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지랑대
시골집 너른 마당을 기세 좋게 가로질러 있던 빨랫줄. 엄마는 그 줄에 사철 다양한 모양의 빨래들을 널어 두셨다. 새봄이면 옥양목 홑이불을 풀 먹여 휘날리게 하고, 겨울이면 두터운 솜이불이 반으로 접혀 무겁게 늘어져 있었다. 토담 밑에서 사금파리 조각으로 흙장난을 하던 우리 삼 남매는 엄마가 집안에 안 계신 틈을 슬쩍 엿보다가 새하얀 홑이불 사이를 들추고 한 줄로 지나간다. 언제나 주동자는 맏이인 내가 된다. 동생들은 나를 따른 죄밖에 없건만, 꾸중을 듣거나 할 때는 두리 뭉실 한꺼번에 혼이 난다. 아무리 잡아떼도 소용없는 일이다. 물증이 너무나 분명하다. 양잿물로 삶은 새하얀 공간에 손바닥 도장이 군데군데 찍혀있다. 그 손의 크기가 우리 삼 남매 것이라는 것을 꼭 대어보지 않아도 뻔하게 알 수 있었다.
긴긴 겨울밤, 오줌싸개 단골이 또 한 차례 솜이불에 근사한 지도를 그려놓았다. 누구랄 것도 없이 삼 남매가 교대로 오줌을 싸대는 통에 전용 솜이불이 따로 있을 정도였다. 세탁기가 따로 없던 시절 솜이불들은 홑이불이 벗겨진 채로 자주 빨랫줄에 걸려졌다. 한 두 번은 말려서 그냥 써야 하기 때문이다. 숨바꼭질을 하던 내가 솜이불을 가르고 또 숨는다. 햇볕에 일광욕을 시키려고 걸어두신 그 속에서 밤에 내가 흘린 오줌 지린내가 진동한다. 옥양목 홑이불에서 나던 빳빳한 상쾌함을 기대하던 나는 이내 인상을 찌푸리며 술래에게 들킬 작정으로 나와 버린다.
무거운 빨래들이 널리는 날에는 빨랫줄이 제 힘에 겨워 축 늘어져 버린다. 그러면 엄마는 긴 바지랑대를 중간에 세워 빨래무게를 올려 두신다. 길다란 장대 하나가 버티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양의 빨래이건만, 바지랑대는 아무런 불평 없이 하늘만 쳐다보며 서 있다.
가을이 무르익던 어느 날, 댓돌 위에 앉아 나른함에 졸던 내가 무심코 비어있는 빨랫줄을 쳐다본다. 잠자리 한 마리가 바지랑대 꼭대기에서 한참을 쉬다 날아간다. 곧 떨어질 듯 아슬아슬한 자세인데도 참으로 평화롭게 쉼을 얻고 가는 것이 어린 내 눈에도 비취었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바지랑대가 제 무게를 기대고 쉬는 것을 보았다. 항상 빨랫줄을 도와 무거움을 버티고만 있어야 하는 게 바지랑대의 역할인줄만 알았다. 빨래들이 없는 날, 바지랑대는 제 몸을 가장 편안한 자세로 마음껏 빨랫줄에 비벼대며 기대서 있었다. 한 폭의 평화로운 그림으로 지금까지 나의 뇌리에 강하게 남아있다.
퇴근하는 남편의 얼굴에서는 날마다 피곤의 먼지들이 켜켜이 쌓여 날아갈 줄을 모른다. 우리가족의 바지랑대가 되어 무게를 지탱하고 서느라 휘청거리는 남편이, 나이가 들면서 많이 안쓰럽다. 나와 아이들은 물기도 머금고, 때로는 풀도 뿌려진 갖가지 빨래 모양새로 남편바지랑대에 스스럼없이 기대며 살아왔다. 이제는 잠시라도 내가 팽팽한 빨랫줄로 남편 곁에 다가서는 여유를 지니고 싶다. 지친 육신의 바지랑대가 기대어 편안히 졸음을 쏟을 수 있는 든든한 빨랫줄. 아이들은 도란거리며 내 양팔에 걸린 알록달록 빨래가 되어 부는 바람결에 춤을 추겠지.
하늘빛이 어둡다. 비라도 잔뜩 뿌려보겠다는 일그러진 표정으로 나를 흘끔거리며 내려다본다. 아무리 쳐다보며 빗방울을 퍼붓는다 해도, 빨래를 걷으러 뛰어나갈 엄두를 내지 않는 나의 지금이다. 거실이며, 베란다에 주렁주렁 달린 빨래를 애써 걷을 일이 없어졌다.
아득히 먼 유년의 뒤란에서 엄마가 소리쳐 부르신다. “얘야, 비오겠다 어서 빨래 걷어라!”
흙 마당을 밟고 겅중거리며 나는 추억의 몸부림으로 세워놓은 바지랑대를 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