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
우리 집 마당의 우물은 물맛이 좋기로 동네에서는 으뜸이었다. 충충하게 늘 그만큼 검게 괴어 있던 물은 아무리 가물어도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으며 여름의 긴 장마에도 흘러넘치지도 않았다. 물맛과 물의 깊이 까지도 여느 우물과는 분명 달랐다. 두레박이 첨벙하고 물속에 드러눕기까지는 두레박 끈을 서리서리 길게도 풀어 내려야했었다. 여름이면 얼음처럼 차가웠으며 겨울엔 꽁꽁 언 손도 녹일 만큼 따뜻했다,
우리 집 장맛이 유별나게 좋았던 것은 엄마의 솜씨가 아니라 남의 집과 다른 물맛 때문이라고 이웃에서 수군거리는 게 정말 엄마 솜씨의 비결로 들릴 만큼 우리 집 물맛은 신비로운 데가 있긴 있었다. 겨울이면 달콤하게 익어 입에 착착 붙게 잘 익혀지던 동치미의 국물 맛도 우물물 때문일 것이라는 소문은 김치 담그기에 자신 없던 여자들에게 좋은 핑계거리가 되기도 해서 엄마의 우물에 대한 사랑은 각별했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단수가 되는 날이면, 동네 사람들은 목을 축이고 밥을 안칠 물을 얻으러 분주하게 우리 집 대문을 넘나들어야 했었다. 그럴 때면 거만한 모습으로 대문간을 지키고 섰던 동생과 나는 평소엔 아는 척도 안 하던 이웃들이 살살거리며 던지는 마음에도 없는 말을 들으며 우쭐거리고는 했었다. 드물게였지만 다음 날 까지 수돗물이 나오지 않을 때도 있어 이른 새벽부터 대문을 기웃거리는 아낙들이 있기도 했다. 하지만 엄마가 아침의 첫물을 길어 부엌에 들이기 전에는 사람들이 먼저 물을 긷는 것을 절대 허락하지 않으셨다. 해가 솟아오르면 대문을 열어 두었다가는 해가 넘어간 이후 또한 절대로 집 밖으로 물이 나가는 걸 용납하지 않으셨다.
아버지가 마음에 꼭 드는 집 하나를 보고 오셨다고 좋아하시며 내일 모두 가보자고 하셨을 때 내 귀가 쫑긋 열렸다. 새로 지은 깨끗한 양옥집을 밤새도록 머릿속에 그리며 아버지가 가끔 말씀하셨던 붉은 줄 장미가 울타리 가득 피어 있을 상상에 잠을 설쳤지만 꿈은 할머니 말씀처럼 현실과 반대였다. 아버지가 멈추어 서신 곳은 오래된 한옥이었다.
커다란 나무대문의 모양새로 보아 ‘이리 오너라.’하고 부르면 행랑아범이 문을 열어 주어야 할 것 같은 대문이었다. 까만 초인종을 누르자 ‘누구요’라는 쉰 목소리가 들렸고 낮게 신발을 끄는 소리가 천천히 들리더니 한참만에야 뚱뚱한 할머니가 대문을 여셨다. 이미 아버지와는 면이 있었던 듯 할머니는 ‘그래 어찌 마음은 결정 했소.’ 라고 물었다. 아버지는 대답 대신 웃었으며 엄마를 대문 오른쪽으로 이끌었다. 아래채 안쪽으로는 크고 작은 옹기들이 가지런히 늘어져 있는 장독대가 있었으며 그 앞에 이끼가 군데군데 자리 잡은 돌담에 쌓여진 우물이 있었다. 아버지가 성큼 다가서시더니 주르륵 두레박줄을 풀어 내리셨다. 동생이 다가서서 바닥을 들여다보며 ‘엄청 깊다.’ 며 도리질을 하며 뒤로 물러섰다. 나 역시 우물 안이 궁금했지만 선뜻 다가서볼 엄두가 나지 않아 멀찌감치 서 있기만 했다. 아버지는 물을 퍼 올린 다음 두레박에 입술을 대시고는 꿀꺽꿀꺽 소리가 나도록 물을 넘기시고는 아주 맛있다며 감탄을 하셨다. 집 위채 부엌에 신식수도가 있었지만 수돗물 보다 우물물이 백번 더 좋다는 할머니의 설명 때문이었는지 어쨌는지 엄마는 우물에 마음이 가시는 듯 했다.
