상하게 나에겐 별 효과가 없는 것들 뿐 이었다. 여러 가지 비법이라는 것들 중 기억에 남는 것이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 방법은 마당의 깨끗한 흙을 손수건에 한주먹 싸서 가지고 있다가 멀미가 나면 흙냄새를 맡는 방법이었다. 자동차 기름 냄새에 속이 울렁거릴 때 얼른 흙을 싼 손수건을 코에다 대어보면 잠시 낳아지는 듯 했지만  흙을 코에서 떼는 순간이면 역습하는 멀미에 다시 멱살을 잡히고는 했다. 두 번째 방법은 버스를 타기 전 파스를 반으로 잘라 배꼽 위에 붙이는 것이었다. 이 비법도 잠간 동안의 효과는 있었지만 지속적인 효과는 없었다.

 차멀미를 견디다 못한 나는 집의 절반지점까지 걸어가는 친구를 따라 걷기로 결심을 하였다. 친구와 함께 걷는 동안은 친구가 있어 힘들거나 외롭지 않았지만, 친구와 헤어지고 집까지 혼자 걷는 길이 멀고도 멀어 나 자신과의 길고 긴 외로운 싸움의 시작이 되고는 했다. 그저 앞만 보고 한 없이 걷다보면 집이었고, 집은 곧 외로움의 끝이 되어, 마른풀처럼 주저앉고는 했다.

  딸의 멀미를 보다 못한 아버지가 동네에서 제일먼저 자동차를 사셨다. 덕분에 우리 집은 동네에서 자가용을 가진 유일한 집이 되어 친구들의 부러움을 샀다. 아버지의 차를 타고 통학하게 되면서 불청객인 차멀미와의 동행이 천천히 멀어지기 시작했고 2학년이 겨울방학 즈음에는 혼자서 곧잘 버스를 타는 날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숨어 있다가 나타나고 한순간 사라지는 차멀미의 불청객처럼 삶의 고비마다 나타나는 크고 작은 멀미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살아가는 순간순간에도 불청객은 숱한 멀미의 모습으로 자주 무임승차를 한다. 삶의 신열로 끓어오르던 불청객들의 울렁거림은 토악질 한 번이면 순간 자취 없이 사라지기도 한다. 삶의 불청객들에게 끝없이 시달리다보면 내성이 생겨 스스로 털어내고 이겨내게 되는 차멀미와 같지 않을까? 부딪치고 맞서서 강해지며, 두려움은 어리석은 인간의 나약함이라 큰소리도 쳐 보지만, 추워서 오소소 돋는 소름처럼, 없어지고 편안해지면 곧잘 잊어버리는 삶의 멀미도, 때로는 나에게는 그저 단순한 불청객이다.

 불청객을 달래보려고 오렌지의 껍질을 벗긴다. 축축한 과육이 손톱 밑으로 스며든다. 쪽마다 맛이 다른 오렌지를 불청객이 좋아해주기를 바래본다. 울렁이는 가슴을 진정시키려고 허리를 반듯하게 하고 목을 곧게 세우고 고른 숨으로 긴장을 한다.    잠시 얌전하다가도 불쑥불쑥 나를 공격하는 이 변덕스런 화상 때문에 버스가 서는 곳마다 부지런을 떨며 내려서는 수고를 해야 한다. 웃고 밝은 기분을 유지하려고 욕심을 낸다. 불청객을 위하여 임금님 애첩 고르듯 밝은 노래를 간택하여 불러주는 수고도 기꺼이 한다. ‘어머나! 어머나! 이러지 마세요.’ ‘태평양을 건너 대서양을 건너’ 불청객은 노래 솜씨가 영 마음에 들지 않는지 신통한 반응이 없다.

 앞자리의 동행중 한분이 멀미에는 소주가 좋다며 잔을 내민다. 눈 딱 감고  받아 마셨다. 진즉 소주가 좋은 줄 알았으면 미리 마셔둘걸 그랬다. 소주 한 잔에 실없이 나오는 웃음 속으로 가뭇없이 떠나버릴 불청객을 생각한다. 차멀미보다 꽃 멀미가 더 하고 싶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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