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크토크
사이버작가
맘이슈
요리
캠페인
이벤트
더보기
파워맘
허스토리
블로그
아지트
오락실
아줌마의날
로그인
ㅣ
포인트
ㅣ
출석부
공지
연극 <나의PS파트너> 초대 이벤트
AD
사이버작가
· 시와 사진
· 에세이
· 소설
· 좋은 글 모음
· 작가방
이슈토론
설탕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말씀해 주세요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어린시절 기억 한토막
36개월 전 아이도 젓가락 될까요..
아 옛날이여 (14)
삶의 동기부여(2)
중고등학생들에게
중고들학생에게
사이버작가
[에세이] 어린시절 기억 한토막
(6)
국민학교3학년때 내뒤에앉은 친구가자기집 이사가야하는데 방을 못 구했다는말에우리집 문간방이 이사가서 지금비여있다지나가는말로 얘기했더니그날 저녁 자기엄마랑 울집을 찾아오더니그 댜음날 바로 이사를 왔다나는 학교갈때 심심치않코 집에와도 놀친구가 늘 있어좋았다한달에 한두번 잘차려입고 나타나는 그집아빠를두고. 정상적인아빠가 아닐거라는것은 어린 내 눈에도. 티가 낫다그날도 평소와 다름없이 집에 오는길에걔가 지 돈있다고 학교골목길에 만두랑 먹을것을 잔뜩 사주었다실컷먹고 며칠뒤담임인 처녀샘이 나 보고수업 마치고 남아라그래서 샘한테 갔더니니가 어제 ㅇㅇ 이 학교에 저금해야할돈못내게하고같이 사먹자 그랫다며 하는게 아닌가나는 선생님얼굴 놀래서 눈을 동그랗켸 뜨고.쳐다보며걔가 돈있다고 집에오는길에 사 줘서 먹었다나는 걔가 그런돈으로 사준줄 몰랐다며 얘기하니샘도 내가 거짓말하는거는 아니라는걸 알았는지암소리 안하더니 그냥 가라 그랫다그 당시 매달 학교 저금액이 50원이였을때다( 69년도. 3학년때 50원 ) 이 숫자는결코 잊어버린적이없다내가 억울하게 뒤집어썼으니깐개가 그걸 쓰고는 자기엄마한테 들키니 나를걸고 넘어진거같다그래도 울집에 세들어사니 자기엄마가 울집에는내가 그랬다는걸 얘기안햇는가 보다 울엄마가 모르고있었으니깐아무튼 괘씸하고 열받아 걔한테 따지니 자기엄마한테이르지말라고 살살빌더라자기엄마는 날 보고는 암소리 안하더니선생님한테만 일러 나를 혼내라캣나보다지도 양심이찔렀는지 딱 1년 살고 다른곳으로 이사갔다사는동안 말하기싫어 하지않았다학교다닐때도. 내가 안 보일때는 없는흉까지보고내 짝꿍사이를 이간질이나하고아무튼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친구는아니였다어린나이에 담임샘한테 취조아닌 취조를 당하니억울하고 심장이 두근거렸다차후로 이런. 맹랑하고 영악한친구는 만나지않았지만그 트라우마가 있었는지 자라는동안 친구가 뭘 사준다면꺼려져서 더치페이개념도 모르면서내꺼는 꼭 내. 돈으로 내야 펀했다사람 뇌가 비디오 테이프처럼 젊을때 기억은생생하게 녹화되고. 금방한 일도 한참 생각해내야재생이된다. 오래된 테이프가 녹화가 잘안되듯이나가니 날씨가. 사람체온보다 높으니걸어다니니 몸이 타는거 같아 쨉싸게 들어와물힌번 덮어쓰고 안방에 쬐그만 에어컨 잠깐틀고선풍기 바람 쐬며 커피한잔타서 폰.보고있으니 여기가. 바로 천국이네요
86565
|
작성자 : 연분홍
|
작성일 : 2025-07-02
|
조회수 : 576
[시와 사진] 되는 집안
되는 집안은 자신을 바꾸고안되는 집안은 상대를 바꾼다
86564
|
작성자 : 자부자
|
작성일 : 2025-07-02
|
조회수 : 469
[에세이] 아 옛날이여 (14)
(8)
학교가 개강을 해서 막내딸이 아주 바쁜 한 주를 보내는 모양이다.토요일에 엄마 보러 온다더니 오지를 못했다.에미가 걱정할까봐 말은 하지 않아도 탈이 난 모양이다.에구구~. 오지는 못해도 탈은 나지 않았어야 하는데....에미가 병이 났는데도 못 오는 걸 보니 많이 안 좋은가 보다.다음 날 그렇지 않아도 작은 얼굴이 핼쑥해서 현관을 들어섰다.나나 아프면 좋으련만 막내딸 아이까지 왜람.이젠 아이들이 와도 아니 사위가 들어서도, 밥을 해줄 체도 않는다.이웃의 <보쌈식당>에서 점심을 주문하고 식비를 서로 내야한다며 떠들다가 내가 이겼다.늘 처갓집에 와도 당연지사로 사위가 점심을 맡아놓고 샀으니, 오늘은 오랜만에 내가 사야지.냉면과 보쌈으로 배를 채우고 막내딸이 제법 근엄하게 입을 연다."엄마. 섭섭하게 듣지 마시고 제 얘기 들으세요.""왜. 무슨 얘긴데 그리 의미 심장한 표정이야?""엄마가 이제 팔순이 지나셨어요."''엄마가 오래 사셔도 10년? 아니 20년?이예요.''"아이구. 그렇게 오래 살면 어떻게 해.""그렇죠?! 진통제 내성이 아무리 세다 해도 2~30년이예요.""그러니 진통제 맘 놓고 잡수어도 괜찮아요. 아파서 고생하지 마시고 진통제 잡숫자고요.""사람이 몸이 편해야지....아프신걸 내성이 무서워서 진통제를 못 자시는 건 그건 아니라고 봐요.""사람이 몸이 편해야지.... 엄마. 서운하세요?""그렇지? 하루를 살더라도 마음 편하게 살아야지." 진통제에 대한 편견을 허물자는 얘기다."엄마. 우리 진통제 잡숫는 걸로 해요. 진통제가 그렇게 금방 내성 때문에 어떻게 되고 그러지 않아요."맞다. 딸아이의 숨은 지혜가 오늘도 나를 일으켜 세운다."내가 내성에 강한 진통제 구해 드릴게요. 드시고 편하게 지내세요. 제 말뜻 이해하시죠?" 암. 이해 하고 말고.내성 때문에 수명에 문제가 생긴다면 내 딸아이가 이러지 않을 것이다. 참으로 현명한 아이다.아직 진통제는 내 손에 들어오지도 않았는데 내 통증은 멀쩡하다. 언제 통증이 왔었나 싶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편하게 만들까. 딸아이와 헤어지고 두 번 통화를 했다."엄마. 섭섭하신 거 아니죠? 우리 엄마 현명하신 거 내가 알지. 진통제 잡숫고 20년만 버티쇼. 아셨죠?" 중학교 3학년. 칙칙폭폭 기차를 타고 수학여행을 가는 중입니다요. 다시는 못 올 추억이 그립습니다^^
86563
|
작성자 : 만석
|
작성일 : 2025-07-01
|
조회수 : 883
[작가방] 삶의 동기부여(2)
(6)
눈치가 빨랐던 연미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자식보다 더 상냥하게 대했던 남자친구의 엄마였지만 둘의 만남을 환영하지 않는다는 것쯤은.어미의 우려에도 아들이 22살 무렵 미연이와 함께 살고 싶다고 했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길 바랬다. 마음 귀퉁이 한켠으로 툭툭 불거졌던 불안이 기우이길 바랬다. 하지만 이번에도 여지없이 예감은 어긋나지않았다. 조심한다고 비켜 가지 않았던 고비들, 예지력과 같은 나의 예감은 저주에 가까웠다. 아들의 180cm가 넘는 키에 보기 좋던 체구가 사회생활을 하면서부터 불규칙한 식사와 술자리 탓인지 체격이 급격히 불어나기 시작했다. 아들이 손가락을 살짝만 튕겨도 나뒹굴 작고 왜소한 연미, 그 아이에게서 나의 아들을 지켜내고 싶었다.어느 날, 어떤 회유에도 흔들리지 않던 제 엄마에게 아들이 물었다. ”엄마는 누나가 왜 싫은데요?“”개인적으로 싫어할 이유는 없지. 착하잖아.“”그런데 왜 그러세요?“”너와 연관되는 것이 싫은 거야. 