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세컨드
어쩌다가 무슨 바람이 휭 오는지 갑자기 영화를 보고 싶을 때가 있었다. 근처 사무실에 유명한영화관이 있다. 한 번에 아홉개나 동시에 상영하는 극장이다. 줄거리를 보아도 시사를 보아도 일단은 난 미국에서 제작된 것들은 옆으로 쬐려본다. 사상이 불순 해보..
63편|작가: 천정자
조회수: 1,664|2006-04-09
민들레의 권력
아마 높은데에서 부는 바람을 타고 날아 구름같이 한동안 떠 돌았다가 한자리 잡아 열고 들어온 것이 틀림없습니다. 우리 동네에선 이런 민들레가 떼로 몰려오더니 급기야 노란색 민들레가 있는 길이 온 천지입니다. 샛바람에 수분을 말리우는 대나무 뿌리 근처..
62편|작가: 천정자
조회수: 1,448|2006-04-07
호박이 열리는 나무
우리집 뒷뜰엔 오랫동안 자라온 무궁화나무가 담처럼 서있다. 한 여름엔 낮에도 새벽별처럼 반짝거리며 피는 무궁화가 그냥 매일봐도 고맙다. 뒷집에서 아마 늦봄에 호박을 심었나보다. 줄기가 씩씩하게 뻗어 올라 별보다도 더 큰 호박꽃이 무궁화보다 더 많다..
61편|작가: 천정자
조회수: 1,769|2006-04-06
표절 당하다.
나의 허락없이 늙는 여자가 도둑이다. 도둑이다. 하루의 달빛을 얼굴에 베끼다 들킨 눈빛. 창호문에 걸린 머언 별. 소리로 흐르는 바람결에 도망가는 여자를 보았는가. 늙음으로 부터..
60편|작가: 천정자
조회수: 1,587|2006-04-05
아줌마는 멀쩡하다.
친구가 직접 운영하는 카페에 나는 일년에 한 두번가는 것도 많이 가는거다. 밤에는 술도 팔고 낮에는 밥도 파는 카페인데, 나하고 술은 친하지 않으니 갈일이 별로 없다. 특히 집에 들어가면 우리동네는 한적하다 못해 오지처럼 불꺼진 시골이니 밤 아홉시는 자..
59편|작가: 천정자
조회수: 1,717|2006-04-04
겨울에 꿈꾸는 여름에게..
전 지금 겨울이 참 좋습니다. 지난 여름에 꿈꾸던 눈 내리는 마을의 겨울이었으니까요. 지금은 푸르게 시리고 여름바다가 천천히 깊어져가는 하늘을 꿈꾸어 봅니다. 저에게 한계절을 허락하신다면 꼭 만나고 싶은 여름입니다. 겨울에 꾸..
58편|작가: 천정자
조회수: 1,836|2006-04-04
그 남편이 결혼했다.
이 십년을 살았으면 충분하다고 말할 수 밖에.. 한 남자를 일년에 열두달 곱하기 이십년을 해도 몇개월이냐? 이백사십개월 곱하기 365일해도 넌 충분했다고 생각해라.... 친구가 나에게 어렵게 남편의 바람을 애기 했을때 그 말을 들은 나는 섣불리 헤어져라 마라..
57편|작가: 천정자
조회수: 2,113|2006-04-03
엘리베이터
요즘 빌딩은 계단도 숨겨놓고 설계를 하나보다. 이 삼층은 웬만하면 그냥 걸어 올라 갈 수도 있는데 비상구라고 문이 있어 열어보면 십중팔구는 문이 잠겨있다. 대게 보면 십층단위로 높은 고층빌딩은 더욱 그렇다. 옥상에 올라가고 싶어도 마찬가지다. 문은 경비실에..
56편|작가: 천정자
조회수: 1,684|2006-04-01
보고 싶었습니다.
하늘을 닮아 넓은 마음가진 당신을 보고 싶었습니다. 나를 다 알아도 내 애기 다 들어도 누구의 흉이라도 감춰주는 당신을 기억하며 보고 싶었습니다. 전화 안해도 꼭 편지를 보내지 않아도 어느 작은 우체국에서 안 보낼 편지를 마음에 담아 두었던 ..
55편|작가: 천정자
조회수: 1,757|2006-03-31
암행어사
한마디로 맨 땅에 머리 헤딩하기.. 안 그러면 집안 구석구석 뒤져서 연고판매가 끊어지면 설계사 수명은 그걸로 끝이다. 여자들이라고 했다. 아줌마들이라고 했다. 설계사라고 부르지도 않았다. 보험아줌마라고 불러주면 그나마 나은 호침이다. 저녁에 회식을 ..
54편|작가: 천정자
조회수: 2,120|2006-03-30
면접
나보고 뭘 해서든지 생활은 해야 한다고 했다. 얼결에 나 간 보험회사는 삼개월을 다니다 그만 두었다. 성질도 그렇고 우선은 영업 체질이 전혀 맞지 않았다. 단 한건의 연금 일시납으로 도로 달라는 수당을 주고도 몇 달은 살 수있는 생활비가 남았다. 남편..
53편|작가: 천정자
조회수: 1,672|2006-03-28
쪽지
이 놈의 봄만 오면 ... 괜히 가슴이 벌러덩 거리고 숨도 가쁘고 몽롱해지는 현기증이 도지니 또무슨 병이 생기는가 했다. 바람이 나면 이런가... 바람이 들어오면 그러는 건가... 낮잠은 자도 자도 부족하고, 밤에는 별처럼 말똥말똥한 눈이 되니 이런..
52편|작가: 천정자
조회수: 1,691|2006-0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