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린 발
잠을 잘 때 이불 속에 발을 넣으면 갑갑했었다. 마치 호흡기관이 발에만 붙어있는 양, 밖으로 내놓고 자는 것이 편했다. 시집가서 아이 둘을 낳은 고모가 삼복더위에도 양말을 꼭 신어야 된다기에 의아한 표정으로 웃었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내 발이 고모의 그것처럼 시리다. 머리카락 땀내 나게 달라붙는 폭염에도 두 발을 싸매고 다닌다. 그러니 겨울인들 오죽하랴.
여자는 아이를 낳으면서부터 전혀 새로운 체질로 바뀌는가보다. 전에 없던 증상들이 나타날 적마다 까맣게 잊고 지내던 내 모습이 확인된다. 열 달 동안 아이를 품었다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한 역사적 사건의 업적을 이룩한 ‘어머니’가 바로 나인 것이다. 한겨울에도 열이 많아 내복을 입지 않고 지내던 체질이었건만, 요즘은 걸핏하면 오한으로 덜덜거린다. 양말을 챙겨 신고 이불까지 발 아래로 돌돌 말고 있어도 오스스한 냉기가 발끝으로만 몰리는 기분이다. 무릎아래를 시작으로 열 발가락이 저리듯 감각을 잃어간다.
혈액순환이 잘 되지 않아 일어나는 현상이라 여겨, 시어머니께서 보약을 두 제나 지어주셨건만 약효를 느끼지 못했다. 행여 걱정이라도 하실 것 같아 말끔하게 치료되었다고 전했지만, 실은 전과 별반 차도가 없다. 보약의 효험은 다른 곳에서 일어나는지, 시도 때도 없이 밥을 먹고 싶은 식욕만 생기게 되었다. 목과 허리의 경계도 뭉툭하니 없어질 판이고, 손가락마디도 살로 뒤덮여 반지를 끼우는 일이 무리가 될 지경이다. 몸 불어나면 볼품없어 지는 건 나중 일이고, 무거운 체중을 시린 발로 버티고 다녀야 함에 더욱 걱정이 앞선다.
희미한 5촉 짜리전등아래서, 친정어머니는 곧잘 양말을 꿰매셨다. 필라멘트 끊어져 쓸모없어진 전구를 양말 뒤꿈치부분에 끼우시고 하얀 무명실로 박음질을 하셨다. 더덕더덕 기워진 양말을 신으면 발바닥에 밟히는 촉감이 좋지 않아 볼멘소리를 하면, 늘 똑 같은 말을 하시는 어머니.
“모르는 소리 말거라. 꿰매 신은 양말이 더 따슨 법이여. 바닥이 두툼하니 그런 거다.”
그런 양말을 신고 학교를 가는 날은, 되도록 발을 쳐들거나 들까불지 않고 얌전히 의자에 앉아 교실바닥에 밀착시키고 있다. 청소시간에 나무바닥 위로 줄줄이 엎드려 기름걸레질을 하다보면, 보이는 것이 죄다 친구들의 발바닥이다. 무릎 꿇고 걸레를 밀고 당겨야하니 그렇다. 원래가 색동무늬였는지 엄청나게도 헝겊들을 덧대어 신었다.
바람 분다고 쉴 소냐, 추운들 멈출 소냐.
겨울 깊어 삭풍이 몰아쳐도 들로 산으로 뛰놀기 좋아하던 나의 유년이여! 툭하면 냇가 얼음판에서 발 담금질로 적셔오기가 일쑤이고, 논바닥에 쌓아놓은 짚가리를 홀라당 태워 동네 비상종을 뎅그렁 울리게 만들었다. 양동이와 물통으로 줄지어 나르며 활활 타오르는 불길을 잡던 동네 어르신들께 이제라도 무릎 꿇고 두 손 싹싹 빌면 되려나. 쩍쩍 갈라지고 터진 손등엔 피가 흐르고, 발이야 말할 것도 없음이다. 밤이면 얼음 박힌 발이 가려워 마구 긁고도 모자라 징징 울어댔다. 발가락이 발갛게 부어올랐고, 만져질 듯 딱딱한 게 정말 얼음 한 조각이 살 속을 헤집고 들어갔나 싶었다.
어머니는 어디서 그 많은 민간요법을 알아왔을까. 딸년이 동상에 걸려 밤마다 악을 쓰는 통에 온 동네 소문이라도 냈는지 날마다 새로운 비법으로 내 발을 싸매고 주물렀다. 얼음 서걱거리는 동치미 국물에도 발을 담가보고, 뜨거운 물과 찬물에 번갈아 옮겨 넣어보게도 했다. 다른 것은 기억이 가물가물하나, 가장 오래 시도했던 비법이 있다. 광목자루에 콩 서너 되를 넣고 툇마루에 차게 놓아둔다. 그러다가 내가 잠이 들 무렵 번쩍 자루를 방안으로 가져온다. 동상 걸린 한쪽 발을 콩 자루 속에 디밀고 잠들면 낫는다는 것이다. 글쎄, 어떤 방법이 효험을 본 것인지는 모르나 그 후 말끔히 치료가 되었다.
동상은 아니지만, 나는 아이를 낳고 한여름에도 양말을 신어야 견디는 여자가 되었다. 밤이면 발바닥이 욱신욱신 저려오기도 하고, 작은 벌레 떼가 집단 이주를 해 왔는지 기어다니는 느낌이다. 고춧가루를 뿌린 듯도 해서 가끔 잠을 설칠 정도이다. 딸 아끼는 친정어머니는 산후 조리 제대로 못한 탓이라 말하지만, 몸 풀고 하루 만에 밭일 나갔던 예전 우리네 어머니들에 비하면 나는 그래도 호강한 편이다. 일주일정도는 제대로 누워 지냈으니까.
여자의 몸에 어머니가 되면서 얼마나 많은 변화가 찾아오는지, 남자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것이다.
감각 없는 열 개의 발가락을 부서져라 주무르며, 오늘밤은 또 어찌 뒹굴고 말갛게 샐 것인지 걱정이 앞선다. 밖에서 놀다 얼음 박혀 온 동상이 아니니, 콩 자루 속에 발 묻고 잘 수도 없는 일. 허리 찜질용 전기 팩을 발에 대어 봐도 증세는 여전하다.
아! 아이 낳은 여자여, 내 발바닥이여.
그러나 정말 다행스러운 것은 시린 것이 발뿐이라는 것이다. 만약, 가슴이 시려온다면 약도 없는 불치병 환자처럼 시들어 끙끙거릴 테니까.
발만 시려 감사하고픈 겨울밤이 또 그렇게 저리며 깊어가고 있다.
2004년 1월 2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