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이 글에서의 40대 직장 여성과 MZ직원과의 싸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1,589

까치밥과 돌멩이


BY 바람꼭지 2004-09-17

어느날 많은 돌가운데에서 특이한 돌 하나를 보았다.
손바닥 두개 합친 것보다는 조금 작고 한개 보다는 큰 정도의 돌이엇다.
온 몸이 구멍투성이고 흠이 있는데다 빛깔도 그리 예쁘지 않은 회색과 황토색이 뒤섞인 것이었다. 크고 작은 유리같은 결정체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는데 그 작은 알갱이들이 모두 수정이라는 게 신기하였다.
사람의 마음이나 느낌은 돌멩이마저도 정결하고 매끄러운 살결에 대한 호감을느끼게 되는데 표피가 그 우둘두둘한 돌을 보는 순간의 느낌은 특이 했다.

갑자기 돌에게 묻고 싶었다.

너, 무슨 사연이라도 있니?
어디서 어떻게 살아왔기에 그렇게 아프고 초라한 모습이니?
마치 가축의 내장과 주름과 구불구불한 주름상이에 때가 낀 모습에서 알 수 없는 서글픔이 느껴졌다.
돌하나를 보며 알 수없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울고 싶었다..
돌을 사랑하고 아끼며 수집하는 취미를 가진 분에게서 _<여기서 가진이란 의미는 돌을 소유한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그 누구도 이 우주안의 돌을 소유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돌에게는 사람의 인격대신 돌만의 품경이 있을 것이다.우리네 사람들은 돌을 사랑하거나 사랑하지 않거나 선택할 뿐이라고 생각한다. >
돌을 나의 방으로 가져 오는 마음은 반갑고 고맙다기보다 삶의 어찌할 수없는 운명을 받아 들이는 기분이 었다.

그 돌을 목욕타올로 문지르고 씻어주며 어루만지다가 항아리 옹기 뚜겅에 물을 담고 물 속에 슬그머니 담그며 문득 하아 하며 한숨이 나왔다.

돌은 단순히 돌이 아니었다.
바로 나였다. 나는 돌의 아픔을 아파한 것이 아니라 나자신의 아픔을 아파하고 슬픔을 슬퍼하고 있었다.
돌은 바로하트 모양의 벌레먹은 나의 심장이었다.
그가 세상살이의 온갖 물결에 부대끼고 아파하며 울고 웃던 내 삶의 순간이 얼룩져 있는 나의 심장이라고 느끼는 순간 아찔하게도 정말 나의 육신의 심장은 동그랗게 뻐엉 뚫려있는 느낌이 왔다.한 참동안 나의 가슴 중간을 어루만지며 넋을 잃고 묵묵히 서 있었다.
물 속의 회색빛 심장이 나를 향해 뭉클하게 웃었다.

심장이 없는 여인의 창백한 표정을 마음 속 거울로 들여다보았다. 사랑하는 마음의 주홍색 가슴을 뚜욱 떼어 회색으로 색칠하여 돌멩이에 붙여 놓고 차가운 이성과 지혜의 힘으로 살겠노라 결심한 나를 돌아 보았다.
정말 지혜롭다면 이웃과 함께 기쁠 때 같이 기뻐하고 슬플 때 같이 슬퍼해야할텐데 나자신의 이기심과 만족만을 챙기며 마음의 문을 닫아 걸고 사각의 자존심에 속해 있음을 안다는 것.
바람처럼 거침없고 구름처럼 유유하며 거울처럼 밝게 허공처럼 자유롭게 독수리처럼 담대하게
살고 싶었다. 청춘의 시절엔 추상적인 그런 귀절을 수첩에 적어 놓고 나의 인생 삼대목표따위도 종목별로 적어 두었었다.
생활인으로서의 목표.
자식으로서의 목표
문학도로서의 목표등을 거창하게 적어 놓고 작은 글씨로 이상은 높게, 현실은 착실하게라고 약간의 겸손을 가장하였었다.
이십대, 그 나이의 자신만만하던 시기엔 돌멩이 하나에 눈물을 장식할 정도의 약한 마음이 될 수 있으리라곤 상상도 못했었다.

하지만 중년의 여성이 된 지금 오히려 새로운 사춘기 소녀의 마음이 되어 스스로 원하지 않는 바람직하지 못한 삶을 투영하며 슬퍼서 마음의 연못안에 눈물을 텀벙텀벙 적셨다.

