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회]
이삿짐은 얼마 되질 않는다. 남편이 이삿짐 센터 직원하고 짐을 옮기는 동안 베란다에 나가 밖을 내다 보았다. 그녀의 베란다에 늘어진 페츄니아는 주인이 없는데도 여전히 싱싱하게 잘 자라고 있다. 그녀가 그림을 주었다. 나보다도 더 필요할 것 같아서요. 그러는 그녀는 오랜..
9편|작가: 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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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밖은 화창하다. 유리를 통해 들어오는 햇살이 너무 따뜻해 창에 팔을 괴고 앉아 있다. 어깨가 저리다.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않았는데 속이 답답하다. 배를 한번 쓸어본다. 아직 아무런 표시도 나지 않지만 갑자기 세상이 든든해지는 느낌이다. 남편은 지금쯤 아이를 데리고 ..
8편|작가: 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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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회]
그녀가 왔다. 베란다에 나가 밖을 내다보다가 얼핏 옆집 베란다가 환했다. 세상에, 식물원에서나 볼 수 있는 탐스런 붉은 페츄니아가 아담한 토분 세 개에 담겨 이층 베란다 위까지 길게 늘어져 있다. 못 보던 것이다. 이 주 동안 어디 외국에라도 갔다 온 것일까. 초인종을..
7편|작가: 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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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회]
호수 근처엔 백화점이 있었다. 남편의 회사에서는 호수와 백화점 중간쯤에 마대를 늘여 놓고 백화점 손님과 호수에 놀러나온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이벤트를 벌였다. 호수를 바라보는데 있어서 사람이 많든, 음악을 크게 틀어 놓고 중학생들이 춤을 추든 그건 그리 내 눈길을 끌만..
6편|작가: 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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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알루미늄이 얼마나 비싼데요. 그건 다 수입이에요. 그리고 봉투는 묶는 것 보다 입구를 테이프로 붙이세요. 훨씬 더 많이 들어가거든요." 그녀가, 내가 버린 쓰레기 봉투안에 있는 맥주 켄을 보고 말했다. "죄송해요." 이런, 어제 오늘 벌써 두 번이나 그녀에게 사과를 ..
5편|작가: 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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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난 항상 새로운 것에 맞닥뜨리는게 두려웠다. 아주 어렸을 때 부터였던 것 같다. 몸이 약한 엄마 대신 아버지는 자주 날 데리고 모임이나 시장엘 가곤 했다. 시장 아주머니들이 예쁘다고 머릴 쓰다듬거나 엄마의 병문안을 왔던 친척들이 위로나 동정을 보내면 난 아버지 등뒤에서..
4편|작가: 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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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남편이 늦는다. 아이가 또 떨어지려고 하질 않는건가? 지난번에도 그랬었다. 남편은 돌아와서 심각한 얼굴로, 아이가 울며 매달리더라고. 그걸 떼어놓고 오는데 눈물이 나더라고. 태권도 도장에서 배운 발차기로 아빠를 향해 다릴 이만큼이나 올리더라고 손을 가슴께 까지 올리며 ..
3편|작가: 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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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방안으로 들어서자 뭔가 반짝거린다. 어젯밤 일을 잊고 있었다. 남편이 집어던진 리모콘이 거울에 맞아 방바닥엔 거울 파편과 리모콘에서 떨어진 건전지가 굴러다녔다. 얼굴이 화끈거린다. 그녀를 데리고 도로 나가고 싶지만 이미 늦었다. 내 생각과는 상관없이 그녀는 자기 집인 ..
2편|작가: 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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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새 소리에 눈을 떴다. 어디서 이렇게 끊임없이 새가 우는 것일까. 꿈을 꾸는 것 같아 눈을 몇번 깜박거렸다. 분명 꿈은 아닌데 아무것도 보이질 않고 캄캄하다. 눈을 감고 뜰때마다 눈이 서걱거려 몇 번 눈을 비볐다. 또 새 소리가 들린다. 몸을 움직이니 작은 빛이 들어..
1편|작가: 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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