너도 온전한 환경에서 자라지 못했지만 연미는 너를 뛰어넘었어. 그 상처를 너는 절대 감당하지 못해.“ 아들 역시 부모의 온전한 사랑 속에서 자라지 못했다.자신의 욕심 앞에서도 때론 물러설 수 있는 양보와 가치관과 어긋나는 상황에서도 발휘될 수 있는 이해와 자신의 상처보다 상대의 상처를 보듬을 수 있는 사랑을 나조차 지니지 못한 그 마음을 학습시키지 못했기 때문에 아들의 됨됨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어미는 결코 허락할 수가 없었다. ”누나는 제 말에 꼼짝도 못해요. 제 트집에도 화내기 보다 이해를시키려고 한다구요.“”눈치 보며 나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지만 움츠림 속에 품은 분노가 보여.“ ”엄마의 선입견이에요.“”네가 네 삶을 사는 거니까 알아서 할 일이지만 서른 안에 네가 가정을 꾸린다면 나는 아들이 없다고 생각할 거야.“”그런 억지가 어딨어요?!“ 한동안 우리 모자의 대화는 줄다리기처럼 팽팽했다. 그렇게 또 얼마의 시간이 흘렀다. 한동안 연락이 뜸했던 아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누나랑 헤어졌어요...이번엔 진짜에요...고집이 쎄요...엄마 말대로우린 안 맞는 거 같아요. 그런데 왜 이렇게 힘이 들까요...저 잘한 거죠?’ 그동안 저희끼리 몇 번의 이별이 있었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아들의 힘겨움이고스란히 전달 되어 나 역시 마음이 편할 수는 없었다. ‘시간이 필요하겠지. 잘 이겨내. 너희는 인연이 될 수 없어. 서로에게 맞는 인연이 있을 거야.’ 아들을 위로했지만 ‘이번엔’이라고 했던 말이 귓가에서 맴돌았다. 부디 ‘이번엔’으로 마무리되길 바라는, 순간 나의 간절했던 마음이었다. 힘겨울 때면 아들은 하루에도 여러 번 연락을 해왔다. 그간 뜸했던 연락을 만회라도 하듯. 그때도 한동안 그랬다. ‘엄마 통화 가능하세요?’로 시작했던 말이카세트의 재생 테이프를 틀어 놓은 듯 같은 대화가 오고 갔었다.그리곤 또 연락이 끊겼다. 마음에 안정을 찾았나, 다행이다 싶었다. 대부분 나 혼자 해결했던 살림이지만 남자의 손이 필요할 때가 있었다.때마다 아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곤 했다.며칠째 변기가 물 내림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 어려움을 겪고있었다. 견뎌 보다가 연락이 없어진 아들에게 전화했다. ”일하는데 왜요?!“첫마디부터 퉁명했다. ”바쁘지...? 집 변기에 물이 차질 않아. 시간 될 때 잠깐 봐줄래?.“”사람 불러요. 왜 자꾸만 그런 일로 바쁜데 오라 가라 해요?“냉랭하고 시큰둥했던 아들의 말투가 여간 섭섭한 것이 아니었다.”남의 집일이야?! 사람 부르면 나도 좋지. 아영이 학원비랑 집 생활비만도쉽지 않은 엄마 사정 몰라?!“”왜 소리를 질러요?!“ 태생이 목청 컸던 제 어미에게 못지않게 퉁명한 큰소리로 아들이 말했다. ”엄마가 저한테 해 준게 뭔 대요? 저한테 보여준 게 뭐에요?!아빠랑 싸우면 죽겠다고 3층에서 뛰어내리고 손목이나 긋는 모습이나보여 줬잖아요? 저는 엄마가 아빠 험담하는 소리만 들었을 뿐이지,아빠가 저희에게 나쁘게 한 기억이 없어요!“ 생각지도 못했던 말이 아들의 입을 통해서 쏟아져 나왔다. 가슴이 쩌억, 하고갈라졌다. 표현할 수 없는 통증이 느껴졌다. 순간 입안에서 침이 바싹 말랐고 삼킬 수조차 없었다. ”뭐?!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한 거야?!“ 겨우 쥐어짜듯 뱉어낸 말이지만 그래도 그때까지는 힘을 잃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금 이 통화 스피커라 직원들이 다 듣고 있는데 왜 화를 내냐구요.“ -무엇에 마음이 상했던 것인지 그날의 아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퉁명스러웠다.-어딘가에서 띵, 하고 고무줄 끊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내 몸에 연결됐던 모든 관절의 힘줄들이 끊겨나간 듯 몸조차 가누기 어려웠다. 아들은 콩가루 가정에서 살아온 자신의 상처를 그 고통을 온전히 어미의 탓으로 만천하에 고하고 싶었던 걸까. 그 순간 밀려들던 여의도 한복판에서 벌거벗겨진 듯한 수치스러움이 나만의 것이었을까.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이 통화가 스피커였다고...? 직원들 있는 회사에서 그런 식으로 말을 했다면 나를 어미로 여긴 게 아니지. 여태 그런 마음으로...살았다고...나한테 너 같은아들 없어. 잘 살아라.,,“ 말할 때마다 마른 입안이 달라붙었다. 겨우 말을 마치고 전화를 끊었는데 울음이 터졌다. 앉아 있던 안방 침대의 벽면에 기대어 이불을 품고서 몇 시간을 울었는지 모르겠다. 울다가 지쳐서 멈췄다가 다시 울분으로 토해 낸 울음이...몸 안의 모든 피가 눈물 되어 흐르는 듯 눈에서 계속 물이 되어 흘러내렸다. 마른 입에서 꺼이꺼이 소리가 멈춰지지 않았다. ”엄마?! 왜? 무슨 일이에요?!“ 학원을 마친 고등학생 딸이 들어 왔는지 몰랐다. 그만큼 시간이 깊었는지도 몰랐다. 좀체 본 적 없는 엄마의 대성통곡 앞에서 당황한 딸이 걱정으로‘엄마’를 불렀지만 나의 울음은 멈춰지지 않았다. ”내가...어떻게 살아 냈는데...내가 너희를...어떻게 지켜 왔는데...보이면 안되는 모습...보였지만...그게 니들에게...상처였겠지만....그건 나도 미안한데...작정하고 준 상처가...아닌데...그래도...난...저희... 때문에...살아 냈는데...나한테...아빠를 험담.,,했다고...제 아빠를...원망하라고...한 적은 없지만...어떻게 그런 말을...많은 직원들...있는데서...스피커로...말을...하니...나는...이제...아들이...없어...내가...여태...뭐하고 산...거니...“ 손을 잡고 어깨를 어루만지는 어린 딸 앞에서 지켜왔던 자존심을 어쩌고 부끄러움도 없이 흐느끼며 말을 했다. 그 사이 딸이 엉망이었을 어미의 몰골을 정리하듯 휴지로 입과 눈과 볼을 닦아 주었다. 진정하라며 물이 담긴컵을 입에 가져다 대기도 했다. ”오빠가요?“흐느낌과 울분으로 두서없었을 텐데도 딸이 어이없다는 투로 말했다.”엄마...오빠가 미쳤나봐요...제 정신이 아닐거에요.“ 대학입학 전까지 딸은 내게 경어를 썼고 살가웠다. ”나는...어떻게... 살아야... 하지?...나한테..이제...아들이...없어...외가집에...뭐라고 하지...? 부끄러워서...어떻게 살지...? 살아야...하는데...난...잘 살아야...하는데...어떻게...살지?“흙탕 된 마음이 시간이 흘러도 진정이 되지 않았다. 부은 눈으로 출근할 순 없는데 눈물과 울음이 멈추지 않았다.”엄마...제가 있잖아요. 오빠가 무슨 일인지 몰라도 잠깐 미쳐서 그랬겠죠.곧 정신 차릴 거에요.“딸의 말이 위로되지 않았다.