많은 사람들이 태어나고 사라지기에 한 순간도 이 지구상의 정확한 숫자는 알기 어렵지만
어느 순간 이 세상 사람이 천명이라고 가정한다면 그 천명을 똑같이 사랑할 수 없을 것이다.
999명을 다 같이 사랑하더라도 한 명은 특별히 사랑하게 될 것이고 그 한명은 흔히 자기자신일 것이다.
그런데 어느날 나보다도 더 사랑하고 싶은 사람을 만났다면 나의 피와 뼈를 다 주고 목숨까지도 줄 수 있는 사람을 행복하게도 만나게 되고 열정적으로 전심전력을 다해 사랑하게 되었다면헤어진다한들 그 것이 비극이라 할 수 있을 것인가?

불행하게도 나는 많은 책을 읽고 사랑의 시를 쓰고 또한 주위의 사람들을 아끼고 사랑한다고 자부하였지만 내가 진심으로 사랑하고 그가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는확신을 주는 사람을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남편은 그런 열정의 개념보다는 우정이나 연민의 감정에 속하는 편안한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어느 때 남편에게 나를 사랑하는지 확인의 물음을 던졌더니 별 이상한 질문을 다한다는 듯 나를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 나이가 도대체 몇 살인데 사랑타령이냐? 사랑이 밥을 주냐? 돈을 주냐? 우리 나이쯤 되면 정으로 사는 거지, 누가 그런 거 의식하며 산다더냐? " 하는데 뭐라고 반문할 말이 없어 피식 웃고 말았다.
좀 더 남편을 이해하고 사랑하려 애써 나왔지만 젊었을 때보다 직접적으로 부딪히고 말다툼하는 일이 없다 뿐이지 서로 내면의 세계를 잘 이해하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나 자신의 생각에도 한가지 문제가 있는 것이 여성으로 태어나긴했지만 심리적인 성은 약간의 남성적 경향이 있어 섬세하고 여성적인 사랑에 대한 감각이 발달되지 않았다.
일남 육녀의 셌째딸이었는데 오빠와 더불어 나도 둘째 아들 노릇을 하고 싶었다.
한 번도 예뻐지고 싶다거니 화장을 하고 싶다거나 치장등에 관심이 없었다.

2002년 가을부터였었다.나는 아마 다시 사춘기에 접어들었나보았다.은행잎의 노란 빛깔이 슬퍼서 눈물이 주루룩 흐르고
달빛에 잠 못이루기도하고 유치하더라도 <미지의 벗에게 >편지를 쓰고 싶기도 했다
은행잎이 바람에 굴러 떨어짐을 보며 우울해하고 별로 친하지도 않은 친구에게 국화꽃이 피었다고 전화도 하고 감당할 수없는 정신적 공허감에 휩사였을때 조금이라도 다정한 목소리를 듣는다면 여성이건 남성이건 관련없이 위로받고 싶음에 목말라했다.
누구라도 그 당시 부드럽게 대해주었다면 유혹에 넘어가 모든 사람의 질시를 받을 불륜을 저지렀을 지도 모른다.
정신적인 공허감과 목마름에 애타는 마음은 이십년 전에 까마득하게 잊어버렸던 시쓰기를 다시하게 만들었다.좋은 시가 안되더라도 쓰는 일만으로 행복하였다..

행복하면서도 사람의 욕심은 또 다른 욕망을 추구함인지 엉뚱한 고민과 망상을 하게 한다.

쓸데 없는 잡념의 풀밭을 다 베어 내려면 어떤 방법이 좋을 까?
이 세상에 태어나 진심으로 사랑하고 싶은 사람 못 만났더라도 불행으로 여기지 않으며 나의 삶에 인연 주어진 모든 사람에게 진심의 사랑을 폭포처럼 퍼부어 볼까?
그러면 뛰어난 연기자가 주인공역할을 오래하다보면 진짜 주인공보다 더 주인공답듯이 가짜 사랑에도 진심으로 골몰하다보면 어느 땐가는 진짠지 가짠지 구별이 안 갈 정도로 진실한 사랑을 하게 될 것이다.

