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놈의 봄만 오면 ...
괜히 가슴이 벌러덩 거리고
숨도 가쁘고 몽롱해지는 현기증이 도지니
또 무슨 병이 생기는가 했다.
바람이 나면 이런가...
바람이 들어오면 그러는 건가...
낮잠은 자도 자도 부족하고, 밤에는 별처럼 말똥말똥한 눈이 되니
이런것은 무슨 병명인가 싶었다.
잠 안오는 밤에 생각이라도 깊게 하면 좋으련만
쓸데 없이 옛날 그 옛날 아픈일만 자꾸 후벼 파지고 깊어져
웅덩이에 푹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는 불면증에 시달렸다.
방세가 밀려 주인이 오는 날에
남편은 뒷문으로 도망치고,
난 집주인의 신세한탄인지, 세 안주면 이달 안까지 방 비우라고 그 으름장을
한시간 이상 들으면 그날은 다 잔 것이다.
밤새도록 이리 뒤척 저리 뒤척 걱정이 포개어지고 쌓여지는 밤에
새벽이 훤하게 창문에 도착해도
나에겐 하루가 왔는지 갔는지 정신 못차린 시계만 잘도 돌아가고 있었다.
남편을 도로 데려가라고 시어머니에게 소리질렀더니
남편은 그 댓가로 일도 생활비도 전혀 주지 않았다.
아마 어머님이 그렇게 하라고 했는지도 모른다.
충분히 그럴 수 있는 분이고...
내 어렸을 때 단칸방에서 살았던 경험이 없었다면
견뎌 낼 수 없었던 상황이 무지막지하게 덤벼 들었다.
이상하게 난 남편에게 돈 벌어 오라고 하고 싶지 않았다.
아이들 아버지이니 책임지라고 하고 싶지도 않았다.
방세며 세금이 밀려 닥달을 당해도 난 묵묵히 당하기만 했다.
지금도 왜 그랬는지 적당하게 표현 할 말이 없다.
친정이 뒤늦게 이 상황을 알자 친정 어머니가 내려 오셨다.
나를 보고 안고 우셨다.
아이들도 외할머니가 우는 것을 보니 그제야 따라 운다.
그런데 친정 어머니가 그런신다.
그래도 살아내야 한다고 그 말을 또 하고 또 하셨다.
시집에 달려가셔 항의를 해도 얼마든지 할 수 있으련만.
사위에게 얼마든지 혼을 내실 수도 있으련만
말씀 한마디 없으셨다.
오히려 장모님 보기가 더 민망하였는 지 남편이 더 안절부절이었다.
핑계처럼 변명처럼 요즘 경제가 안좋아 일을 못하고 있다고 말도 하였다.
그 말을 듣는 친정 어머니는 조용히 한 마디 하셨다.
그래도 자네 처고 자식이네...
어려울 수록 건강해야 되니께...
오랫동안 사용하신 헝겊지갑을 열었다.
" 급하게 내려 오느라고 내 돈을 못찾았다... 자네 밀린 방세는 낼 수 있을 겨.."
구겨진 은행통장과 목도장을 사위앞에 내 밀었다.
남편은 말 없이 받지도 못하고 어정쩡한 얼굴이다.
나도 얼굴을 돌리고 앉아 있기만 하고..
괜히 아들을 부여 안고 돌아 앉으니 얼굴이 뜨거워졌다.
친정 어머닌 그렇게 아무말 없이 돌아 가셨다.
나도 잘 도착했냐고 안부 전화도 못 주었다.
얼마후에 택배로 김치한 통, 된장 한 통, 외손자 좋아한다고 자반 고등어 한 통..
남편이 나물을 좋아한다고 고사리 취나물을 바리 바리 싸서 보내셨다.
박스 맨 위에 겹겹히 접은 쪽지에
어머니는 단 한줄의 말만 적어 놓았다.
" 네가 에미니...
네가 며느리이니
네가 용서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