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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데기


BY 박예천 2008-12-23

 

                    부엌데기


 

                                                     

“그 옷 좀 벗지 그래. 꼭 부엌데기 같네.”

눈가에 있던 사진기를 가슴께로 내리며 남편이 말했다.

가을 끝 무렵 단풍구경가자고 졸라댄 내 성화에 못 이겨 떠난 나들이였다.

형형색색 물든 산언저리를 바라보느라 넋이 빠져있었다. 눈부신 단풍듦에 더 쪼그라진 내 자화상이 보였다.

급하게 나오느라 집에서 입던 대로 회색점퍼 하나 걸쳤는데 보기 싫었던 모양이다. 사진사의 요구대로 부엌데기 점퍼를 벗으니 저녁기운이 서늘했다. 오싹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어색하나마 원하는 자세를 취해주니 겨우 몇 장 찍고 만다. 늘 보던 밉상인데 뭔들 새로울 게 있었으랴.

지난해 가을, 단풍가득 번진 산에서 또 하나의 내 이름을 찾았다.


부엌데기라.

여자로 살며 붙여지는 여러 이름 중 부엌데기도 있었구나. 며느리, 아내, 어머니와는 좀 다른 무게가 느껴진다.

손꼽아 헤아려보니 나의 부엌데기 경력은 이십 오년이다. 여고입학하면서부터 자취생활을 했다. 손수 밥을 지어 먹어야했으므로 자연스레 부엌일을 시작한 셈이다.

제대로 된 부엌데기라면 적어도 부엌일만큼은 전문적인 수준이어야 하는데 나와는 걸맞지 않다. 아직은 수준미달이기도 하거니와 결코 자부심을 지니고 일에 임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지못해 습관처럼 밥을 짓는 날도 있고 콧노래 흥얼거리며 요리를 즐기기도 한다. 한마디로 진득하니 한결같은 마음이 되지 못한다. 변덕이 죽 끓듯 한다.

몸살기운이라도 있는 날은 다 때려치우고만 싶다. 그릇이며 칼과 도마를 내동댕이치고 주저앉는 상상을 한다. 단 몇 날만이라도 누군가 자청해서 부엌데기 일을 맡아주었으면 한숨 쉬기도 한다.


사실 전업주부라는 게 이름만 그럴듯하지 중노동이다. 전폭적으로 집안일을 도맡아해야 하는 거다. 마치 선을 긋기라도 했는지 집안에서의 있어지는 모든 일이 내 양어깨에만 주렁주렁 달려있다. 몸이 부서지게 하루 종일 동동거렸건만 집안 모양새는 변하는 게 없다.   

퇴근한 남편은 더 이상 자신의 직장이 아니라는 자세로 손가락하나 까딱 않는다. 퇴근시간도 없는 - 퇴근을 한들 갈 곳이 있던가. -

이름만 그럴싸한 전업주부. 그게 가장 큰 나의 직함이다.

일인다역이라서 나누어진 각 부서의 일도 혼자 다한다. 청소, 식사, 세탁, 육아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억척스러워야 한다. 앓아눕기라도 하면 처음 몇 날은 가족들도 건강을 걱정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이 달라진다. 당장 뒤죽박죽된 집안 꼴을 해결해줄 손길을 그리워하게 된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얼마 전, 딸아이에게 아프다하니 “그럼, 밥은 어떻게 해?” 라고 말했던 기억이 있다. 깊은 생각 없이 꺼낸 어린아이의 말이거니 넘기다가 속마음이 착잡해 옴을 감출 수 없었다.


부쩍 부엌데기의 늙어 감을 본다.

기력을 소진해버렸는가. 요즘 들어 자주 몸이 말썽이다. 어느 정도 엄살로 투정부려보기에는 솔직히 미안함이 앞선다. 나 자신도 나이 듦에 대한 준비랄지 계획이 전혀 없었다. 죽을 때까지 무궁무진 힘이 솟아 날줄로만 알았다. 가끔 속병이나 감기정도야 애교로 넘어가겠지 싶었다.

헌데 그게 엉뚱한 방향으로 치 닿는다. 몸 곳곳이 고장신호를 보내오기 시작한 것이 벌써 몇 해 전부터이다. 치과에 드나들기 시작하더니 내과, 비뇨기과, 산부인과를 순회하듯 건강상의 문제가 발생한다.

최근 부인과 질병으로 수술을 하게 되면서 어쩐지 맘 병까지 얻었다는 생각이 든다. 나약해지는 몸에 담겨있던 속내가 자주 울컥거린다.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은 감상을 부엌데기 주제에 배워버린 거다. 빨래를 널다가 흘깃 넘겨다 본 저녁노을이거나 음식물쓰레기 버리러 나간 빈 주차장에 뒹구는 낙엽을 보는 게 뭐 울 일이라고 훌쩍이는가.


수술경과는 양호했고 무리 없이 퇴원하여 집에서 쉬고 있는데 맘이 불편하다. 남편이 해주는 밥을 태연자약 받아먹자니 목에 가시가 함께 넘어간다.

약이 독한지 두통이 동반되어 저녁나절 산책을 시도해봤다. 갈 곳이야 뻔하지. 놀이터 한 구석 빈 의자에 앉아있는데 겨울기온이 차갑다. 엉덩이는 시려도 머릿속은 청신하게 헹궈지고 있었다.

어둑어둑해지려는데 시간을 맞춰놓았는지 가로등들이 일제히 말갛게 제 얼굴을 밝힌다. 겨울나목과 철제 놀이기구 사이를 유영하는 냄새가 코끝으로 다가왔다. 저녁 냄새였다. 아파트단지 어느 집에도 굴뚝이 없건만 내 유년의 겨울저녁 냄새가 사위를 채워왔다. 금방이라도 목이 터져라 부르는 어머니의 음성이 신작로에 가득찰 것만 같았다.

o o 야, 밥 먹어라!

아! 맞구나. 어머니도 부엌데기였으리라. 고스란히 딸에게 큼직한 명패를 물려주셨다.


세차게 여러 번 도리질을 해본다.

이제 나는 전문 부엌데기를 꿈꾸지 않는다.

숨 한번 고르고 널찍하니 펼쳐진 세상 좀 봐야겠다. 땅 파고 묻어두었던 글 심도 퍼 올려 봐야하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웃어도 볼 거다.

헌데, 그것들이 다시 움트기나 할지.      

 

   


2008년 1월 10일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