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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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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랑


BY 캐슬 2006-08-10

  아무나 붙잡고 차나 한잔 하자며 수작이라도 부려야 할 것처럼 뜨거운 날. 여름바다는 축제가 한창이다. 끓어오르는 젊음은 시원한 맥주의 거품처럼 모래밭 위 군데군데서 흘러넘친다. 차가운 맥주병을 딸 때 '팡!'하고 터져 나오는 소리처럼 내 몸 속에 갇혀있던 소리들이 목을 타고 아우성이다.
 여섯 살이었던 아이, 작고 마르고 유난히 까만 피부를 가지고 있어 까만 눈만 반짝여 보였던 아이는 고집이 세고 말수가 적어 가끔씩 애어른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복숭아꽃이 이운자리에 복숭아가 총총히 맺히던 날들이었다. 언제부터였는지 주인집 또래 계집아이와 복숭아나무에 맺히기 시작하던 솜털이 뽀송해지던 애기 복숭아를 따서 모으는 놀이에 빠져 있었다. 풋보리처럼 여린 초록의 열매가 맥없이 손안에서 도르르 굴러 자지러지는 그 연약함을 즐겼던 건지도 모르겠다. 둘은 치마 폭 가득 따다 모은 애기복숭아들을 작은 대소쿠리에 담아 법당 아래 노란 휘장 을 걷고 그 속에 숨겨 놓았다. 주인집 아저씨이고 친구의 아버지는 대처승이었다. 집의 위채엔 부처님이 모시는 법당이 있었으며 마당을 마주한 아래채에는 우리 집과 친구네가 나란히 마주 하여 살고 있었다.  그 작은 애기복숭을 따서 어쩌자는 것이었는지……. 하지만 우리의 애기 복숭아 따기 놀이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점심을 드시러 오신 아버지 곁에서 막 수저를 들려던 어머니가 주인집여자의 손짓에 불러 나가셨다. 얼마 후 돌아오신 엄마의 표정은 무거워 보였지만 별 말씀이 없었다. 아주 드물게였지만 나를 혼내시던 표정의 엄마의 얼굴표정이어서 나는 혹시 ……하는 두려움을 느꼈다. 아버지가 점심을 드시고 나가시자 예감은 적중했다. 엄마는 나에게 매를 드셨다. 왜 애기 복숭을 땄느냐고 물었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해 엄마의 화를 더 돋우었다. 어이없게도 먹지 않고 법당에 숨겨 두었다고 항변하며 대 들어서 엄마의 더 큰 노여움을 샀다. 먹지 않았으니 덜 혼나도 된다고 생각했던 나였다. 매를 맞으며 복숭아를 딴 게 잘못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아 놓고도
엄마가 회초리를 더 높이 들었을 때도 끝내 잘못했다는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잘 못했니 안 했니’를 수없이 나에게 되물으며 면죄부의 구실을 주려 했지만 나는 꿀 먹은 벙어리마냥 입을 굳게 다물어 버렸다. 나의 고집에 두 손을 다 들어버린 엄마는 마당에 가만히 서 있으라는 벌을 내리셨다. 가끔 곁을 지나시며 ‘그래도 잘못하지 않았느냐’고 다시 항복의 기회를 주셨지만 나는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그렇게 혼나고 있던 그 순간 주인집 친구는 방문 틈 사이로 야단맞는 내 꼴을 훔쳐보고 있었다. 친구와 눈이 마주치자 부끄러움에 어찌할 줄을 몰랐다. 먼저 애기 복숭아를 따자고 한 것도 법당에 숨겨두자고 한 것도 친구였는데 왜 엄마는 나만 혼내는 건지 나는 골이 잔뜩 나기 시작했다.