86562
|
작성자 : 솔바람소리
|
작성일 : 2025-07-01
|
조회수 : 3,790
[시와 사진] 항아리에. 꽃심으려고 했건만 새들이. 먼저
(2)
86561
|
작성자 : 초은
|
작성일 : 2025-06-30
|
조회수 : 1,175
[작가방] 술 나눔
(14)
남편은 필요없는 물건도 누가 준다고 하면 양에 상관없이 받아서 가져온다.언제 쓸지도 모를 여행용 치약, 치솔세트나 비닐돗자리, 일회용 우비 등등~이번에는 12개들이 병맥주 두박스와 병소주 20개들이 한박스를 얻어왔다.술고래 남편은 술 못마시는 마누라를 만나 집에서는 술을 전혀 안마시는데 그걸 왜 얻어오는지 모르겠다.집안 팬트리 두곳은 이미 물건들로 꽉 차있어서 지하 개별창고에 가져다두면 좋으련만 현관에 며칠째 방치해둔 상태로 살고있었다.드나들 때마다 눈에 거슬려서 우리 동만의 단체 톡방에 나눔을 하자고 졸랐더니 왠일로 그러라고 허락을 했다.우리 동만의 단체톡방은 남아도는 물건 나눔하기에 아주 편리하다.단체톡방에 글을 올리자마자 맥주 다섯병 신청이 들어오고어떤 이는 소주 한박스와 맥주 두병을 신청했다.맥주 17병 남았다니까 한사람이 다 달라고 했다.또 한사람이 맥주 다섯병 줄 수 있냐길래 17병 가져가겠다는 사람 12병 주기로 하고 산뜻하게 끝냈다.당근 한자루, 호두과자, 음료수, 참기름이 술 대신 들어왔다. 앓던 이 빠진 듯 시원했다.남편이 언제 쓸지도 모를 물건들 얻어온 것과 당근에서 싸다고 과하게 사들여놓은 중고물품들 모조리 내다버리고 싶다.신발장에 몇년째 안신고 바라만보는 신발들 버리자고 아무리 졸라도 끄떡도 안한다.자랄 때 심한 결핍상태였던 후유증을 아직도 치료 못하는 게 안타깝다.
86560
|
작성자 : 그린플라워
|
작성일 : 2025-06-30
|
조회수 : 5,635
[작가방] 삶의 동기부여(1)
(8)
21년쯤 3월인지, 아니면 9월쯤이었을지 기억이 확실하지가 않다.하지만 며칠째 밤낮없이 비가 내렸다.해가 하늘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리기라도 한 듯 낮에도 어둑했고그렇기에 습하기만 했던 날씨만은 기억에서 뚜렷하다.비가 오는 날이면 고객들의 성향이 평소보다 까칠했기 때문에어느 때보다 긴장과 집중을 필요로 했다.오후 4시가 넘었을 무렵 화장실을 가기 위해서 일어서면서 무시했던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낯선 부재 번호를 확인하게 되었다.잘못 온 전화인가? 잠깐 든 의문이었지만 곧 신경을 끊고 업무를시작했다. 한 시간쯤이나 흘렀을까, 보조 책상 한쪽으로 치워놓았던핸드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용건이 있다면 부재중 이후라도 문자가올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의식했기에 느낄 수 있던 진동이었다. 업무 중에는 보안을 이유로 핸드폰을 사용할 수 없어서 무시했다.멈췄던 진동이 다시 울리기에 확인하니 부재중으로 확인됐던 번호였다. ”여보세요?“”엄마...저에요...“ 6년 동안 연을 끊었던 아들의 목소리였다. 심장이 내려앉았다.-귀에서 쿵, 울림이 있었다. 순간이 잊혀지질 않는다.-큰일이 났구나. 불안으로 100미터를 10초에 달린 듯 숨이 차는 듯 뛰었다. ”얘기해.“마감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었다. 밖을 나가기 어려웠다.주변을 향한 의식으로 목소리는 냉정함을 유지할 수 있었다.”엄마...연미가 죽었어요...저 **경찰서에 있는데...와 주실 수 있으세요?“”!!!.....“”엄마?“”6시10분에 퇴근하니까 이후에 통화하자.“”네...“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해서 무던한 노력이 필요했다. 아찔함으로 현기증이일기도 했다. 퇴근 후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 주머니 안에 있는 핸드폰에서진동이 느껴졌다. 동료들과 지하철역에 도착하기까지 받지 못했던 핸드폰에서3번이나 더 진동이 있었다. 확인하지 않아도 아들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낯선 사람들만 가득한 지하철에 탑승하고 나서야 4번째 진동에 통화버튼을누를 수 있었다. ”엄마...죄송해요...“”뭐가?“”이런 이유로 전화 드려서요...“”......“”엄마...?“”듣고 있어. 말해.“”저...연미랑 동거했었어요...싸웠는데 집을 나갔는데...죽었다고...아침에경찰이 찾아 왔어요...지금 경찰서에 연미 가족들이 잔뜩 와있는데...저를 죄인 취급하고...연락할 곳이 없어요...무서워요...“”때렸니?“”말다툼한 건 맞는데 때리진 않았어요... 자격증 때문에 연미가 공부하는것이 있었는데 몇 번 떨어졌었거든요. 집중하지 않아서 잔소리했고말다툼은 했지만... 마무리는 잘했어요...큰 싸움도 아니었는데...한 시간 후에 테스트하기로 했는데...제가 깜빡 잠이 들었어요.일어나보니 연미가 없어서...갈 만한 곳을 모두찾았는데 없었어요...가출을 자주 했지만 평소와 달리 불안해서어제 112에 상황을 설명하고 신고했었는데... 그런데...아침에 경찰이...연미가 모텔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고...엄마...저 어떡해요...? 무서워요...“”그럴수록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있어! 연미 가족들에겐 네가 원인제공자일 테니 힘들겠지만 뭐라고 하든 다 들어주고 때리면 맞아. 그건 성인인네 몫이야. 누가 뭐라고 하든지 정신 차리고 사실만 말하면 돼. 집에 들렀다가갈테니까...기다려.“”엄마...철영이 삼촌한테 전화해봐도 될까요?“외가에서 저를 괘씸하게 여기고 있을 것쯤은 짐작할 텐데 막다른 곳에서 찾을 수있는 것이 나와 나의 바로 밑 남동생이었나보다.”그동안 연락 끊었다가 그런 이유로 연락하면 좋은 소리 듣겠어? 그건네가 알아서 해“ 울먹였다가 진정하고 다시 울음을 터트리면서 아들이 두서는 없었지만요점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노력하는 목소리가, 그 단어들이 내게가슴으로 뇌리로 비수 되어 곳곳으로 꽂혔다. 말하는 녀석이나 듣는 어미는지옥의 한 가운데 놓인 듯 고통이었고 벼랑 끝에 서 있듯 위태로웠다. 아들이 중학교 1학년 도서부원을 하면서 1년 선배인 연미를 알게 되었다.당시에 ‘누나’라는 호칭의 아이에게 아들은 자주 무언가를 얻어먹었고차고 다니는 전자 손목시계를 비롯한 학생으로서는 과한 씀씀이의 선물들을받기도 했다.그 누나라는 아이의 오빠는 일찍이 가출을 했고 현재는 아빠와 3번째 새엄마와 살고있다고 했다. 2번째인지 3번째인지, 새엄마에게 많이 맞았고 머리가 찢겨서피도 났으며 상처가 있기도 하다는 누나는 일찍부터 아르바이트로 자신의 용돈을 벌고있다고 했다. 아들은 그 누나가 불쌍하고 예쁘고 책임감 있다고 했다.당시에 아들에게 말했다. 선배 이상의 감정을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언젠가 아들이 연미인 누나와 사귀는 중이라고했다. 결코 달갑지 않았다. 하지만 내 삶의 바탕이, 경험이 오히려 강한 반대를 한다면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그렇구나.’ 덤덤히 대꾸만 했었다.아들은 분명 알고 있었을 것이다. 제 엄마가 환영하지 않는다는 것을.나의 동의하에 연미를 여러 번 집에 데려오기도 했다. 160cm가 훨씬 못미치는 키의 아이는 목소리만큼이나 몸도 가녀렸다. 어깨 아래로 조금내려오는 검은 머리의 작은 아이는 내 앞에서 눈도 제대로 맞추지 못했고천상 여자처럼 조신했다.연미는 제 아빠가 얼마 전부터 함께하게 됐다던 4번째 새엄마와 공주로 내려가서밤 농사를 짓게 됐다고 했다. 가출했다던 2~3살 터울의 오빠는 일찍이가정을 꾸려서 아빠가 됐고 간혹 만나기도 한다고 했다.현재는 혼자 서울에 남아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다고 했다. 제일 의지가되는 고모에게서 김치와 같은 반찬들을 얻어먹고 있다고 했다.차차 연미의 방문이 있을 때마다 만들어 놨던 반찬들을 챙겨주게 되었다.내 아이들의 옷을 살 때 간혹 연미의 옷을 구매해서 입히기도 했다.하지만 직장 내 숙소에서 기거하는 아들이 한 달에 몇 번 들르는, 거의분가에 가까운 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연미와 들를 때마다 둘에게 했던당부를 일깨우듯 나는 냉정함을 유지했다. ”성인이지만 니들 아직 어려. 서로에게 책임질 행동은 하지 말고예쁘게 만났으면 좋겠어. 엄마는 아빈이 네가 서른이 될 때까지 누구와의결혼도 허락할 수 없어. 각자 열심히 살면서 경제력을 키워. 그때까지너희 사이가 변함없다면 결혼도 허락해. 하지만 그 안에 아이가 생긴다거나하는 우려했던 상황이 벌어진다면 엄마는 너를 보지 않을 거야.“
86559
|
작성자 : 솔바람소리
|
작성일 : 2025-06-29
|
조회수 : 6,500
[시와 사진] 새로운 눈
(1)
설계란. 문제를 바라보는 새로운 눈을만드는 일이다
86558
|
작성자 : 자부자
|
작성일 : 2025-06-29
|
조회수 : 1,619
[작가방] 테스트라 안보셔도 되요.
