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 앞에서
고난 앞에서 나진희 물이 나오지 않는 샘을 간절히 파들어 갔던 날들, 수맥이 말랐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흙탕물 같은 절망이 콸콸 넘쳤다. 빗방울 하나 볼 수 없는 지독한 가뭄이 계속 되었지만, 내 안에는 자주 장대비가 휩쓸고 지나갔다. 희..
12편|작가: 나진희
조회수: 1,860|2008-07-13
연시
연시 나진희 함부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여름 내내 푸른 잎 사이 있는 듯 없는 듯 서두르지 않는다. 붉게 무르익어 단연 돋보일때까지 풋감은 아무도 찾지 않기에 덜 익은 감은 떫은 맛만 나기에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
11편|작가: 나진희
조회수: 1,105|2008-07-13
자가치료(自家治療)
자가치료(自家治療) 나진희 기억의 문을 열고 들어가 아픈 기억을 따라 걷다 보면 거기 깊게 패인 웅덩이 하나 있다. 온전했던 마음에 생겨난 커다란 상처 처음엔 도토리만치 패였던 것이 이제 내 키를 넘는 수심 스스로 몸을 던지지는 않겠다. 바라..
10편|작가: 나진희
조회수: 892|2008-07-13
[이수익] 결빙(結氷)의 아..
결빙(結氷)의 아버지 이수익 어머님, 제 예닐곱 살 적 겨울은 목조 적산 가옥 이층 다다미방의 벌거숭이 유리창 깨질 듯 울어 대던 외풍 탓으로 한없이 추웠지요, 밤마다 나는 벌 벌 떨면서 아버지 가랭이 사이로 시린 발을 밀어넣고 그 가슴팍에 벌..
9편|작가: 나진희
조회수: 1,551|2008-06-08
깨달음 1-늦깎이 사랑-
깨달음1 -늦깎이 사랑- 나진희 오늘 아침 처음으로 나의 하얀 음모(陰毛)를 보았다. 단풍이 왜 그토록 절절히 붉은 색인지 이제야 알겠다. -시사문단 2005년 4월호- |||
8편|작가: 나진희
조회수: 825|2005-03-09
[이정하] 나무와 비
나무와 비 이정하 오랜 가뭄 속에서도 메말라 죽지 않은 것은바로 너를 기다리기 때문이다.수많은 나뭇가지와 잎새를 떨궈내면서도근근히 목숨줄을 이어가는 것은언젠가 네가 반드시 올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그대여, 지금 어디쯤 오고 있는가.껍데기가 벗겨지고 목줄기가 ..
7편|작가: 나진희
조회수: 953|2005-02-03
[노여심]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은 노여심 코를 고는 사람이 곁에 있다. 내 곁에서 삶의 긴장을 푸는 사람 그의 의식이 잠깰까 봐 몸을 뒤척일 수가 없다. |||
6편|작가: 나진희
조회수: 723|2005-02-01
[정병근] 옻나무
여차하면 가리라 옷깃만 스쳐도 발자국 소리만 들려도 너에게 확 옮겨 붙으리라 옮겨 붙어서 한 열흘쯤 두들두들 앓으리라 살이 뒤집어지고 진물이 뚝뚝 흐르도록 앓다가 씻은 듯이 나으리라 네 몸 속의 피톨이란 피톨은 모조리 불러내리라 불러내어 ..
5편|작가: 나진희
조회수: 777|2004-11-29
[김기택] 유리에게
유리에게-김기택네가 약하다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작은 충격에도 쉬이 깨질 것 같아 불안하다쨍그랑 큰 울음 한번 울고 나면박살난 네 몸 하나하나는끝이 날카로운 무기로 변한다큰 충격에도 끄떡하지 않을 네가 바위라면유리가 되기 전까지 수만 년깊은 땅속에서 잠자던 거대한 바위라..
4편|작가: 나진희
조회수: 1,693|2004-11-26
[조지훈] 병에게
병에게-조지훈어딜 가서 까맣게 소식을 끊고 지내다가도내가 오래 시달리던 일손을 떼고 마악 안도의 숨을 돌리려고 할 때면그 때 자네는 어김없이 나를 찾아오네.자네는 언제나 우울한 방문객어두운 음계(音階)를 밟으며 불길한 그림자를 끌고 오지만자네는 나의 오랜 친구이기에 나..
3편|작가: 나진희
조회수: 681|2004-11-26
[나희덕] 낯선 편지
나희덕 오래된 짐꾸러미에서 나온네 빛바랜 편지를나는 도무지 읽어낼 수가 없다열정이 사라진 자리에 건포도처럼 박힌낯선 기호들, 그 속삭임을어둠 속에서도 소리내어 읽곤 했던 날들,그러나 어두운 저편에서네가 부싯돌을 켜대고 있다 한들나는 이제 눈 멀어그 깜박임을 알아볼..
2편|작가: 나진희
조회수: 758|2004-10-29
[채필녀] 사막여자
-채필녀-저 살갖이며 피이며 삼장이며 자궁인 모래,어디를 만져도 몸이 달아, 숨이 막히는뜨거워, 벌거벗은 채 수없이체위를 바꾸는 여자팔과 다리는 바람과 함께 떠도는불구, 천형의, 일어나지 못하는 여자상상임신으로 늘 배가 둥글고젖가슴이 홀로 흔들리는 여자짓밟는발자국을신기..
1편|작가: 나진희
조회수: 648|2004-1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