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 머리
칠순중반은 넘게 보일 노부부가 차에 오르는 모습을 본다. 할머니의 자리를 잡아주신 할아버지는 들었던 보퉁이를 옆자리에 내려놓는다. 할아버지가 천천히 문 앞으로 걸음을 옮기신다. 할머니만 먼길 나들이를 가시나보다. 버스의 엔진소리가 부르릉거리며 곧 출발할 기미를 보이자, 내리려던 할아버지는 무엇인가 할머니께 당부하신다. 할아버지는 쉽게 뒷모습을 보이지 않으셨다. 내 시선은 보도에 올라서서 할머니 쪽을 내내 쳐다보는 할아버지께만 머물러있다. 차가 주행선을 찾아 속도를 밟으려 하자, 버스 안 할머니를 향해 백발이 성성한 아름다운 노년의 모습으로 손을 흔드신다. 수줍게 앉은 할머니도 그에 답하는 손짓을 보내셨다.
잠깐동안 아름답게 움직이는 한 폭 그림을 보았다. 차가 도로 위를 한참이나 달리도록 할머니의 뒷모습만 바라보고 있었다. 옥비녀 곱게 꽂으신 쪽 머리였다. 가지런히 빗어 넘긴 끝으로 동그랗게 옥색비녀 물고 틀어진 쪽 머리를 얼마 만에 보는 것인가. 나의 기억은 한참이나 시간을 거스르고 있었다.
지금은 하루에도 몇 번씩 어머니의 한숨 속으로 들어가는 안타까운 모습이 되었지만, 젊은 시절 우리 할머니도 쪽을 찌고 다니셨다. 며칠 전 전화기 너머로 들리던 어머니의 흐느낌 소리가 아직도 생생하다. 이불과 방벽에 잔뜩 똥칠을 해놓아 목욕시킨 후 밥 수저를 떠드리다 두 분이 손을 잡고 울었다는 것이다.
“내가 이 모양인데 죽어지지도 않으니 너만 불쌍하다.”
잠시 정신이 되돌아오면 거친 욕설은 사라지고, 언제 그랬냐는 듯 며느리를 향해 울부짖는 시어머니가 된다. 치매 할머니 요양시설에 모시라는 가족들 말에 “난 못한다. 얼마 사시지도 못할 분 그런 곳에 모셨다가 금방 가시면 후회되고 한 맺혀 어쩌란 말이냐” 하시는 어머니. 숱이 적어진 머리를 빗겨드리며 지금 나처럼 할머니의 곱던 쪽 머리가 그리웠을 거다.
안방 쪽문 가까운 벽에 거울을 고이고 할머니가 앉으면 나는 숨을 죽이며 가만히 그 과정을 지켜보았다. 옛 여인의 어여머리 꾸미듯 차분히 오래도 걸렸던 일들이 어린 손녀에게는 신비스럽기까지 했었다. 방바닥엔 물 한 대야가 놓여있고, 그 옆으로 참빗, 얼레빗, 은비녀, 허리춤에 매고 다니던 긴 헝겊 끈도 있다. 자잘하게 늘어 선 도구들이 제 위치에 알맞게 쓰이던 것을 지켜보던 일들은 다시 간직할 수 없는 장면이 되어버렸다.
거울 앞에 풀어진 할머니의 머리는 방바닥에 닿을 정도로 길었다. 얼레빗으로 우선 대충 여러 번 빗어 엉킨 부분을 정리한다. 이마에서 정수리까지 일직선으로 곧게 가리마를 탄 후, 대야에 물을 발라 가며 다시 참빗으로 넘겨 빗는다. 뒷목 중앙부분쯤에서 한 묶음 된 머리카락을 허리끈 두 겹에 걸어둔다. 끈을 입안에 넣고 어금니로 물고 계신다.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 궁금했지만 한마디 소리라도 내면 매끈한 머리카락이 흐트러질 것만 같은 엄숙한 분위기였다.
입에 물고있는 허리끈의 반대편 머리를 왼쪽 가슴께로 내려서 세 갈래로 땋으신다. 허리끈이 느슨하거나하면 뒷부분머리묶음이 가운데 있지 못하고 비뚤어지므로 입에 꼭 물고 계신 거였다. 끈을 입에 물고서도 집안 일에 대한 지시를 큰 소리로 하신다. 머리를 다 빗어 올릴 때까지 쉬지 않고 아침 찬거리, 이불빨래 풀 먹이는 일, 장독대 단속의 소소한 집안 일들을 참견하신다. 내 귀에는 할머니 말소리가 하나도 들리지 않는다. 오로지 쪽 머리의 과정만 꼼꼼하게 지켜볼 뿐이었다. 사실 앙 다문 어금니에서 나오는 말인지라 알아들을 수도 없었다.