(8)
해피콩이 아닌 예전에에세이에서 '일상 속에서'로 시작해서 누군가에게선물로 받은 닉네임 '솔바람소리'로 썼던 글들은 찾을 수 있었지만작가글방으로 옮겨서 썼던 글들은 찾을 수없더라구요.회원가입을 다시 했던 상황이라 반신바의하며 글쓰기 시점에서 예전 방제가보여지기에 혹시나 하고 시험삼아 점만 찍어서 올려보니다행히 글들이 보여지네요.일기장 보듯 지난 날을 돌이켜 보고 싶어서 찾았습니다.
86557
|
작성자 : 솔바람소리
|
작성일 : 2025-06-28
|
조회수 : 8,221
[에세이] 아 옛날이여 (13)
(16)
참으로 고얀지고.도대체 내가 무슨 못된 짓을 했더란 말이냐.알고는 남을 속인 적도 없거니와 모르고도 남한테 폐가 갈 일을 한 기억이 없는데.그런데 왜 이리 몸을 그냥 내버려두지를 않는지.아니, 어제까지 깜쪽같던 몸둥아리가 새벽이 되니 갑자기, ''아악~!''소리가 절로 나오니 기절을 할 수밖에. 시간이 지나도 도통 통증이 가시지를 않는다. 희얀하고 얄궂다.우선 진통제라도 맞고 통증을 멎게 해 달라고 애원을 했다.내가 아는 상식으로는 이건 정형외과 소관이다. 아침도 거르고 절뚝거리며 단골정형외과를 찾았다.대형병원은 차례가 가지 않을 것 같았는데, 좀 더 큰병원으로 보내주니 것도 고마운지고.그새 진통제 효과가 멎는가 보다. 다시 진통제로 달래고는 MRI를 찍고 통 속에서 나오니 몸이 가뿐하다.디스크협착증이란다. 것도 너무 심해서 수술을 할 단계가 지났다나? 내 상식으로는 수술을 그렇게 쉽게 맡기고 싶지가 않았다.누구는 운동으로 다스크를 달랬다고도 하지 않던가.나도 한 번 도전해 보자. 남들 하는데 나라고 못하겠어?디스크수술이 잘 되면 몰라도 반드시 잘 된다는 보장이 있겠는가?막내딸 아이에게 부탁을 하고 아들에게 부탁을 해서 디스크협착증에 좋은 운동법을 모았다."일단 병원 가셔서 통증부터 잡아달라고 하세요. 운동은 제가 찾아볼게요." 서둘러 주는 건 막내딸이다."그렇잖아도 바쁜 너희들에게 미안하다 ㅜㅜ"''미안하긴요. 자꾸 미안해하지 마세요. 놀거나 나쁜 짓하다가 그렇게 된 것 아니고, 이제껏 고생하셔서 그렇게 되신 건데요 ㅠㅠ.''''특별히 호강시키며 키우지도 못했으니 고생했다 소리도 못하겠다ㅜㅜ."''엄마. 왜 자식들을 못된 자식들로 만드세요.''''아무도 그렇게 생각하는 형제들 없어요.''"그리고 오늘 반찬 한 군데서 더 갈 거예요. 반찬이 시원찮은 것 같아서...."우리 반찬을 전담한 막내딸이다.아이들에게 자꾸만 짐만 지우는 것 같아서 맘이 편치 않다.''이만만해도 엄마가 복에 겨워서... 아무튼 고맙다. 잘 먹을 겨."정말 복에 겨워서 아이들에게 어리냥을 부리는 걸까?밉다. 내가 생각해도 오늘은 내가 정말, 몹씨도, 대단히 밉다. 중학교 3학년때 수학여행 가서 숙소에서 식사를 하는 중입니다. 아~. 정말 그때가 그립습니다.
86556
|
작성자 : 만석
|
작성일 : 2025-06-28
|
조회수 : 2,350
[작가방] 직장에서
(8)
퇴사 전까지 은행권 카드사의 텔레마케터 마케팅부서에서 7년가량 있었다. 120명가량씩 4개의 업체가 경쟁하는 구조였다. 부서마다 시간별로 순위가메신저로 전달됐다. 2개의 모니터로 고객의 기본정보를 확인하면서 주어진 업무의 가입을 시켜야 했다. 업체 순위와 실적 순위로 급여가 정해졌다. 일별로 현금이나 상품권이 주워지는 프로모션도 있었다.금강원이나 정보 보호법을 준수하면서 실적을 올려야 했다.한 달을 시작하는 첫날이면 QA라고 해서 지난 달에 규칙을 준수해서 업무를 했는지개인별로 무차별적 날짜에 녹취록 평가에 대한 점수가 전달됐다. 입사 초기엔 상의권자들의 QA가 낮은 것이 당연시되기도 했었다.업체 순위를 빌미로 업무시간 20분 초과근무가 비일비재하기도 했다.나이 어린 팀장이 업무 중에 제 엄마뻘인 팀원에게 큰소리로면박을 주는 것이 묵인되기도 했다. 모두 뒤에서 투덜거릴 뿐 나서서뭐라는 사람도 없었다. 용납이 쉽지 않은 환경이었다. 면접을 이유로 또래로 보이는 매니저와 마주했을 때 여러 질문에막힘 없이 대꾸했다. 면접이 끝날 무렵 매니저에게 말했다. ”저 역시 이곳을 면접 중입니다. 카드사 마케팅은 처음이라 배우기까지는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겠지만 일방적이지 않았으면 합니다. 믿고 따를 수 있는 곳이라면 욕심만큼 타의 모범적으로 일할 자신 있습니다.“ 당시 매니저는 놀란 눈을 감추지 못했었다. 입사 이틀 후부터 나의 이름은 상위권에 있었다. 20일쯤 됐을 무렵,풍문으로 듣던, 동료들이 제일 꺼리고 어려워하던 부서로 옮기라는 팀장의통보가 있었다. 갑작과 당황이 뒤섞여 화를 부추겼다. ”매니저께 분명 말씀드렸어요. 일방적이지 않길 바란다고. 이제 업무가 익숙해졌는데 내 의사는 묻지도 않고 옮기라니, 이런 식 통보면 못 다녀요.“”협박하세요?“”협박으로 들려요? 여태 살면서 입 밖으로 내뱉은 말을 어긴 적이 없습니다만!“주변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되받아치니 팀장이 말을 더듬었다.”...저야 **님 같은 분이 팀에 있어 주시면 좋죠. 하지만 **부서의 부매니저님이 **님 같은 분이 필요하다고...하셔서...우선은 가서 해보시고 못하겠으면 다시 옮겨 달라고 해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결국, 업무 난이도가 높은 곳으로 옮기게 됐다. 결과를 만들어 내고 그만둘지언정 어렵다는 이유로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보름 정도 업무를 파악하기까지 부매니저겸 팀장과 몇 번의 부딪힘이 있었다. 고객 응대에 도입이 길다, 포기가 빠르다, 스크립트 순서 대로 해야 한다, 등등...두 번은 수긍했지만 결국 참을 수가 없었다. ”어느 장단에 맞추라는 거에요? 고객 성향과 능력이 전산으로 보이는데 쓸데없이 잡고 있어요? 