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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 아버지의 휴양


BY 박예천 2008-12-23

 

          아버지의 휴양(休養)

 


 

전화를 받은 나는, 침착 하려 애쓴다.

응급실로 가셨다는 아버지소식을 접하고 바로 달려가지도 못했다.

남편 직장과 아이의 학교 때문이라는 허울 좋은 핑계를 내걸고, 입원실로 가신다음인 어제서야 미시령을 넘는다.


울산바위는 낮게 드리운 구름으로 흰 속치마를 해 입고, 잠시라도 몸 기대어 쉬어가라며 부는 바람에 한쪽 기운을 펄럭인다.

사실은 그렇게 하고 싶었다.

차마 아버지를 대할 용기 없어져, 나는 자꾸만 거대한 설악에 얼굴 비비고만 싶어졌다.


누구나 그러하겠지만, 나에게도 아버지는 산같이 거대한 존재였다.

늘 그 한자리에 오래도록 머물고 변하지 않는 상록수 빛으로 내 인생 사계절 계실 것으로 믿었다.  절대로 단풍들지도 않으며, 낙엽도 만들지 않는 소나무 빛으로 말이다.

아버지의 입원소식은 단순한 슬픔이상으로 다가왔다.

지난 사월, 할아버지의 장례를 치른 후부터 아버지는 눈에 띄게 수척해지셨다.

비단 그것은 육체적인 부분만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던 생의 의욕들을 어느 곳에 빼앗겨 버리신 것 같았다.


군복바지를 여러 번 누벼 작업복으로 대신하고, 검정고무신이 질겨서 좋다며 신으시던 아버지는 그렇게 내 기억 속에 촌스럽고 옹고집이신 분이었다.

여고 때 겨울, 읍내 버스대합실에서 김장 준비 장을 보러 나오신 아버지를 친구들 앞에서 뵌 적이 있다. 손마디가 굵고 거칠며, 옷차림이 궁색해 보이는 모습을 친구들에게 들키기 싫어 구석으로 숨어버렸다. 나의 그런 몸부림과는 상관없이 큰소리로 이름을 부르시며 승차권을 끊어오라는 아버지가 몹시 미웠던 사춘기였다.

그날처럼 나는 숨고 싶다.

아버지가 끝내 찾아내지 못하도록 말이다.

병실에 계실 아버지를 어떤 표정과 말로 만나야 할지 정말이지 자신이 없다.


지금의 남편을 만나게 되어 결혼승낙을 받으러 갔을 때 유난히 반대하셨던 분이다.

너무나도 반대가 심하셔서 나중엔 가족회의를 하게 되었고, 아버지는 두 동생의 의중을 떠보셨다. 누이의 인생이고 선택이니 맡겨보자 라는 동생들의 의견을 수렴하신 후에야 마지못해 허락을 하셨다.

나는 독백처럼 작게 아버지를 향해 말씀드렸다.

‘행복하게 살게요. 아버지!.’  

그 처음 약속처럼 나만 행복하게 사느라 아버지를 자주 찾아뵙지 못했던가.


며칠 전, 먼저 하시는 일이 없으시던 분이 아침 일찍 전화를 하셨다.

“너, 언제 올래?  보고 싶다.  네 얼굴이나 봐야 죽을 텐데 말이다.”

아직 병원 의사로부터 어두운 결과를 전해 받은 것도 아니건만, 그렇게 나약한 말씀을 하신다. 산처럼 계시던 아버지가 어느새 작은 묘목으로 고개 숙이시는 걸까.

남편의 차가 원주 시내로 접어들면서 가슴이 또 두방망이질을 시작한다.


101병동 105호.

우리 아버지에게도 맞는 환자복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언제나 옷을 구입할 때 특대 크기만 찾으시던 분인데 환자복이 큰 것도 있구나.

그 어설픈 환자복 속에 꼭꼭 숨어 계시는 아버지가 처음으로 작아 보였다.

되도록 아버지의 시선을 피하며 형식적인 말투로 여기저기 불편한곳을 여쭙기만 했다.

