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삼밭 어린 일꾼
인삼밭 곽씨는 엄청난 구두쇠였다.
관리만 하는 주제에 마치 드넓은 인삼밭이 자기 것인 양 목에 힘을 주고 다녔다.
땅딸막한 키에 뱁새눈이 그를 더욱 찬 얼음 덩어리처럼 보이게 한다.
열 한 살이었던 나는 엄마 따라 갔던 읍내 장에서 한눈에 쏙 들어오는 샌들을 보았다.
집에 와서 저녁을 먹으며 눈을 감아도 주황색 바탕에 흰줄이 시원하게 들어간 그것이 아른거리기만 한다. 값을 물어보니 사천오백원이나 한다. 애꿎은 땅바닥에 발 도끼질만 하고 서 있다가 왔다. 엄마가 그것을 선뜻 사주실리가 만무하다.
여름방학에 접어들면서 옆집 승주가 돈 벌러 함께 가자하며 귓가에 속삭여 댄다. 어린아이가 무슨 돈을 어떻게 벌겠느냐는 내 말에 “인삼밭 풀 뽑는 일하면 된단 말야”하며 샐쭉 웃는다.
얘긴 즉, 아이들은 반나절만 하면 되는데 이 백 오십 원을 쳐준다는 것이다.
순간 머릿속에서 반짝 떠오르며 사라지는 것은 읍내 장터에서 본 주황색 샌들이었다. 가족들에게 굳이 허락을 받을 필요는 없었다. 반나절동안 들이나 산으로 놀러간 줄 아실 테니까.
다음날부터 나는 인삼밭 일꾼이 되었다. 곽씨는 우선 명단을 적은 회색빛에 가장자리만 군청색 줄 들어간 손바닥만 한 치부책을 꼼꼼하게 확인한다. 내 얼굴 한번 그 공책 한번 번갈아 들여다본다.
폭염 속에 삼밭 고랑은 그야말로 엿 고을 때 군불 지핀 사랑방 아랫목보다 더욱 후끈 달아올랐다. 호미하나 달랑 들고 한 고랑을 오갈 때마다 목 줄기로 흐르는 땀이 옷을 몸에 착 달라붙게 했다. 다리가 저려서 몇 번이고 일어나면 반드시 쪼그려 앉아서 하라고 지시하는 곽씨.
곽씨는 팔에 완장만 없었지 꼭 인민군 행동대장 같았다.
이미 스쳐간 고랑을 재차 검사하며 몇 개 빼놓은 잡초를 보면 ‘여기 다시!’ 라고 한다.
호미로 벅벅대며 바닥을 긁다보면 마디 잘린 벌레토막이 뒹굴기도 한다. 꽥 소리치며 뒷걸음질 치다가도 내일부터 오지 말라 할까봐 징그러움을 꾹 참는다. 그렇게 며칠을 해야 샌들 값이 벌어질까.
밤이면 골아 떨어져 잠이 드는 나를 가족들은 그저 낮 동안 얼마나 놀기만 한 것이냐 면서 핀잔을 줄뿐이었다.
꿈에서도 잠시 구름처럼 만져질 듯 사라지는 환한 샌들. 조금만 참으면 그 샌들에 내 발을 밀어 넣어 볼 수 있고 개학하면 친구들 앞에서 자랑하리라는 뿌듯함이 가득한 나날들이었다.
드디어 돈이 나오는 날이다. 그날그날 품삯을 주는 것이 아니라 따로 정해진 날에 일정한 양의 모아진 돈이 나온다. 사천오백원이 모이던 날이었다.
내 차례가 되어 돈을 받으려는데 “넌, 제대로 깨끗하게 못 했으니 다 줄 수 없다. 반나절 치는 빼고 줄게” 하며 사천이백오십원만을 내 손에 쥐어준다.
곽씨가 무서워 아무 말도 못하고 집으로 왔다.
가족들이 들에서 돌아 온 저녁이다.
밥상을 보고도 시큰둥하니 툇마루에 앉아 있는 나를 보고 둘째고모가 다가와 무슨 일 있느냐 묻는다. 말을 했다가는 오히려 그런데 다녔다고 혼이 날까 주저하다 설움이 복받쳐 엉엉 울어버렸다. 말을 다 듣고 난 둘째고모가 벌떡 일어나더니 곽씨네로 함께 가자고 한다. 무서웠다. 고모는 여자인데 곽씨한테 그 돈 이백오십 원을 받아낼 수 있을 것인가. 곽씨네 문 앞에 왔을 땐 차라리 샌들을 포기하고 싶어졌다.
집안으로 들어간 고모만을 쳐다보며 대문 밖에서 슬쩍 들여다보니 둘째고모 특유의 카랑카랑한 음성이 밖에까지 들린다.
“아니, 아저씨. 고사리 손으로 힘든 거 참아가며 애썼는데 그걸 떼어먹어요? ”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은 땅을 밟지 않고 거의 날아온 것으로 지금까지 기억된다.
며칠 뒤 고모는 그토록 갖고 싶어 하던 주황빛 샌들을 사왔다.
먼지가 묻을세라 사흘에 한 번씩 물로 걸레로 닦으며 아껴 신었다.
손발에 얼음 박히던 겨울에도 우리는 인삼밭에 가서 돈을 모았다. 눈이 내리지 않는 날이면 봄에 갈아입힐 인삼밭 이엉을 엮으러 갔다.
곽씨는 또 인민군 대장이 되어 사람 키 두 배정도 되는 길이의 대나무를 들고 다 엮어 가는 이엉 끝을 잡고 다섯 자씩 재어둔다.
돈을 쳐주지 않는 이엉이 있다. 너무 잘게 엮었거나 굵게 짚을 넣고 이으면 다시 풀어야 한다.
여섯 살 차이나는 막내고모를 따라가 몇 번 해본 적이 있다. 다섯 자가 한 묶음으로 말리면 그게 십 원 이다. 손이 얼고 잘 움직여지지 않았지만 경쟁이 붙은 사람들은 이야기 나누는 틈도 없이 늘어가는 이엉의 길이만 쳐다본다.
우리 아이들이 지금의 이 이야기를 듣는다면 뭐라 말 할까?
은행가서 카드만 집어넣으면 돈이 척척 나오는데 무슨 걱정이냐고 할지도 모른다. 하루에도 몇 번의 군것질로 오 백 원 천 원쯤은 길가에 구르는 돌멩이로 아는 아이들.
갖고 싶은 물건을 품에 간직하기 위해 꿈을 꾸지도 땀을 흘려보지도 않는다.
참거나 절제하지 않아도 알아서 다 생기기 때문이다.
소중한 땀방울의 무게가 사라지는 이 시대에 내 아이들이 살고 있다.
딸아이는 이엉이 무엇인지 알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