나도 귀가 있는데 다른 사람들은 지금 스크립트 준수하며 일하고 있는 거 맞아요? 실적 올리라면서 사사건건 트집이고!여긴 인격도 없어요? 팀장이라는 사람들이 업무 분위기조성은 못 할망정 고객하고 통화하는데 강압적으로 팀원 잡는 소리 때문에 해드셋 가리면서 일하는 게 맞는 거냐구요!“ 팀장과 몇 번의 실랑이가 있었다. 그 후 관리자들은 나를 건들지 않았다. 실적을 이유로 QA를 포기한 적이 없었다. 업무시간을 5분씩 일찍 시작하고QA를 준수하는 내게 동료들이 탓하기도 했다. 상의권자가 모인 부서라 대부분 성향과 자부심이 강했다. 물론 텃새도 심했다. 쉬는 틈틈이 저들끼리 모여서 수다를 떨었고 간식을 나누기도 했다. 듣고 싶지 않아도 들리는 그들 수다의 대부분은 능력 있는 남편과 학벌 좋은 자녀들이 있었고 몇 채의 건물들을 소유하고 있었다. 들고 다니는 가방과 옷은 몇 달의 급여로도 구입하기 어려운 명품브랜드라고 했다.집에 있기가 무료해서, 해외여행 경비나 쇼핑의 충당을 이유로 직장을 다닌다고도 했다.그들의 허세와 텃새는 생계를 쫓는 나의 멘탈에 1도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상위권 중에 QA 만점은 4업체 중에서 나만이 유일했다.업무 2시간 전에 출근했고 20분 추가 업무를 참여한 적도없었다. 정확하게 칼퇴를 지켰다. 나의 험담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차차 그 말을 전해주면서 가까이 다가오는 사람들도 있었다.오히려 경계가 되는 그들에게 말했다. ”나라님도 욕먹는 판에 전들 별수 있나요? 하지만 몰라도 되는 말 전해주는 것이 감사하지는 않아요..“ 초반에 더욱 경우에 어긋나는 상황에 있어서 지위, 나이, 성별을 막론하고 앞에서 짚고 넘어갔다.나는 입사 6개월 만에 우수사원 표창장을 받았다. 이례적이라고 했다. 달에 한번 매니저가 우수사원들에게 밖에서 점심을 제공했다.나는 때마다 식사가 끝나면 불필요하게 앉아 있기 싫어서 먼저 가겠다며 일어서곤 했다. 시간 틈틈이 정서 안정에 도움이 될만한 독서를 했고 점심과 오후 휴식시간에는1층부터 15층 건물을 올라다녔다. 나의 루틴에 어긋남이 없었다.오히려 통화가 길어져서 쉬는 시간을 놓쳤을 경우에는 팀장이”계단 다녀오셔요~!“ 제의를 했다. 언젠가 매니저가 내게 말했다. ”처음엔 **님이 저를 무시하나 했어요. 하지만 늘 정확하시고 시간을 허투루 쓰시지 않는 분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대단하세요,“ 7년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다. 타 업체에서도 나의 업무녹취가 교육자료로 쓰였다. 신입사원이 들어오면 동석으로 조언을 해주기도 했다. 점차 추가 업무가 사라졌고 실적을 이유로 무시됐던 상위권자들의 QA가 강화됐다. 관리자의 언행도 신중해졌다. 거르면서 친해진 동료들도 여럿 생겼다. 해마다 카드사에서 하위권 업체를 줄이거나 인원을 감축시켰다. 쳇봇이 도입되면서부터 예상은 했었던 부분이다.4업쳬가 3업체로 감축되었고 남았던 3곳의 업체마저인원을 반이나 감원하더니 현재는 한 업체만 마케팅 업무를 이어가고 있다.그것도 20여명 남짓 남았을 뿐이다. 나만의 삶에 대한 틀을 잡았고 어긋나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에게 가했던 챗직이 곳곳에 멍을 남긴듯하다. 잘 살아왔다고 자부했던 것들이 결국 자만이었고 아집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닫게 된 몇 가지 이유가 어쩜 나는 모래 위에 성이 아닐까, 싶다. 아직 꺼내지 못한, 결국은 꺼내 놓게 될 나의 이야기가 버겁다.
86555
|
작성자 : 해피콩
|
작성일 : 2025-06-27
|
조회수 : 2,630
[작가방] 친할머니
(12)
최근까지 친할머니에 대한 기억은 키가 많이 크시고 서구적 미인이에다 늘 책을 가까이 하시고 손주들에게 재미있는 옛날이야기를 해주시던 분이셨다.16세에 시집을 오실 때 이미 골초시라 허리춤에 곰방대를 차고 몸종까지 거느리고 거창하게 등장하셨다고 했다.친정이 어마무시한 부잣집에서 양반에다 전답도 많은 고래등같은 기와집으로 시집을 오셔서 몇년은 손끝에 물 안 묻히시고 사셨단다.그러다가 할아버지께서 아버지 어릴 적부터 수수꺼꺼대같은 뻣뻣한 마누라 버리고 기생들과 친하게 지내면서 딸도 하나 낳는 바람에 집만 남겨놓고 가산을 탕진하고 할아버지께서는 일찌감치 생을 마감하셨다.그 화를 엄마가 고스란히 뒤집어썼다.할머니께서는 지독한 이기주의자로 아버지는 군 복무 중이시고 먹을 것이 떨어지면 6살짜리 딸도 저버린 채 친정으로 가셔서는 기약없이 쉬다가 오셨단다.할머니는 기생이 낳아 버리고 간 큰고모가 아홉살 때 젖먹이 간난쟁이 작은고모도 나몰라라하고 친정에 가시면 큰고모는 쌀을 끓여서 작은고모 입에 넣어서 키우셨단다.엄마는 그런 시어머니에 동네에 소문난 이간질에 싸움쟁이 작은고모에 사촌시누까지 함께 사시면서 다섯아이를 키우셨으니 오죽 했으랴마는 시어머니의 만행을 최근까지 함구하고 사시다가 슬슬 풀기 시작하셨다.엄마 당한 건 이루 말을 할 수가 없다.인간이 인간에게 차마 그럴 수가 있나 싶을 정도다.서울에 갓 취직해서 언덕배기 단칸방에서 물 길어먹고 살던 시절 손녀가 태어났는데 아버지도 시골서 잠깐 오신 할머니도 물을 길어오지않아 산모가 새벽에 물길러 다녔단다.먹을 것도 없이 있는 와중에 딱하게 여긴 동네사람이 닭을 한마리 산모 끓여먹이라고 주셨는데 엄마는 국물 한방울도 못 얻어드셨다고 했다.우리가 행여 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나빠질까봐 그런 일화들을 꾹 참고 사셨단다.나 또한 엄마 못지않은 시집살이를 하였으나 우리 애들은 할머니 만행을 모른다.나는 제발 언제 만날지 모르는 두 며느리에게 전철을 밟지않도록 지극히 조심할 터이다.
