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데기
부엌데기 “그 옷 좀 벗지 그래. 꼭 부엌데기 같네.” 눈가에 있던 사진기를 가슴께로 내리며 남편이 말했다. 가을 끝 무렵 단풍구경가자고 졸라댄 내 성화에 못 이겨 떠난 나들이였다. 형형색색 물든 산언저리를 바라보느라 넋이 빠져있었다. 눈부신 단풍듦에 ..
35편|작가: 박예천
조회수: 1,817|2008-12-23
멍우를 찾아서
멍우를 찾아서 강원도 사람들은 머위를 ‘멍우’라고 부른다. 간혹 머우라는 이름을 붙여주는 이도 있다. 익살스러우면서도 친근함이 느껴져 경기도 출신이지만 나도 덩달아 멍우라고 한다. 머위는 습지에서 자라는 오래 살이 풀인데 땅속줄기가 사방으로 뻗으며 자란다..
34편|작가: 박예천
조회수: 2,423|2008-12-23
바지랑대
바지랑대 시골집 너른 마당을 기세 좋게 가로질러 있던 빨랫줄. 엄마는 그 줄에 사철 다양한 모양의 빨래들을 널어 두셨다. 새봄이면 옥양목 홑이불을 풀 먹여 휘날리게 하고, 겨울이면 두터운 솜이불이 반으로 접혀 무겁게 늘어져 있었다. 토담 밑에서 사금파리 조각으..
33편|작가: 박예천
조회수: 1,839|2008-12-23
삶의 향기 - 메시지친구
메시지친구 시부모 두 분 중, 나는 시아버님을 0.5그램만큼 더 존경한다. 존경심을 저울눈금으로 굳이 잴 수 있다면 말이다. 시어머니 들으시면 여간 섭섭할 일이 아니지만, 솔직한 내 심정이 그렇다. 조실부모하여 아비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것도 ..
32편|작가: 박예천
조회수: 1,633|2008-12-23
삶의 향기 - 수정이의 빨간..
수정이의 빨간 운동화 아들에게 여자친구가 생겼다. 수정이를 알게 된 것은 작년 오월에 장애인복지관 그룹치료를 하게되면서이다. 뇌성마비를 앓고 지체장애가 있어 걷지를 못한다. 하지만 어찌나 말을 잘 하는지, 처음 그 아이를 보는 사람은 장애아동인 것을 알지 못..
31편|작가: 박예천
조회수: 1,757|2008-12-23
삶의 향기 - 아버지의 휴양
아버지의 휴양(休養) 전화를 받은 나는, 침착 하려 애쓴다. 응급실로 가셨다는 아버지소식을 접하고 바로 달려가지도 못했다. 남편 직장과 아이의 학교 때문이라는 허울 좋은 핑계를 내걸고, 입원실로 가신다음인 어제서야 미시령을 넘는다. 울산바위는 낮게 드..
30편|작가: 박예천
조회수: 1,513|2008-12-23
시린 발
시린 발 잠을 잘 때 이불 속에 발을 넣으면 갑갑했었다. 마치 호흡기관이 발에만 붙어있는 양, 밖으로 내놓고 자는 것이 편했다. 시집가서 아이 둘을 낳은 고모가 삼복더위에도 양말을 꼭 신어야 된다기에 의아한 표정으로 웃었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내 발이 고모의 ..
29편|작가: 박예천
조회수: 1,959|2008-12-23
지름길로 가고 싶지 않다
지름길로 가고 싶지 않다 “아이가 참 똑똑해요. 경증 발달장애로 볼 수 있겠어요. 더 좋아지면 일반 아동들과 같아질 수도 있으니 힘내세요.” 감각치료를 담당하시는 선생님의 희망적인 말씀에 힘들었던 지난날들이 짧은 순간 뇌리를 스친다. 일년 전 여름,..
28편|작가: 박예천
조회수: 1,883|2008-12-23
쪽머리
쪽 머리 칠순중반은 넘게 보일 노부부가 차에 오르는 모습을 본다. 할머니의 자리를 잡아주신 할아버지는 들었던 보퉁이를 옆자리에 내려놓는다. 할아버지가 천천히 문 앞으로 걸음을 옮기신다. 할머니만 먼길 나들이를 가시나보다. 버스의 엔진소리가 부르릉거리며 곧 출발..
27편|작가: 박예천
조회수: 1,782|2008-12-23
마릿골 9 - 인삼밭 어린 ..
인삼밭 어린 일꾼 인삼밭 곽씨는 엄청난 구두쇠였다. 관리만 하는 주제에 마치 드넓은 인삼밭이 자기 것인 양 목에 힘을 주고 다녔다. 땅딸막한 키에 뱁새눈이 그를 더욱 찬 얼음 덩어리처럼 보이게 한다. 열 한 살이었던 나는 엄마 따라 갔던 읍내 장에..
26편|작가: 박예천
조회수: 1,668|2008-12-23
마릿골 8 - 잔치 열렸네
잔치 열렸네 마릿골에서 잔치를 하게 되면 하루나 이틀 전부터 동네가 시끌벅적하다. 이번엔 누구네 돼지가 선발되어 단두대위에 서게 되었는가. 어린 나와 친구들이 바글바글 모여들어 구경을 한다. 돼지 잡는다고 굳이 이장님이 안내방송을 할 필요가 없다. ..
25편|작가: 박예천
조회수: 1,789|2008-12-23
마릿골 7 - 여인들
여인들 읍내장터와 꽤 떨어진 곳이던 내 고향 마릿골에 자주 등장하는 단골 봇짐장수가 있었다. 그네들은 한결같이 여인들이다. 할머니와의 흥정을 지켜보는 일은 흥미진진한 구경거리였다. 넓은 대청마루에 물건을 펼쳐놓고 장황한 설명을 하는 모습은 솔직히 과대광고일 때..
24편|작가: 박예천
조회수: 1,842|2008-1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