어찌어찌하여 우리는 그 집으로 이사를 했다. 뒷날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집을 결정하는데 가장 큰 이유가 되었던 건 역시 깊었던 우물 때문이었다. 늘 마르지도 넘쳐나지도 않는 다는 우물이 있는 이 집터가 명당이라고 아버지는 생각하신듯했다. 아버지의 생각이 맞았던 것이었는지 이사를 한 뒤 아버지의 공장은 불이 일어나듯 했다. 아버지는 집터가 좋아서라고 확신하셨고 우리 집터가 보통 집터가 아니라는 걸 우물이 증명하는 증거물로 생각하시기에 이르렀다. 아버지는 물과 재복은 불가분의 신비한 관계라고 생각하셨다. 꿈에 맑은 물이나 샘을 보는 날이면 공장에 많은 이문이 생겨난다고 하셨다. 돼지꿈 따위는 비할 바도 아니었다. 아버지는 큰일을 벌일 때마다 그런 꿈을 꾸기를 바라셨다. 아무리 퍼내어도 마르지 않는 신비한 우물이 집터의 재복과 동일시되고 부터는 더욱 우물을 경외하고 아부까지 하게 되었다. 공장에 새 기계가 들어와 고사를 지낼 때면 먼저 우물에다 비시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우물에 소원을 빌 때면 아버지의 표정은 경건하다 못해 엄숙하기까지 했다. 적어도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말이다.
이웃에서 아래채의 방을 그렇게 비워 두지 말고 세를 놓으라는 청을 해와 두 자매의 자취방으로 내어주게 되었다. 착한 처녀들이라는 말과는 달랐다. 큰 처녀는 공장에 다니는 참한 아가씨였고 낮에는 늘어지게 잠을 자던 작은 처녀는 해가 기웃한 밤이면 요란한 화장으로 대문을 나서고는 했다. 아이들 교육상 이래선 안 되겠다. 고 생각한 엄마가 방을 비우라는 독촉을 하던 참이었다.
새벽 요란하게 안채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온 식구가 놀라 일어났다. 아버지가 안방에서 나오시고 마루에 불이 환하게 켜졌을 때 아래채 세 들어 있던 큰 처녀가 동생이 우물에 빠졌다고 방방 뛰었다. 아버지와 맨 발로 달려 나간 엄마는 우물에다 두레박줄을 던졌다. 몇 번인가 물속과 물위를 솟구치던 여자가 두레박줄을 잡았고 몰려온 이웃사람과 어찌하여 여자가 건져 올려졌다. 다행이 여자는 숨을 쉬고 있었다. 여자는 술이 취했었고 시원한 물을 마시려고 우물로 갔으며 두레박줄을 던지려다 몸이 빠졌다고 언니가 말했다.
‘달이 밝았기에 망정이지…….’
사람들이 하나 둘 돌아가고 아버지는 기진 맥진이셨다. 여자가 살아서 다행이라는 것보다 우물이 부정을 탔을 거라는 사실에 아버지는 더 절망하시는 것 같았다.
며칠 후 아버지가 우물에 맞게 나무판자를 둥글게 잘라 오셨다. 밤이면 우물은 사람이 이불을 덮듯 뚜껑을 덮고 밤을 밝혀야 했다. 뚜껑을 덮어서였는지 아버지는 우물의 물맛이 변한 것 같다고 한탄 하시더니 종내는 우물과의 연緣이 다한 것 같다고 한숨을 쉬셨다. 이태 후 우리는 그 집에서 이사를 나오게 되었고 우물은 천천히 기억에서 지워져 갔다.
얼마 전 우연히 그 집을 찾아가 보게 되었다. 한옥은 3층짜리 빌라로 밋밋하게 지어져 있었지만 우물은 우리가 떠나오던 그날처럼 빛이 다 바래어진 나무 뚜껑을 덮고 초라하게 빌라의 한쪽 구석에서 버려져있었다. 그동안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아 물기라곤 없는 모습으로 오래 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우물. 차마 다가가 뚜껑 한 번도 열어보지 못하고 쓸쓸히 돌아섰다.
아무리 뜨거운 여름이라도 차가운 물을 마시지 못하는 나, 찬바람이 쌩쌩 불어도 적당한 온도를 유지하며 적당하게 밍밍하던 그 물맛을 나는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
내 오래전 기억속의 우물하나에 뚜껑을 덮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