86554
|
작성자 : 그린플라워
|
작성일 : 2025-06-27
|
조회수 : 9,773
[작가방] 반려묘
(12)
아침에 기사를 보니 호주에서 고양이가 세탁기에 들어가서 55분동안 3천번의 회전에도 안죽고 살어났단 기사를 보았다. 병원에서 기적이란다.병원으로 옮겨 7일간의 집중치료를 받고 기적처럼 살어났다. 얼마나 무섭고 고통스러웠을까 반려묘 키우는 집들은조심해야 겠더라. 고양이들은 높이뛰어 올라가고 그러니 인덕션 쓰는집도 조심해야 한다.나같은 경우는 수동으로 마춰 빨래를 하기땜에1시간 30분을 빨래를 돌리는데.ㅎ 전자동 빨래로 돌려서 그나마 저 고양이는 살어났을거다.주인들의 부주의로 인해 말못하는 짐승들이 고통을 받음 안되지 ..개나.고양이 키우는 집들은 조심해야한다.우리도 작년에 개를 한마리 지인 집에 델다놓고 키우고있다. 시엄니가 키우겠다 작년에 델고왔다 ..ㅠ 본인몸도 추단도 하기 힘든판에 강아질 델고와 아들 며늘 신경쓰게하고..ㅠ 먼저살던 동네에 남편 지인이 단독주택 사는데 사정말하니 마당에 델다 놓으라 해서 남편이 매일가서 운동시키고 사료 사다주고 돌보고 있다.작년에 강아지로 와서 이젠 성견이 되었다.강아지땐 내가 귀여워서 울집 화장실서 목욕도 3번이나 시켜 보내고 했었다.동네서도 인기가 많았다.ㅎ 애들에게나 어른에게나 개가 순하고 귀엽게 생겨서 지금도 인기가 많단다.남편도 고기먹고 오는날 똘이거 고기를 몇점 챙겨다 주고 온단다. ㅎ 남편이 개 이름을 똘이라고 지어 그리 부른다.
86553
|
작성자 : 살구꽃
|
작성일 : 2025-06-27
|
조회수 : 10,010
[시와 사진] 나눔
(2)
매실청을 신랑과 담아서지인들과 친지분들께나눔을 하면 좋겠지요.
86552
|
작성자 : 자부자
|
작성일 : 2025-06-26
|
조회수 : 2,717
[작가방] 부모님과
(10)
새벽 3시 반쯤이나 됐을까? 거실에서 나의 잠을 깨우지나 않을까 나직한 부모님의 소리가 들렸다. 부모님의 하루는 시작되었다. 친정에 방문하기로 했던 일정이 취소된 후 2주쯤 지났을 때 저녁 8시 무렵.엄마에게 전화가 왔다.”딸 어디쯤 왔어?“엄마...내가 어디쯤 가야 했던 걸까?””서프라이즈로 집에 내려오고 있는 거 아니었어?“여전히 기대감에 부풀어 있던 엄마와의 통화 후 줄곧 이튿날 제출해야 하는 숙제처럼 마음이 쓰였다. 치료를 핑계로 당분간은 어렵다고 말씀드렸지만통화 종료 후 곧바로 열차표를 조회하고 6월 20일 표를 예매하게 됐다. 방문 당일, 장맛비가 시작되었다. 전날 뉴스에 폭우를 예보하며각별한 주의를 당부했다. 미루고 다시 예매한다고 날씨가 좋으리란 법이 없었기에 환부에 랩을 싸매고 우비와 우산까지 챙겨서 나섰던 여정이었다.우비를 입고 우산까지 썼지만 바람이 거셌던 탓에 젖은 신발에 양말까지축축해졌다. 하지만 숙제를 끝낸 마음은 홀가분했다. ”아빠 엄마, 안녕히 주무셨어요?“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가보니 엄마는 주방 안에서 식사를 준비했고 아빠는 벌써 작업복을 걸치고 식탁 의자에 앉아 계셨다.”왜 벌써 일어났어? 더 자지 않고.“엄마의 표정은 말씀과 달리 화색이셨다.”비가 와서 일도 못 할 텐데 여전히 일찍이도 일어나시네.“”메주콩 심은 거 새가 쪼아 먹어서 확인하고 와서 옥상에 있는 마늘 손질해야 해.“ 어느새 부모님은 3만평 이상의 땅 곳곳에서 벌써 감자와 마늘을 수확하셨고 수박과 참외, 옥수수, 오이, 땅콩을 비롯한 벼와 메주콩, 고추 등을 심은 뒤였다.아직도 시멘트 바닥 마당 한쪽에는 앞으로 심길 새싹 트인 서리태와 들깨가 잔뜩 올라오고 있었다. 집 주변엔 아기 주먹만큼 자란 사과, 배와 사과대추와 포도나무를 비롯해대파와 상추, 가지, 부추가 정갈하게 가꾸어져 있다. 예전엔 예뻤던 집이 부모님과 함께 오랜 세월을 맞고 있는 중이다.아빠는 20년 이상 이어왔던 어업을 청산하고 바닷가를 떠난 뒤 멀지 않은 곳에당시엔 멋스러웠던 넓은 전원주택을 지으셨다. 초록이 예쁜 잔디밭과 주변의화단과 취미처럼 가꾸셨던 매실이며 자두, 복숭아, 사과, 배, 포도나무를 비롯한 토마토 종류와 참외 그 외에 갖가지 다양한 것들로 자손들이 맘껏 따보고 맛볼 수 있도록 꾸며 놓으셨었다.취미로 시작했던 농사가 업이 되면서 잔디밭을 떼고 고추를 말려야 하기에 시멘트로 메꾸셨다. 그곳으로 자가용 외에 트랙터와 이앙기, 트럭이 자리했다. 과실나무 자른 곳으로 저장고를 지었고 태양열관 판을 올려놓으셨다. 집 옥상엔 지붕을 올렸고 건조기를 설치하셨다.그 후 창문을 열어 놓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시원했던 집이 더워지기 시작했다. 결국, 방마다 에어컨을 설치하게 됐던 집 안팎 곳곳으로 막을 수 없는 세월들이 잠겨있었다. 아빠는 73세 연세에도 농사짓기를 위해서 지금껏 겨울이면 2시간씩 걷기와틈틈이 팔굽혀 펴기를 하셨고 아령으로 체력을 단련을 해오셨다.나도 그런 피를 이어받았건만.3남매 중에 딸이 하나. 부모님의 아픈 손가락인 나는 동생들과 달리 지금껏 집주변 텃밭조차 들어가 본 적이 없다. 조금이나마 거들라치면 난리시다. 설거지도 좀체 시키는 법이 없으시다. 나는 부모님의 이른 새벽 식사에 동석만 했다. 나중에도 꼭 먹어야 한다는 당부를 하신 뒤 아빠는 밭으로 엄마는 옥상으로 올라가실 때 삼재 딸래미에게 가파른 옥상계단이 위험하니 따라 올라오면 죽는다시며 재차 당부엔 힘을 더 실으셨다.여전히 부모님은 딸을 걸음마 떼는 아이가 걷는 것을 지켜보는 부모님처럼움직임 하나하나에도 신경을 쓰신다.예전부터 나는 잔소리를 듣더라도 가족들이 밖에서 고된 일을 할 때면 가만히 있는 것이 미안해서 청소나 간단한 먹거리를 만들어 놓곤 했다. 그때처럼 가만히 있기에 편치않은 마음으로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질을 했다.창틀과 현관까지 쓸고 닦았던 몇 시간 동안 부모님은 또 몇 차례 내려오셔서그만하라는 잔소리를 하셨다. 아빠 곁에서 늘 함께했던 엄마의 육체의 고통이 자꾸 눈에 들어왔다. 마디마다 튀어나온 손의 관절은 수저질도 힘겨워 보였다.시술받았던 양쪽 무릎의 신통치 않은 걸음과 일어서기도 힘겨워 보이는고관절의 상태가 외면하고 싶어도 자꾸만 눈 안으로 들어왔다.최신상 세라점과 별도의 저주파 자극기와 손 안마기를 사드렸지만 별 도움안되는지 2박3일 있는 동안 사용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그런 엄마가 여전히 딸의 건강만 운운하셨다. ”돈 받고 쉬는 시간이라도 있는 직장 일하는 게 낫지. 주는 것도 없이곁에만 있으면 밖에서나 안에서나 쉴 틈 없이 부려먹기만 하는 니 아빠는내가 죽어서 관에 들어가도 끌어내서 일하라고 할 거야.“엄마의 넋두리가 애달프다.알콜 중독이 심한 아빠는 술의 힘으로 사신다. 철천지 웬수라면서도 엄마는해마다 6년근 인삼을 20채씩 구해서 9번 찌고 말려서 홍삼을 만드신다. 아빠는 여전히 홍삼 물을 맹물처럼 드신다.일 좀 그만하라는 자식들의 말에 ‘일하던 사람 일 놓으면 죽어.’라며고집이시다. 그 곁에서 두 살 어린 엄마가 더 많은 세월을 맞으셨다. ”너의 뒤엔 아빠,엄마가 있어. 힘들면 내려와라. 딸래미 굶기지 않는다“좀체 내색하지 않으려고 밝게 말해도 나의 삶의 고비들 앞에서 엄마는 변함없는말씀을 하셨다. 예전엔 그 말이 힘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가슴이 아프다. ”든든하구만. 그러려면 건강하게 120살은 사셔야지.“대꾸하지만 점점 목울대에서 뻐근한 통증이 일곤 한다. 2박 3일을 보내고 올라오던 날 일손을 돕지 못하는 딸이건만 곁에있는 것만도 위안되시는지 직장 다니는 것도 아닌데 벌써 올라가냐며못내 아쉬워하셨다. 나는 병원을 핑계로 올라왔다.어제 친정에서 보낸 택배가 도착했다.비싼 블루베리 5kg과 소포장씩 나눠 담은 얼린 양념 된 돼지고기와 소고기, 삶은 고춧잎이며 말린 가지까지 커다란 아이스박스가 빈틈없이빼곡했다. 감사와 죄송함이 뒤섞인 복잡한 요즘의 마음이다.늙은 부모님도 여전히 일에서 손을 놓지 못하고 계시고 모두가 열심히사는 것 같은데...난 자꾸만 움츠러들고 있다.