다 땋은 머리가 등 쪽으로 휙 넘겨지고 물렸던 허리끈이 할머니 입에서 해방이 된다. 숱도 많으신 우리 할머니, 꼭 지게 멜빵 같다. 목 밑으로 굵게 시작되는 머리줄기가 기름 바른 찰 진 떡 결이다. 슬쩍 잡아 당겨보고 싶기까지 했다. 쫀쫀한 머리카락 줄을 왼손으로 집어넣고 한 바퀴 돌려 손안에 모은다. 나머지 늘어지는 부분은 머리묶음부분에 끝자락까지 친친 감아올린다. 마지막 단계로 은비녀가 제 자리를 찾아 들어가게 된다. 직선으로 꽂혔다가 왼쪽 구멍에 반짝 다리를 내미는 비녀가 보인다. 할머니의 거대한 머리 올림이 막을 내리게 된다. 방바닥에 가닥가닥 흩어졌던 머리카락들을 손바닥으로 쓸어 모아 손안에서 코딱지 비비듯 뭉친다. 쪽 머리 장식에 참여되지 못하고 버림받은 할머니의 부스러기가 화형식을 맞는다. 회색 재를 덮어쓰고 있는 화롯불 중앙으로 툭 던지면 매캐한 연기와 함께 지글지글 타던 머리카락냄새. 짚수세미로 닦아세워 물기 말려놓은 하얀 고무신에 버선코를 들이밀게 되면 우리 할머니 나풀나풀 오일장 가는 길이 된다.
할머니 연세가 칠십쯤이었을까. 다시는 쪽 머리를 볼 수 없게 되는 역사적 사건이 생겼다. 신식할머니를 만들어 보겠다는 고모들의 온갖 애교 섞인 유인작전에 불쑥 미장원엘 가시더니 곱슬머리 할머니로 변신한 것이다. 눈 어둡고 기운 없어지는데 머리손질 번거롭다는 고모들 말이 한몫 했나보다. 낡은 참빗과 은비녀는 파마약 냄새에 밀려 문갑 속으로 꼭꼭 숨어버리고 말았다. 할머니의 표상이던 삼단 같은 머리가 개화기 여인네의 형상으로 탈바꿈해 버렸다. 당사자보다 더 진한 허전함을 느끼고 지켜보는데 할아버지가 한 말씀하신다. “머리 모양이 그게 뭐야? 당장 이혼이야.”
가족들 중 누구보다도 할머니의 쪽 머리를 못 보게 된 것을 가장 섭섭해 하신 할아버지다. 작년 봄 사월에 할아버지 장례를 치르면서 하염없이 슬픔을 못 견뎌 우시던 할머니. 부부라는 이름으로 67년이나 해로 하셨으니 그 세월은 다른 사람의 평생일수도 있는 시간의 무게였다.
할머니의 쪽 머리도 사라졌고 이제는 푸석한 머리 곱게 빗을 힘조차 없다. 거동 못하신 지 오래이니 쉽게 감겨드리기 위해서인지 군 입대 앞둔 청년의 머리모양이 되셨다. 진지를 드실 때 수저 드는 손 움직임마저도 검불 되어 가볍게 떨린다.
할아버지의 다정한 배웅을 받는 버스 안 쪽 머리 할머니를 보며 울 할아버지 살아 계셨으면 저리 하셨을 거라 생각한다. 모시적삼 고운 학처럼 바느질해 할아버지께 입히고 은비녀 한일자로 뒷머리에 쪽찐 할머니와 걷던 두 분의 나들이가 떠오른다. 하루에도 몇 번씩 ‘너희 할아버지 어디 가셨냐?’ 라고 물으시며 장례를 치른 사실조차 기억 못하는데, 불쑥 먼 길 떠나실 것 같아 가슴이 저며온다.
할아버지 생전에 할머니는 치매증세로 이따금씩 어머니를 힘들게 하셨다. 그럴 때마다 “네가 참어라. 죽을 때가 되어서 그런 거야. 정 뗄 라고 말이다” 하시며 어머니를 향해 나직한 목소리 되던 할아버지 마음속에, 아내인 할머니는 큰 안쓰러움으로 남았을 것이다. 정을 떼어내기 위해 그렇게 일찍이 머리에서 쪽을 떼어내셨던 걸까.
아주 먼 곳에서 손짓하며 쪽찐 머리 다시 보고싶다 부르시는 할아버지 음성이 내 귓가에까지 들리는 듯하다. 할아버지 가신 아픔이 아직도 아물지 못했는데 할머니를 어찌 먼 길 나들이 보낼까.
할머니 뒷모습 보며 배웅할 자신 없어 먼저 숨어 버리고 싶은 지금, 쪽찐 머리모양 닮은 새벽달이 일그러진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그 얼굴빛이 내 자화상 같아서 일어나 커튼을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