뜨거운 햇살아래 꼼짝하지 않고 가만히 서 있는 다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잠시 구와 눈이 마주치는 다음순간 어이없게도 피식 웃음이 났는데 그걸 하필 엄마가 보시고 말았다. ‘벌서는 놈이 어디 웃고 있느냐’며 화가 더 나버리신 엄마가 양동이에 물을 가득 담아 오시더니 머리위에 끼얹으셨다. 순간 앞이 캄캄해지며 제 자리에서 휘청거리던 나를 향해 두 번째 물바가지를 들고 오시는 엄마를 똑바로 쏘아 보며 외쳤다.
“난 저수지에 빠져 죽어 버릴 거야.”
나의 반격에 어이없어하는 엄마를 쳐다보지도 않고 앞만 보고 달리기 시작했다. 집에서 의림지까지의 거리는 어른의 걸음으로도 20분도 좋게 거리는 거리라는 걸 안 것은 몇  해 전 다시 제천을 찾아서였다.
설마 저것이 정말 저수지에 빠질까 하던 엄마는 나의 뒤통수가 저만큼 멀어지자 혹시 하는 ……생각이 드셨단다. 부랴부랴 뒤를 따라 오시던 엄마는 저수지가 가까울수록 조금씩 늦어지는 아이의 걸음에 그럼 그렇지 생각하던 다음순간 저수지 둑에서 잠시 주춤하던 아이는 발을 잘못 디뎠는지 보라는 듯이 물속으로 자맥질을 하고 말더란다. 아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혼비백산한 엄마는 저수지 둑으로 달려갔고 몇 번이나 물속과 물위를 솟구쳐 오르내리던 아이의 발하나를 간신히 잡은 엄마는 정신없이 아이를 물가로 데려 나왔고 이웃 밭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몰려오고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 뱃속에서 오글오글 물 끓는 소리만 요란하던 아이는 며칠 동안 고열과 헛소리를 하며 않다가 깨어났다.
  왜 그렇게 혼냈었느냐고 훗날 아이는 엄마에게 물었다. 세 들어 살면서 그런 일이 생겼었는데 주인집 여자는 내가 자기 딸을 꼬드겨 그런 거라고 화를 냈었단다.  엄마는 주인집 여자가 보라고 더 너를 혼 낸 것이라며 그날 아이를 주인집 여자가 보고 속이 시원해 할 만큼 때려야 했던 아픔 때문에 더 빨리 우리 집을 가질 수 있었다는 것도 그때서야 알게 되었다. 원래 첫아이는 잘 키워 보려고 더 혼도 많이 내고 하는 거라고 엄마가 말씀하신다.  하나 둘 아이가 더 태어나고 엄마도 나이가 더해지면서 엄마는 조금씩 지치고 포기하게 되는 거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이들은 둘째 셋째 내려 갈수록 영악해지고 엄마들은 무뎌지는 거란다. 그런데 너는 도대체 왜 그렇게 고집이 센 거냐며 되물으셨다.
 저수지사건 이후 어른이 된 나는 물이 종아리만 넘어도 두려움에 진저리를 친다. 심지어 목욕탕 타일에 비쳐 푸르게 보이는 냉탕의 물조차도 두려워하면서도 저수지의 그 깊고 음습한 물의 빛깔인 파랑색을 자주 이야기 한다. 산그늘이 저수지에 내려앉고 파란 물빛이 검게 보이면 현기증으로 제대로 바라보지도 못했던 파랑을 이해하려고 영화 블루를 3번이나 보았다. 아이는 어찌어찌하여 어른이 되었으나 영화 속의 줄리엣 비노쉬처럼 이러저러한 구속에서 벗어나 푸른 삶을 시작하려 노력하는 중이다.
저기 멀리 수평선은 맞닿은 하늘과 길고긴 입맞춤을 하고 해변에서 바다는 파란 물과 포옹을 한다. 날마다 좋은 것만 생각하게 하는 파란색. 자유로운 파랑, 이성적인 파랑, 파랑은 차갑다 혹은 깊은 색이다. 무엇에도 구속되거나 흔들리지 않는 차가운 열정으로 깊은 사랑을 이야기하는 색이다. 혼자 보는 바다의 파란색은 여전히 서늘하고 쓸쓸하고 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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