86551
|
작성자 : 해피콩
|
작성일 : 2025-06-25
|
조회수 : 3,243
[작가방] 환불해준다네요
(10)
쿠팡에 23일날 9.5세재 2개를 주문했다.로켓배송이라 담날 새벽에 온다던 물건이 주문날 11경 밤에 택배오는 소리가 나서 내다보니 물건이 박스에 담아 턱하니 문앞에 있으니 들여놓으려하니여자가 들기에 무겁다. 지난번 주문땐 하나씩 포장되서 내가 들여놓기에 그리 안무겁던데 20키로 무게를 여자가 들기엔 허리에 무리가간다. 허리도 안좋은데..ㅠ새벽에 배송이왔음 남편이 들여놓음 됐는데 남편 자는 11시 밤에 물건이 왔으니 ..ㅠ성질급한 내성격에 그걸 집으로 들여놓고 자야지 배송온걸 몰랐음 모를까..ㅠ자고 새벽에 일어나려니 안좋은 허리가 대번에 아픈거다. 간밤에 그놈의 세재 현관안에 들여놓느라 잠깐 들때 힘쓴게 허리에 무리가 간거였다.어제 남편보고 병원가자해서 피부과로 재활병원으로한바퀴 돌아왔다.허리에 주사맞고 원장님이 속까지 신경치료 할거냐 묻길래 우선 주사나 맞어보고 결정하겠다니 그러란다.주사맞고오니 허리가 좀 덜아프더니..약기운 떨어지니또 불편해서 내일이나 가서 신경치료하고 와야될난가 보다. 오늘은 나보는 원장님이 휴진이다.오늘아침에 가만생각하니 안되겠다 쿠팡고객센타에전화해서 따졌다.ㅎ 내가 이거 두번째 시킨건데 저번엔합포장이 아니고 따로포장와서 내가 집안으로 들여놓기무리가 없었는데 .합포장으로해서 보내면 이걸 여자가 들기엔 허리가 무리가서 내가 지금 병원다녀야 한다고상담사에게 좋게따졌다. 전문부서로 연결을 원하면 해준다길래 그러라고 전문부서 상담사도 죄송하다며 환불처리를 원하냐고 묻네. 아니 필요해서 시킨걸 환불을 왜해요. 앞으로 불편사항을 시정해달란 소리지요.ㅎ허리아프게해서 죄송하다며 환불해주고 세재는 쓰시면 된다네.ㅎ 그래요 .ㅎ 그래도 세재값에 비하면야내 치료비가 몇배가 더들어가지만 그래도 환불해주고세재는 써도된다니 아파서 속상한맘이 좀 위로가되네.ㅎ 전화해서 따지길 잘했다.ㅎ
86550
|
작성자 : 살구꽃
|
작성일 : 2025-06-25
|
조회수 : 12,544
[작가방] 살아가는것
(6)
능소화미국능소화다이제는 완전한 여름이다능소화꽃도 지난 비바람에 꽃이 벌써 떨어져 버렸다어제는 울딸애보다 한살어린 26살의 환우이다엄마랑만 카페통해서 아는 사이다골육종 수술하고 괜찮나 했더니 작년 폐전이되서 수술하고 항암도 다시 마쳤다고 소식을 들었다그런데 얼마전 목이아파서 갔더니 목디스크가 아닌 뇌전이였다정말 씩씩한 엄마였는데 무섭다고 할였다정말 나쁜소리 다 들었나본데 그래도 설마 설마했는데 진단받고 한달도 안되서 결국은 엄마 가슴에 묻고 떠났다고 소식을 전해왔다처음 소식들었을때 마음이 아파서 울었다남일 같지 않았다지금도 생각하니 눈물이 나온다올봄에 22살 아들 보낸 엄마 소식에도 너무 속이 상했는데에휴인명은 재천이라고 하지만 너무나 가혹하기는 하다이런 와중 딸애는 수술후 1년3개월차 추적검사를 어제 다 마쳤다이제는 목발집고 잘걸으니 내가 많이 편하게 검사를 받고 온다금식하고 가서 검사받고 잠시 금식검사 끝나고 잠시 텀이 있을때 김밥 사온것으로 점심 먹고 했다그리고 모든 검사가 다끝나고 집에 오는길 딸애가 먹고 싶다는 호랑이초밥집으로 가서 초밥을 먹고 집에 들어갔다결과는 다음주 들으러 갈 예정이다다음주 외래는 의사 3명을 만나야 한다항암의사 수술의사 그리고 심장내과의사심장내과는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아서 받아보는것이다그래도 요즘 식이요법을 좀 해서인지 좀 낮아지고 간수치도 내려가기는 하였는데그래도 검진 받으라니 받아야겠지이렇게 하루 하루 시간은 정말 잘간다딸애는 이제는 뭔가 만들어 먹는다고 부엌을 온통 어지럽히고 있지만 지가 원하는 식으로 샐러드도 해먹고 원두커피 내려먹기도 한다그래서 원두커피 내리는 그라인더 주전자도 다 사주고 하였다이것저것 해달라는것이 많이 늘어가기는 한다미피 팝업에도 가자고 하는데 비안오는날 다녀오기는 해야겠다
86549
|
작성자 : 세번다
|
작성일 : 2025-06-24
|
조회수 : 13,412
[시와 사진] 반드시
(1)
나에게 꼭. 맞는 일이 반드시 있으니 찾아라
86548
|
작성자 : 자부자
|
작성일 : 2025-06-23
|
조회수 : 3,498
[에세이] 영혼(2)
(8)
친할아버지께서 아빠 나이 5~6살쯤, 복중에 작은 아빠를 포함해서 4남1녀를 남겨 두신 채 병환으로 돌아가신 것으로 안다. 아빠와 몇 살 터울의 누나와 병약한 이란성 쌍둥이 형과 어린 남동생 둘을 남겨 두신 채. 고모는 10살이 넘은 나이에 남의 집에 식모로, 아빠는 7살쯤 남의 집에 머슴으로 보내지셨다고 했다. -아빠의 술주정 중에 기억나는 내용이 있다.”니들은 그래도 행복한 줄 알아! 나는 7살에 남의 집 머슴으로 가서 일했다. 엄마가보고 싶어서 울면 두들겨 맞고. 밥만 주면 시키는 일을 해야 했어. 형은 약하고 동생들은어렸고 니네 고모랑 나만 고생했지. 그때 내 엄마에 대한 기억이 뭔지 알어?! 달에 한 번 내 품삯 받으러 오는 날, 해질녘 돈 세는 뒷 모습...아들 고생한다는 한마디 말없이 내 품삯만 받아 갔어! 니들은 부모 있겠다, 밥 먹여줘, 학교 보내줘. 뭔 걱정이야. 공부만 열심히 하면 돼지!“- 친할머니는 오래전 돌아가신 큰아빠의 아들인 사촌 동생과 재가해서 낳은 성이 다른 삼촌과 사셨다.우리 삼 남매와 살가운 대화를 제대로 나눈 적 없는 할머니는 내려오실 때마다 호밋자루와 보자기를 들고 산이나 들로 제철 나물들을 캐러 다니셨다. 새벽 2~3시면 바다로 나가셔서 해가 져야 돌아오는 아들 내외의 끼니 걱정을 해주신 적이 없었다.며느리가 상을 봐 놓고 나가면 자신이 먹은 설거지조차 해 놓은 적이 없었다. 아빠 나이 19, 엄마 17살, 처음 살림을 시작할 때 친할머니께서 보리쌀 3말을 보태주신 것이 전부였단다.그것도 당시 재가한 할머니께서 작은 술집으로 벌이를 하며 폐병 걸린 새 남편의 뒷바라지를 했단다. 백수로 기거하는 새 남편이 끼니때마다 밥 먹으러 오는 아들 내외를 못마땅하게 여기니까 보리쌀 살 돈을 내 엄마에게 몰래 주며 앞으로오지 말라고 했단다. 재혼한 분과 사이에서 낳은 아들인 삼촌이 나와 9살 차이로 안다. 