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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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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회]


BY 안개 2001-09-03

남편이 늦는다.
아이가 또 떨어지려고 하질 않는건가? 지난번에도 그랬었다.
남편은 돌아와서 심각한 얼굴로, 아이가 울며 매달리더라고. 그걸 떼어놓고 오는데 눈물이 나더라고. 태권도 도장에서 배운 발차기로 아빠를 향해 다릴 이만큼이나 올리더라고 손을 가슴께 까지 올리며 대견해 했었다.
그가 가장 환한 표정을 지을 때가 아이 얘길 할 때이다.
하루종일 굶었더니 배가 고프다.
오랜만에 시장도 보고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었다.
베란다에 나가 밖을 내다보았다.
남편의 차는 아직 보이질 않는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이 익숙치 않다.
언제든 아니다 싶으면 다시 오너라, 아버진 말씀하셨다. 이혼 서류 정리된거 봤는데요 뭘. 아버지를 안심시키는 내게 그래도 부모자식간의 인연은 그게 아니다, 하고 끝내 못미더워 하셨다. 아직, 아니다 싶은 마음도 없지만 그렇다고 해도 집으로 다시 들어가진 않을거라는걸 아버진 아실 것이다.
어느 집에선가 고기를 구워 먹는다. 이곳 까지 냄새가 배는 듯해 창문을 활짝 열어 놓았다. 새로 지은 깨끗한 집이라고 해서 이사는 했지만 한집 한집이 너무 가깝다.
옆집에서 나는 물소리가 내 집인 것 같아 몇 번이나 수도를 확인했던 적이 있다. 어제 우리 처럼 싸움이라도 하는 날이면 한 동 전체가 시끄럽다.
초인종이 울린다. 남편이 왔나보다. 처음에 아파트 내에 있는 모든 초인종 소리는 다 같았다. 이사 오고 며칠을 옆집에서 울리는 초인종 소리만 듣고도 문을 열었다.
언젠가는 남편을 한참이나 밖에 세워 둔 적이 있다. 그때 난 베란다에 나가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한번 생각에 잠기면 좀처럼 빠져 나오지 못하는 내가 남편에게 미안해서 한 변명은 옆집인 줄 알았어요, 였다. 그 길로 남편은 전파상에 가서 하루종일 지치지도 않고 힘차게 울어대는 새소리 초인종을 사왔다.
문을 여니 남편은 고기를 굽고 있는 303호 남자와 인사를 나눈다.
남편은 날 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하루 종일 남편도 우울했을 것이다.
미안해, 남편은 가볍게 날 안으며 말했다. 남편은 내가 자신을 위해 요리책을 뒤적거려 번듯하게 상을 차린것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다.
밥 먹고 왔어, 남편은 조금 미안해 하는 표정을 짓고 욕실로 들어갔다.
예전엔 그런 모습이 참 좋았다. 남편은 음식을 못하는 내가 매일 비슷한 재료로 식탁을 차리고 남편의 퇴근도 기다리지 않고 잠이 들어도 싫은 내색을 하지 않는다. 남편은 서로에게 자신의 뜻을 강요하지 말자고 했다. 나도 오늘처럼 연락없이 늦게 들어오고 가끔씩 아일 핑계로 아이 엄마를 만나도 모른체 한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힘이 빠진다. 남편도 가끔 날 보며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