아이처럼 상세히 고통을 설명하시는 아버지가 타인으로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지금 이분이 그토록 오랫동안 나의 버팀목이 되어주셨던, 큰 나뭇짐 한 지게 거뜬히 거친 들에서 숨 가쁘게 지고 오셔서 군불 지핀 따뜻한 아랫목 만들어 주셨던 내 아버지란 말인가.

한 번도 편한 휴식을 가져보지 못했던 분이 이렇게 병실에서 초라하게 쉼을 얻고 계시다.


하룻밤을 원주 시댁에서 지냈다.

돌아오는 오늘 다시 병실을 찾는다.

속초로 넘어가야 한다며, 검사 잘 받으시고 전화 드리겠다는 나의 말을 건성으로 들으신다.

그저 오래도록 나만 쳐다보신다.

나는 아버지와 눈 맞추기 싫었다.

자꾸 아버지 눈이 흐려지는 게 보여서 그랬다.

내 눈에도 뭔가가 맺히려는 기미가 느껴지기에 얼른 고개 돌려 침대 옆으로 숨어버렸다.

병실 간이침대에서 구석진 잠을 주무셔서 그런가.

어머니도 많이 푸석해진 모습이다.


도망치듯 병실을 나와 복도로 오는데, 아버지가 따라오신다.

제발 나오시지 말라고 고함을 치고 싶어졌다.

휘청거리시며 링거 병 달린 긴 쇠막대를 끌고 배웅을 나오신다.

애써 밝은 표정을 지으며 아버지께 하나뿐인 딸이 보였던 그 어릴 때의 응석을 부려본다.

“아부지 생각하며 나 산단 말야. 기운내세요. 아부지가 힘 잃으면, 나두 힘들어요.”

마치 오래 전부터 아버지만 생각하며 살았던 것처럼 천연덕스런 연기를 한다.


다시 미시령을 넘어 나의 원점인 속초로 향한다.

속으로 울음을 참아서일까 내 온몸의 수분이 모두 눈물로만 채워져 있는 듯하다.

땀구멍으로도 건드리면 눈물이 배어나올 것 같고, 심장을 통해 몸속을 돌아다닐 피의 모양새도 모두 눈물 색으로 채워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속초가 가까워지자 남편이 차를 세우고 잠시 계곡 물에 아이들을 데리고 간다.

멍청히 길옆 산자락에 남겨진 나는 동행하지 않고 풀포기들을 바라보았다.

질경이가 무리 지어 잘 심어놓은 것처럼 많이 있기에 손으로 그냥 뽑아본다. 엊그제 비가 와서인지 별 힘겨움 없이 잘도 손안에 들어와 안긴다.

심심풀이로 시작하다가 작정하여 비닐봉지까지 구해들고 뽑기 시작한다. 

무엇에든 정신없이 손이라도 꼼지락거려야 진한 슬픔무더기가 박살나 버릴 것만 같았다.

흙냄새가 코끝 가까이 흘러 들어와 폐부까지 진하게 배어든다는 생각이 들면서, 갑자기 참았던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물소리 때문인지 아이들과 남편이 있는 곳에 내 오열이 닿지 않는다.

질경이 잎사귀에 눈물 한 방울씩 떨어질 때마다 가느다랗게 제 몸을 떠는 그것들을 손동작만으로 집어 봉지에 담는다.

내 눈물의 제목은 오직 ‘아버지’였다.


집으로 와 간단한 일을 마무리하고, 뿌리째 가져온 질경이를 다듬는다.

흙이 그대로 묻었고, 마른 솔잎까지 따라왔다.

가끔 이름도 알지 못하는 벌레 몇 마리가 방바닥을 꼬물거리며 기어 나온다.

냄비에 물을 끓여 데치고 씻어 헹구니 금방이라도 입맛을 돋우게 할 만큼 산뜻한 초록이 된다.


질경이에 흙먼지와 검불을 털어 내며 생각한다.

내 아버지의 몸속에 붙은 병이라는 이름이 될 만한 것들이 그렇게 씻겨 나가기를 말이다.

한평생 숨 한번 돌리지 못하신 내 아버지의 휴양지가 101동의 한 구석 침대일 뿐이라고. 


그 휴양이 아주 짧은 시간으로 끝나게 해달라는 기도로 나는 두 손을 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