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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기 [茶器]


BY 캐슬 2006-07-21


 출판사 가는 길모퉁이에 불교에서 차를 공양하는 헌다의식(獻茶儀式)에 사용하는 불구(佛具)인 도자기 파는 가게가 있다. 도자기 가게 앞을 지나다가 곧잘 걸음을 멈춘다. 내 시선이 머무는 곳에는 이미 눈에 익어버린 백자 다기가 있다. 청소 때문인지 가끔 다기의 자리가 조금씩 옮겨져 있기도 한다.

 맑고 신성한 차는 불교의 공양6물(향, 등불, 차, 꽃, 과일, 음식) 가운데 하나이므로 다기는 향로, 촛대 등과 함께 꼭 필요한 공양법구이다. 찻물을 보관하거나 이동하는 데 쓰이는 것이 정병(淨甁)이라면 다기는 차를 담아서 불전에 공양할 때 사용한다. 처음에는 토기로 된 다기로 시작하여 구리로 된 것이나 아름다운 청자의 상감을 지닌 다기가 만들어졌으며 오늘날에는 유기제품과 도자기로 된 것이 주류를 이룬다. 대부분 뚜껑이 있는 잔 모양이며 잔 받침이 있고 크기는 15cm 정도이다. 청자로 된 다기들은 뚜껑이 없이 잔 받침 위에 연꽃 모양으로 된 잔을 갖춘 경우가 많다

고려시대까지는 불전에 차 공양을 하였으나 조선시대의 억불정책 이후 차 대신 맑은 물을 다기에 담아 공양한다. 법당에 차를 올릴 때에는 다기를 받침에 받쳐서 들어간다. 다기를 놓는 자리는 부처 앞 중앙에 있는 향로의 왼쪽이다. 불전에 차 공양을 하면 대중이 함께 다게(茶偈)를 염불한다.

오묘한 빛갈의 하얀 백자다기를 가지고 싶었다. '꼭 사야지'하며 늘 벼르기만 하였는데 드디어 오늘 백자 다기를 살 수 있게 되었다. 다기를 포장 하다 보니 차를 좋아하는 사람이 생각났고 하나 사 주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지자 포장이 다 끝나갈 무렵 '한 세트 더 포장해 달라'고 하였다. 주인은 '꼭 같은 건 없다'며 빛깔이 다른 다기를 권했지만 다른 것은 싫다고 도리질을 하는 나를 설득하기는 무리라고 생각했는지 주인은 가게를 다 뒤져 한 세트를 더 찾아내었다.

 다기를 받아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100점짜리 시험지를 든 아이의 발걸음처럼 날렵해진다. 혹여 다른 이와 부딪치기라도 할까봐 큰 맘 먹고 택시를 탔다. 신호마다 걸리는 택시 기사의 운전솜씨도 오늘은 아무렇지 않다. 집으로 들어서기 바쁘게 다기를 씻어 차 끓일 준비를 하고 올해 처음 땄다고 지인이 정성스레 선물로 주었던 햇 차를 꺼냈다. 깊은 차의 향과 맛을 기대를 하면서 물을 끓이고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를 준비했다. 두근거리는 가슴은 온전히 속일수가 없다. 은은하고 깊은 맛, 고고하고 도도하기까지 한 차향이 내 코를 통해 나의 아둔한 뇌로 천천히 전달되어진다.'그래 이 맛이야!'차의 포만감으로 행복하다.

 예전에는 다도라고 하면 참 멀게 느끼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우리의 녹차를 주로 마시는 다도문화(차 문화)가 웰빙 바람을 타고 크게 대중화 되었다.

다도라고 하면 단순히 녹차를 주로 한 차를 마시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다도에는 철학과 사상, 도덕, 미술, 문예, 건축, 음악 등 우리의 전통을 나타낼 수 있는 모든 것이 함축되어 있는 종합문화이다.

  차를 마시는 것에도 예법(다례: 茶禮)이 있어 다기(다도의 그릇과 도구)를 잡을 때는 항상 두 손으로 잡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렇게 하면 안정감이 있어 보여 좋고 또 경건한 마음으로 정성스럽게 마시기 위함이다. 두 손으로 잡을 때는 손바닥은 하늘을 보고 손등은 땅을 보도록 잡아준다. 그 이유는 음은 등지고 양을 향한다는 동양사상의 깊은 뜻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특히 전통적인 의식 다도의 경우는 28가지에 이르는 많은 종류의 다구를 사용하여 30여 가지 절차로 진행되었다고 한다.  다례 중간에 시를 읊고 마지막엔 학춤을 추기도 하였다고 하니, 이러한 전통 다도나 다례는 일반인들이 하기에는 너무나 복잡하고 번거로워서 대중화에 큰 걸림돌이 되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제 생활 다도는 그야말로 현대인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쉽게 할 수 있는 다도이다.  다소간 격식도 생략되고 개량화 된 다구도 적절히 이용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마음을 안정되게 해 주는 녹색의 우리 다도….  우리 차- 녹차의 맛과 향을 마음을 열고 한번 깊숙이 음미해 보자.

  우리 차(녹차)를 마실 때는 차의 색과 향, 맛을 즐기며 마셔야 한다. 찻잔을 두 손으로 들고 입으로 바로 가는 것이 아니라 배 앞에서 잠시 멈추어 차의 빛깔을 감상한 후 찻잔을 천천히 입가로 들어 올려 잠깐 향을 음미한 후 맛을 보는 것이다.

  녹차의 맛은 달고 부드러운 걸 최고로 치고, 씁쓰레한 것은 그 아래로 여긴다.  녹차의 색은 청취색이 제일이고, 남백 색이 그 다음, 그 밖에 황색등은 하품으로 평가받는다.

 차를 만드는 과정(제다)에서 차를 끓일 때 물은 매우 중요하다. 좋은 물에는 여덟 가지 조건이 있는데 가볍고, 맑고, 차고, 부드럽고, 아름답고, 냄새가 없고, 비위에 맞고, 탈이 없어야 한다. 급히 흐르는 물과 고여 있는 물은 좋지 못하고, 맛도, 냄새도 없는 것이 참으로 좋은 물이다.

  좋은 녹차는 색깔, 향기, 맛 이 세 가지가 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것이 좋다. 차의 향기는 독특한 것이기에 다른 향과 섞으면 좋지 않다. 차는 예로부터 혼자서 마시는 것이 가장 좋고, 둘이 마시는 것이 그 다음이라 했다.

 이 하얀 백자 다기에 아주 천천히 푸른 초록의 녹차 색이 스며들 것이다. 내 삶도 그렇게  녹차 빛처럼 천천히 고요히 초록빛이 물들어 갔으면 좋겠다.

 많고 많은 다기들 중에서 내가 굳이 백자를 고집하는 이유는 단 한가지다. 하얗다 못해 푸른빛마저 도는 다기 속에 녹차의 은은한 빛이 원래 있었던 양 자연스레 물 들어가는 그 여유로움을 닮고 싶다. 나를 아끼고 사랑해주는 지인들 중의 한 사람에게라도 이런 여유를 선물하게 되어서 행복하다. 그 이도 나처럼  이런 기분이었으면 한다. 조급해하지도 않고 욕심 부리지 않고 , 남을 아프게 할 줄 모르는 그런 사람이기를 소망해본다. 하얀 다기 속에 담겨서 천천히 피어오르는 녹차의 은은함처럼 향내 나는 사람이게 하소서! 하얀 백자 다기에 내면속의  자신을 비추어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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