그 삼촌이 5~6살이 됐을 때 재혼한 분마저 세상을 떠났단다. 그 후 작은 문방구를 운영하는 큰아들 근처로 이사했다. 내가 3~4살쯤에 작은 서해 마을에 터를 잡은 부모님에 의해서 친할머니께 한 달쯤 맡겨진 적이 있었다. 성이 다른 삼촌의 부주의로 나는 허리를 다쳤고 결국 척추 장애 5급이 되었다. 할머니는 큰 손주가 4~5살쯤 됐을 무렵, 큰아들마저 폐병으로 떠나보냈다.한쪽 다리에 장애를 갖고 태어난 작은 손주까지 남겨 둔 채.그 상황에서 가출한 큰 며느리를 대신해서 할머니는 작은 손주를 입양 보내야만 했고 큰 손주를 떠안고 사셨다. 나는 할머니의 박복한 삶을 불쌍하게 여긴 적이 없다. 빈손으로 오셨던 할머니는 캔 나물 한 줌 내놓는 법 없이 며느리에게 받은 생선 비린내가 잔뜩 벤 두둑한 지폐가 담긴 봉투를 주머니에 넣고 옷핀으로 여민 뒤 고맙다는 말도 없이 ”간다.“며 기인에 가까울 만큼의 부피의 나물과 며느리가 챙겨준 말린 생선들이 쌓인 보따리를 이고 지고 들고차고서야 집을 나셨다. 사람이 참 뻔뻔할 수가 있구나. 친할머니를 보며 느꼈던 감정이다. 아픈데 없니? 괜찮니? 내게 물은 적 없던 할머니는 돈 밖에 몰랐다.겨울 방학 초등학교 3학년쯤 남동생과 함께 아빠가 제사 지내러 큰아빠 댁에 올라가시면서 우리를 할머니 댁에 며칠 맡긴 적이 있었다.그때 내가 지녔던 몇천 원을 잃어버린다는 명목으로 가져가셨고 돌려받은 기억이 없다.대신 시장에서 맞지도, 어울리지도 않는 작은 윗도리와 많이 컸던 골덴바지를사주셨는데 내게 가져간 돈보다도 적은 금액을 지불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작아서 자꾸 올라가는 윗도리와 커서 흘러내리는 바지를 입고 연신 끌어 내리고 추켜 올리며 할머니 손에 이끌려 집에 왔을 때의 엄마 표정이 잊혀지질 않는다. 우리 집 형편이 점차 좋아져서 집을 넓히고 선박을 키우고 땅을 늘려가면서 할머니는이런저런 명목으로 죽는소리를 했고 손을 벌렸다. 이루 말할 수 없던 여러 일 들이 있었다.큰아빠의 아들인 사촌 동생의 생활비와 기거하는 집을 구하는 것까지 부모님이신경 쓰셔야 했고 큰아빠의 제사는 지금껏 지내고 계신다.친할머니 얘기를 할 때마다 엄마는 이가 갈린다고 하셨다. 할머니가 치매로 요양원에 계실 때 아들들도 몰라보는 분이 내 엄마를 볼 때마다 멍했던 얼굴이 초점 밝아진 눈이 되어 반가워했고 손을 잡으셨단다.”**엄마 왔구나! **는 이제 안 아프니? 시집은 갔니?“생전 보인 적 없던 살가운 얼굴과 목소리로 반복적으로 물으셨단다.그런 할머니를 뵙고 올 때마다 엄마는 내게 전화로 소식을 전하셨다.”딴에는 마음에 걸렸던 건지 노인네가 나만 알아보고 네 소식만 궁금해하더라. “ 할머니는 떠나신 순간에도 부모님의 마음을 시끄럽게 하셨다.전남편의 자손들과 지인들, 재가한 남편의 자손과 그 사촌들과 지인들이 모인 장례식장에서 성이 다른 삼촌이 상주가 되어 관리하는 것을 지켜만 보셨던 고모가제사는 우리 부모님께 모시라고 했단다. 그간 참았던 엄마의 분으로 인해서 한바탕 소란이 있었고 결국 장례비용의 절반은 아빠가 지불 하셨지만 제사는 성이 다른 삼촌이 모시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치질 수술로 퇴원한 지 이틀째 되던 날내방 침대 발치에서 계셨던 할머니의 모습과 말씀이 너무도 뚜렷하다.작별을 고하는 것 같은 모습에 그래야만 할 것 같은 대답을 했지만 거짓은 없었다. 할머니를 좋아한 적이 없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원망하지도 않게 되었다.친할머니 장례가 있은 몇 달 후, 친정에서 성이 다른 삼촌의 차를 얻어 타고 온 적이있었다. 내 앞에서 늘 은연중 눈치를 보던 삼촌에게 말씀드렸다.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던 날 저를 찾아오셨을 때 ‘힘들지? 미안하다,’라고 하셨던 말씀에 더는 원망하지 않는다고 편히 떠나라고 말씀드렸어요. 그 말씀일부를 삼촌께도 하고 싶어요. 제게 더는 미안해하실 필요 없어요. 일부러 작정하고 저를 다치게 한 건 아니잖아요. 운이 없었고 주어진 팔자가 그러했기에벌어진 일이란 것을 진즉에 깨달았어요. 삼촌을 원망하지 않아요. 더는 미안해하지않으셨으면 좋겠어요.“”고마워. 조카...“ 누구보다 잘 살아내야 했기에 늘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살아왔다. 오히려 관리자가 내 눈치를 볼 정도의 근태와 실적을 보였고 동료들 사이에서도언행에 신중했고 때로 냉정했다.
86547
|
작성자 : 해피콩
|
작성일 : 2025-06-23
|
조회수 : 3,607
[작가방] 감자
(10)
남편 친구가 어제 감자캤다고 감자 2박스를 가져왔다.남편은 그래서 친구랑 만나 저녁을 먹고 들어왔다.감자가 먹고싶어서 사려다 안샀는데..ㅎ 안사길 잘했다.감자가 너무많아 1층 할머니 10개주고. 3층 부녀회장님도 10개 담아줬다.이웃과 나눠먹어야지 갑자기 감자가 풍년이 되었다.사람 심리가 뭐든지 없으면 먹고싶고 많으면 또 질려서먹기싫어진다.1층할머닌 내가 감자주니까 김장김치 2쪽을 주길래마침 김치도 없고해서 받아왔다.열무랑.얼갈이섞어 저번에 담은거 다먹어가고 조금남았는데. 김치도 담아야 하는데 날은덥고 담기싫었는데.ㅎ할머니가 주신거 다먹고 겉절이담아 먹어야겠다.오늘 또 치과가는 날이다.오늘봐서 안아프면마무리하자 그러던데..가봐야안다.피부과도 약타러 가야하는데..참말로 병원만 다니다 판나겠다.
86546
|
작성자 : 살구꽃
|
작성일 : 2025-06-23
|
조회수 : 14,428
1
2
3
4
5
제목
내용
작성자
새로 올라온 댓글
그 친구 이사가고난뒤 수년..
문칸방하면 저도 떠오르는 여..
맞아요 타고난거 같아요 그 ..
그당시 어린나이에도 그런일이..
친정어머니가 시누이라 쫒아내..
제 작은고모같은 친구가 거기..
에디슨 젓가락으로 완두콩 1..
작은 사이즈가 나와요?? 엄..
콩줍챌린지는 뭐에요? 에디슨..
저도 젓가락 고민하다가 인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