우선 출발점은 나와 제일 가까이 있는 내 스스로도 다 모르는 나자신의 심신을 사랑할 계획이다.
평범하고 어리숙한 나, 건망증의 나, 게으른 나, 자기가 그래도 아주 바보는 아니라는 과대망상의 병에 걸린나, 모든 잘난 나, 못난 나, 건강한 나, 아픈 나, 모두를 불평없이 받아들여야 한다.

돌멩이의 얼굴에서 굳어버린 내 심장을 발견한 지금 미쳐 나의 작고 어두운 눈이 못 보아 다 사랑하지 못한 사람들의 얼굴이 어딘가에 있을 수도 있겠지만 현실에 만족할 뿐 두리번거리며 찾을 의도는 전혀 없다. 아무리 나의 이상형을 만난다한들 그런 사람은 바라보기 좋게 허공의 감나무에 달린 까치밥으로 남겨 둘 것이다.
어느 외국시인의 시처럼 가보지 않은 길을 놔두어 노년에 시간이 남아 돌 때 기억의 창고에서 가끔 꺼내어 심심할 때마다 추억에 잠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뭐냐?.
아직 그런 사람이 누군지 전혀 모르고 있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일이 변명하는 일인데 나의 마음의 바지랑대 길이가 너무 짧아서 딸 수 없는 감홍시였다고 아니 그 감홍시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아니 보긴 했지만 나대신 다른 사람에게 필요할거라고 남겨두는 거라고 혹은 차마 나의 입안에 넣고 오물거리기엔 아까운 감이어서 반가운 까치라는 손님을 위해 남겨 둔거라고 최후의 변명을 하려한다. 아니다.
이 세상 나보다 더 지극히 사랑하고 싶은 사람을 아직 못만난거라고 그래서 이 세상 사람이 천명이라면, 그 중에 내 부모나 나를 전생에 죽이기라도 한 깊은 원한의 사람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의 경지가 되더라도 사랑하는 사람의 육신이 죽어버리기라도 하는 운명의 사람이 있을 지도 모른다는 철부지의 상상력으로 오로지 그 사람이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남겨두는 마음이라고 고백하리라.
누군지 어딘지 몰라도 되는 사람, 알 수 없는 사람이 왜 지금 나에게 이글을 쓰게 만드는 것일까?
저 돌멩이가 마력을 부리기라도 한 것일까?

그도 아니면 내 심장이 바로 저 구멍투성이의 돌멩이라고 우기면서
한 사람 지극히 사랑할 가능성을 신이 내게 허락해놓았다면 그 마음을 곱게 100% 제대로 복사하여 만나는 사람마다 그마음을 접착시켜 천지간에 내가 사랑하지 않는 사람없는 그런 넓은 가슴이노라고 말할까.

지금 이순간부터 나의 이름은 여인이 아니다.
바다와 하늘이다.
바다안에 내 한방울의 육신이 녹아 있고 하늘의 공기속에 내 마음의 먼지 하나씩 날아다닌다.
사소한 내가 없는 크고 아름다운 자아가 되고 싶다
이 세상 누구에게도 불편함이나 아픔을 주지않고 도움이 되고 희망이 되며
죽는 순간까지 형식의 예쁨이 아니라 본질이 아름다운 삶이고 싶다

까치밥으로 남겨둔 알 수없는 그 얼굴들 죽으면 만날 수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일랑 하트 모양의 돌멩이에게 숙제로 넘겨 주고 나는 바르고 평화로운 이성의 힘에 의지할 것이다. 지혜에 의지하고 인내심에 의존하고 자연에 귀의하고 적당히 느리게 황소걸음으로 걸을 것이다.
모든 어리석고 불안정한 감정들을 저 돌멩이에게 다 주었으니 유유자적 편안하게 미소 짓는 삶을 살 것이다.

이 아침 어디선가 까치 한마리 감나무 가지를 휘돌아 까악 까악 짓는 듯하고 하늘은 청자빛을 머금어 푸른 물감을 이 땅위로 부으려고 몸을 꿈틀대는 듯하다.
회색의 하트 모양의 돌멩이는여전히 다소곳이 물안으로 가라앉아 있고 이 글을 컴퓨터로 옮기는 나의 독수리 타법의 손놀림만이 고요한 옹기뚜껑의 물의 흐름을 아는지 모르는 지 토닥거리며 바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