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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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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름길로 가고 싶지 않다


BY 박예천 2008-12-23

        

            지름길로 가고 싶지 않다

 

 

 


 

“아이가 참 똑똑해요. 경증 발달장애로 볼 수 있겠어요. 더 좋아지면 일반 아동들과 같아질 수도 있으니 힘내세요.”

 감각치료를 담당하시는 선생님의 희망적인 말씀에 힘들었던 지난날들이 짧은 순간 뇌리를 스친다. 일년 전 여름, 큰 병원 의학박사라는 사람에게서 ‘중증 자폐아’ 라는 소리까지 들어야 했다. 남편과 나는 가슴을 쓸어 내리며, 반드시 아들이 호전되면 보란 듯이 그 의사를 찾아가자고 말을 나눈 적이 있다.   

 

 단 한마디의 말도 하지 않고, 엄마를 쳐다보지 않으며 앞만 보고 걷는 아이에게 ‘계단’ 하나를 알려주기 위해 수 없이 중얼거렸다. “계단 올라가네.  하나, 둘 셋....계단 내려가네. 계단 !” 대꾸도 없는 아이에게 듣던 말던 열심히 외쳐댄 보람이 요즘에 나타나고 있다. 어젯밤, 물끄러미 베란다 쪽을 바라보더니, “달!” 하는 것이다. 설마 또 의미 없이 중얼거리는 말이겠거니 하고 다가서니 정말 하늘에 쪽 달이 말갛게 걸려있었다. 그러더니 고사리 만한 손바닥으로 내 등을 쓰다듬으며 “여기는, 등 ”하는 것이 아닌가.

 

 겨우 한 단어를 내뱉던 녀석이 명사 두 개정도의 나열이지만 문장으로 가려고 애쓰고 있다. 남들이 들으면, 다섯 살 아이에게서 그런 말을 듣고 저리 호들갑이냐 하겠지만 나는 그 한마디를 듣기 위해 셀 수 없는 불면의 밤을 보냈다. 낮 동안 아들 앞에서 목에 핏대를 세우느라 잠자려고 누우면 입안이 말라왔다.  

 

 거친 자갈밭을 아들업고 맨발로 걸었기에, 발에 물집이 잡히고 상처가 남았지만 모두 옛일이 되어가고 있다. 이제 흉터사연 대하며 웃음 지을 여유까지 생겨줌이 감사하다. 물론 길이 다 끝난 것은 아니다. 바위로 막혀 있기도 하고, 거대한 산으로 다가서기도 한다.

 

 나는 되도록 멀리 돌아가더라도 구불구불 이어진 길로 가고 싶다. 걷다가 지치면, 너른 바위에 앉아 숨 한번 고르고 코끝으로 전해지는 갖가지 풀잎의 냄새들도 기억하며 쉬어 가리라.

 

 등산을 좋아하는 남편은 주말이면 자주 산을 찾는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절경들을 이야기 해주고, 사진에 담아오기도 한다. 만약 산꼭대기에 오르는 것만이 등산의 묘미라면, 굳이 힘들여 걸어서 갈 필요가 없지 않은가. 비행기를 이용하든, 케이블카를 타서라도 정상에 오르면 그만인데, 왜 넘어지고 땀흘리며 산을 오르는 것일까. 산은 정상에만 의미가 있지 않다는 생각이다. 서서히 힘들어지는 언덕과 아찔한 절벽을 대하면서 인생을 배우는 것이다. 바위틈 샘 가에서 목도 축이고, 질펀히 드러누운 이끼들도 만지며 산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산행을 하며 보여지는 아름드리 나무들과, 이름 없는 들풀들에게서도 오묘한 진리를 찾고 우리 인생의 험산 준령도 그렇게 넘을 수 있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지름길은 빠르고 편하다. 그러나 추억이 묻히기 전에 길이 끝나 버린다. 논두렁 같이 좁은 길이거나, 길게 이어진 오솔길을 갈 때 뛰어가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함께 걷는 이와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기도 하고, 길가에 핀 산나리 꽃이나 들국화를 들여다보며 향기에 취해보기도 한다. 짧은 지름길에서는 맛볼 수 없는 정취이다. 꼬불꼬불 길을 한참 걷고 난 후 뒤를 돌아본다면, 그 길이만큼 추억의 끈도 길게 이어진다. 내 황혼 무렵 나눌 이야기 많은 인생으로 접히고 싶다.

 

 아들은 산길을 걷다가 만난 목청 고운 새 한 마리이다.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노래를 쏟아 붓고 있으며, 나는 그 새와 지금껏 새로운 곡을 만들고 있는 중이다. 쉽게 걷는 길로 갔다면, 아들의 노래를 듣지 못하고 달렸을 것이다. 꽃잎 같은 입술을 달싹이며 한마디씩 내미는 것이 ‘말’로 이름 붙여 질 때, 내가 걷는 길은 아름다움으로 꾸며지는 이야기가 된다.  

 

 놀이방에서 돌아온 아들이 저녁에 또 한번 나를 놀라게 한다. 중국음식을 시키면 현관문으로 들어서는 배달 청년을 보고 곧잘 “아저씨”라고 했었다. 오늘도 자장면이 먹고 싶었던지 “아저씨 자장면!” 하며 나를 쳐다본다. 그렇게나마 의사표현을 시작하는 것이 몹시 대견스럽다. 급하게 냉장고를 뒤져 아들이 원하는 음식을 만들어 주었다. 길고 지루한 길 걷다가 숨이 턱에 차 주저앉게 되더라도, 지금처럼 천천히 가고 싶다. 훗날, 아들의 손잡고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며 이야기 나눌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꿈을 간직하고, 꼭 이루어진다는 확신을 지니고 사는 일은 삶에 활력을 준다. 꿈을 가졌으나, 의심하고 두마음을 품는 다면 차라리 그것을 걸어두지 않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렇게 인생의 길을 타박타박 걸으며 꿈은 이루어진다는 믿음으로 산다. 그것이 당장은 헛된 욕심일지라도 나를 버티게 해 주는 것이라면 길이 끝나는 곳에까지 들고 가리라. 일부러 라도 지름길로 가고 싶지 않다. 굽이굽이 돌아간들, 종착역은 누구나 같을 텐데 하늘 한번 우러르고 가면 어떠랴. 그렇게 길게 늘어진 길을 걸으며, 담을 수 있는 것은 모두 가슴에 품었으면 좋겠다.

 

 자장면 먹는 나의 새 한 마리가 입가에 검은 수염으로 그려놓은 행복한 저 웃음까지도.




2003년 가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