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기없는 나무혼
멧새 숨죽여 흐느낄 때 새의 부리에 걸린 나무의 실밥이 후드득 튿어진다. 숲은 온통 실로 연결되어 있다. 갈참나무잎과 하늘이 개미하고 소나무 옹두리가 이끼하고 바위가 다 한주름에 엮여있다. 아득한 흰구름얼굴, 선한 주름살도 눈먼 어미새 바늘의 깃털에 사선으로 꿰어진다...
47편|작가: 바람꼭지
조회수: 1,637|2004-09-27
까치밥과 돌멩이
어느날 많은 돌가운데에서 특이한 돌 하나를 보았다. 손바닥 두개 합친 것보다는 조금 작고 한개 보다는 큰 정도의 돌이엇다. 온 몸이 구멍투성이고 흠이 있는데다 빛깔도 그리 예쁘지 않은 회색과 황토색이 뒤섞인 것이었다. 크고 작은 유리같은 결정체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는데..
46편|작가: 바람꼭지
조회수: 1,596|2004-09-17
한낮
입술을 달싹일 수 없을 만큼 뜨거움에 혀를 깨물렸다. ( 장미의 굽은 콧날이 너무 예뻐...) 유리의 햇살안에 갇히어 몸부림하는 벙어리 자벌레. (이 형벌에서 구해줘..) 느닷없는 번갯불에 하늘이 갈라지고 소나기가 내리더라도 도망치지 못한다. 사랑에 가위눌린 중복..
45편|작가: 바람꼭지
조회수: 1,543|2004-08-03
실은 자가 아니었다.
깊이를 모르는 연못 아래로 무명실 하나 떨구었다. 그믐밤에도 하염없이 좌우로 흔들리는 물풀들에 감기는 물방울들, 여러 느낌의 유희. 아무리 눈 밝은 사람도 찾아내지 못할 독을 묻힌 은바늘을 품고 있는 탁자위 야윈 손전등. 매듭을 ..
44편|작가: 바람꼭지
조회수: 1,488|2004-06-29
등꽃 속에 갇힌 개미
등꽃속에 갇힌 개미 개미 한마리 이리저리 뒤틀린 등나무 가지의 틈새를 비집고 기어 오른다. 등꽃향에 홀려 숨죽이며 쉬지 않고 오르더니 꽃 속에 갇혀버렸다. 돌아갈 수없음을 탄식하지만 아무도 길을 알려 주지 않는..
43편|작가: 바람꼭지
조회수: 1,698|2004-05-19
감자의 살
감자의 살 감자가 몇 알 땅 속에서 썪어 가고 있었다. 새 한 마리 감자 숨어 있는 자리 콕콕 쪼다 날아 간다. 농부가 캐지 않은 감자는 허물어지고 검은 물이 되어 흙이 되어 간다. 흙이 된 감자의 살은 다시 내년 ..
42편|작가: 바람꼭지
조회수: 1,540|2004-03-19
참깨를 덜컥 쌀위에 쏟으며 ..
느닷없이 고무줄 끊고 달아나는 머슴애 뒤쫓아가며 바락바락 달겨들던 가시내 눈흘김조차 예쁘던 얼굴에 악으로 안될 때 흘리던 눈물콧물자국 다 지우듯이 쌀을 힘주어 씻어 대는 내 손목을 뉘 손목인지 홀려서 보다가 손목보다 더 하앟게 흘러 넘치는 쌀뜨물을 보다가 ..
41편|작가: 바람꼭지
조회수: 1,623|2004-03-12
대파를 썰다 떠날 수 있게
대파를 썰다 떠날 수 있게 하얀 수염뿌리에 묻은 흙을 툭툭 남김없이 털어낸다 그의 겉모습을 싸고 있는 하얀 미사포를 벗겨내고 흰 이마에 싱긋이 흐르는 귀티나..
40편|작가: 바람꼭지
조회수: 1,590|2004-02-16
우리 쌍둥이들 대학교 둘다 ..
그동안 남편의 병원생활과 여러가지 사정으로 한동안 글 올릴 마음의 여유가 없었습니다. 이젠 남편도 퇴원하고 하나씩 그동안 있었던 일을 차분하게 올려 볼께요. 우리 쌍둥이들, 둘 다 합격했습니다. 큰 애는 ㅅ 전문대 극작과를 합격하였고 한 명은 ㄱ사대 국어교육..
39편|작가: 바람꼭지
조회수: 1,528|2004-02-16
시간의 살을 뜯어 먹는다
시간의 살을 야금야금 뜯어 먹는다. 염소가 초록 풀을 한가로이 뜯어 먹듯이 나의 몸을 별일 아니라는 듯 뜯어 먹는다. 나의 실핏줄을 허물어뜨리고 나의 기억을 다 삼켜 씹어 먹고 아무런 할 말도 없는 침묵까지도 캑캑거리여 목구멍너머로 밀어 넣고..
38편|작가: 바람꼭지
조회수: 1,568|2004-01-29
먼지의 노래
먼지의 노래 기와집 지붕위의 먼지가 한 장의 기와를 노래한다. 액자안에 갇힌 먼지는 액자만한 가슴으로 또 갇혀 있는 지도 모르고 자유롭게 노래부른다. 호주머니 안의 먼지는 호주머니 안의 체취를 냄새맡고 전깃줄에 쌓인 먼지..
37편|작가: 바람꼭지
조회수: 1,586|2003-11-25
한 개의 유리창
한자루의 볼펜도 쓰기에 편한 것이면 좋으리. 음악 한곡도 부드럽고 귀에 익으면 좋으리. 비누 하나도 향그러우면 좋을것이고 찻잔하나도 기품있으면 좋으리. 겨울아침 바람에도 여밀 수 있는 옷자락이면 족하고 친구 한 사람도 정답고따스하면 좋으리. 방하나도 우산..
36편|작가: 바람꼭지
조회수: 1,567|2003-1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