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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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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지


BY 천정자 2006-03-27

이 놈의 봄만 오면 ...

괜히 가슴이 벌러덩 거리고

숨도 가쁘고 몽롱해지는 현기증이 도지니

또 무슨 병이 생기는가 했다.

 

바람이 나면 이런가...

바람이 들어오면 그러는 건가...

낮잠은 자도 자도 부족하고, 밤에는 별처럼 말똥말똥한 눈이 되니

이런것은 무슨 병명인가 싶었다.

 

잠 안오는 밤에 생각이라도 깊게 하면 좋으련만

쓸데 없이 옛날 그 옛날  아픈일만 자꾸 후벼 파지고  깊어져

웅덩이에 푹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는 불면증에 시달렸다.

 

방세가 밀려 주인이 오는 날에

남편은 뒷문으로 도망치고,

난 집주인의 신세한탄인지, 세 안주면 이달 안까지 방 비우라고 그 으름장을

한시간 이상 들으면 그날은 다 잔 것이다.

 

밤새도록 이리 뒤척 저리 뒤척 걱정이 포개어지고 쌓여지는 밤에

새벽이 훤하게 창문에 도착해도

나에겐 하루가 왔는지 갔는지 정신 못차린 시계만  잘도 돌아가고 있었다.

 

남편을 도로 데려가라고 시어머니에게  소리질렀더니

남편은 그 댓가로 일도 생활비도 전혀 주지 않았다.

아마 어머님이 그렇게 하라고 했는지도 모른다.

충분히 그럴 수 있는 분이고...

 

내 어렸을 때 단칸방에서 살았던 경험이 없었다면

견뎌 낼 수 없었던 상황이 무지막지하게 덤벼 들었다.

 

이상하게 난 남편에게 돈 벌어 오라고 하고 싶지 않았다.

아이들 아버지이니 책임지라고 하고 싶지도 않았다.

방세며 세금이 밀려 닥달을 당해도 난 묵묵히 당하기만 했다.

지금도 왜 그랬는지 적당하게 표현 할 말이 없다.

 

친정이 뒤늦게 이 상황을 알자 친정 어머니가 내려 오셨다.

나를 보고 안고 우셨다.

아이들도 외할머니가 우는 것을 보니 그제야 따라 운다.

 

그런데 친정 어머니가 그런신다.

그래도 살아내야 한다고 그 말을 또 하고 또 하셨다.

 

시집에 달려가셔 항의를 해도 얼마든지 할 수 있으련만.

사위에게 얼마든지 혼을 내실 수도 있으련만

말씀 한마디 없으셨다.

 

오히려 장모님 보기가 더 민망하였는 지 남편이 더 안절부절이었다.

핑계처럼 변명처럼 요즘 경제가 안좋아 일을 못하고 있다고 말도 하였다.

그 말을 듣는 친정 어머니는 조용히 한 마디 하셨다.

 

그래도 자네 처고 자식이네...

어려울 수록 건강해야 되니께...

 

오랫동안 사용하신 헝겊지갑을 열었다.

" 급하게 내려 오느라고 내 돈을 못찾았다... 자네 밀린 방세는 낼 수 있을 겨.."

 

구겨진 은행통장과 목도장을 사위앞에 내 밀었다.

남편은 말 없이 받지도 못하고 어정쩡한 얼굴이다.

나도 얼굴을 돌리고 앉아 있기만 하고..

 

괜히 아들을 부여 안고 돌아 앉으니 얼굴이 뜨거워졌다.

친정 어머닌 그렇게 아무말 없이 돌아 가셨다.

나도 잘 도착했냐고 안부 전화도 못 주었다.

 

얼마후에 택배로 김치한 통, 된장 한 통, 외손자 좋아한다고 자반 고등어 한 통..

남편이 나물을 좋아한다고 고사리 취나물을 바리 바리 싸서 보내셨다.

 

박스 맨 위에 겹겹히 접은 쪽지에

어머니는 단 한줄의 말만 적어 놓았다.

 

" 네가  에미니...

  네가  며느리이니

  네가  용서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