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비가 내렸다. 두두둑 두두둑 빗발은 시나브로 거세어 지더니 금새 세상의 소리란 소리는 혼자 다 먹고 저 혼자의 음성으로 요란하다. 세상이 밝아오는 새벽의 시간. 혼자 깨어 듣는 빗물소리는 왠지 서글퍼진다. 저 비 뜯는 소리를 온전히 즐겼던 날이 있었다. 하루를 여..
9편|작가: furnd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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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신발이 닳아 반질반질 윤이난다. 도시를 헤메고돌아다닌 시간들이 신발축에 달라붙어 허기를 채운다. 이 도시에서 젊은 날을 보내고 이 도시에서 꿈을 키웠었다. 그 개나리 꽃 같던 시간들은 어디로 갔을까. 캄캄한 어둠을 밟아가는 귀가는 빈 놀이터 그네처럼 제 혼자 도리질을..
8편|작가: furnd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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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
봄은 짧다. 꽃이 후후 피는가 하고 돌아보면 어느 새 계절은 저 만치 앞서 간다. 그래서 봄은 언제나 아련한 꿈만 같고 겨울은 길어만 보인다. 생은 봄의 신기루에 이끌리어 나아가는 긴 겨울들이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고 산다. 손톱만한 싹이 쏙쏙 돋아오르..
7편|작가: furnd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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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
사람은 누구나 한 알의 씨앗을 품고 태어난다. 그러나 그 씨앗이 땅에 몸을 내려 한그루 묘목으로 자라나기 위해서는 온전히 나를 버려야 한다. 알을 깨지 못하면 부화할 수 없는 새처럼 하나의 세상을 지나야 하는 것이다. 온 몸으로 부딪혀 강을 지나고 산을 지나고 캄캄한 ..
6편|작가: furndle
조회수: 919
연
그랬다. 사실 모든 것이 그랬다. 우리를 옭아 맨 그 모든 것들을 인연이라 이름하며 매달렸다. 그러나 난 안다. 인연은 없다.다만 거기에는 늘겨붙은 솥단지의 찌든 때같은 게으름과 유리처럼 투명하지 못한영혼의 혼탁과어머니의 치맛자락을어린 손갈퀴로 앙 움켜잡고 떼쓰던 유아..
5편|작가: furndle
조회수: 513
은어 한 마리
차들은 쏜살같이 트럭 옆을 스쳐 지나갔다. 트럭은 제몸에 겨워 몸을 들썩였다. 그때마다 여자는 아이들의 몸을 한 손으로 감싸안았다. 질주. 끊임없이 내달려 가는 차들. 저 무서운 속도로 달려가는차들을 멈추게 할 수 있는 것은 세상속에 자신을 길들이는 것 뿐임을 깨달았다..
4편|작가: furnd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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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아이는 층계를 오르고 또 올랐다. 긴 복도를 지나고 숫자들을 짚어나가던 아이가 머문 교실, 창 으로는 환한 아침 햇살이 비치고 있었다. 아이들의 소리가 와와 들렸다. 드르륵 문을 열고 들어가자 햇빛은 순식간에 아이를 에워쌌다. 햇빛속에 갇혀 고치속에 든 애벌레처럼 한동..
3편|작가: furndle
조회수: 498
나비의 환상
아이의 남자는 키가 컸다. 늘씬한 키에 잘 다듬어진 근육들로 남자는 빛났다.그 남자는 이미 첫여자를잃어버린 실연의아픔을훈장처럼 지니고 있었다. 처음 그 남자를 만났을때 남자는 너무도 자랑스럽게 첫여자와의 이별을 얘기했다. 아이는 그런 남자가 왠지 싫지 않았다. 아니다...
2편|작가: furndle
조회수: 528
아버지
아이는 벌써 어둠이 이끼처럼 달라붙은 처마아래서 몸을 웅크리고 앉았다.겨울 발빠른 해가 꼬리를 내리기도 훨씬 전에 아이는 집에서 나왔다. 버스들이 얼기설기 늘어선 종점을 지나 나달나달 사람들의 발길에 되새김되어 만들어진 경사진 길을 따라 내려오면 그 곳에 늙수그레한..
1편|작가: furndle
조회수: 6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