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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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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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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urndle 2004-02-12

아이는 층계를 오르고 또 올랐다. 긴 복도를 지나고 숫자들을 짚어나가던 아이가 머문 교실, 창 으로는 환한 아침 햇살이 비치고 있었다. 아이들의 소리가 와와 들렸다. 드르륵 문을 열고 들어가자  햇빛은 순식간에 아이를 에워쌌다. 햇빛속에 갇혀 고치속에 든 애벌레처럼 한동안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간신히 눈을 떴을 때 빛은 감쪽같이 사라지고, 아이는 우우 아이들의 함성을 듣고 있었다. 아무리 둘러 보아도 낯익은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아이는 황급히 교실을 뛰쳐 나갔다. 복도를 내질러 달려가는 아이. 아, 그리고 보니 아이의 손에는 가방이 들려있지 않았다. 분명히 아침에 가방을 챙긴 기억이 있는데 아, 아이는 이마를 짚었다. 아이의 이마위로 송글송글 땀방울이 달렸다. 아이는 똑같은 동작을 얼마나 많이 되풀이 해야 했던가.

  그녀가 커튼을 걷어 올렸다. 아침이다. 봄햇살이 마음껏 유영하는 들판으로 농부들은 벌써 덜덜덜 거리며 경운기를 몰고 나갔을게다. 늦은 아침을 챙기며 그녀는 꿈자락을 놓지 못한다. 내내 광목자락같이  질질 끌려다녀야 했던 꿈속에서 도망치고 싶었다.그러나 그녀는 무엇에도 자유롭지 못할것임을 안다.

  남편은 아마 늦으막히 일어나 밥을 청할 것이다. 그녀는 싫은 내색없이 남편의 밥상앞을 웅크리고  앉아있을것이다. 남편은 식사할 때 그녀가 일어서는 걸 못견뎌한다. 그것은 남편에 대한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하였다. 아내가 차려준 밥상앞에서 군왕처럼 뻐기고 앉아 밥을 먹고 싶어하는 남자. 그 남자를 한때 사랑한다고 믿었던 적이 있었다. 그녀가 선택한 남자는 다름아닌 아버지의 환영이었다. 가장 증오하면서도 그러나 이미 그녀는 시간들 속을 너무도 오래 걸어왔다. 아버지가  길들여 놓은 그 많은 밥상과 그 많은 눈물과 그 많은 기다림 속을 이끼처럼 돋아난 그 질긴 미생물들을 흡입하며 걸었던 것이다. 

  한 번도 거부해 보지 못한 눈짓과 손짓과 몸짓들이 이제는 태연하게 너무도 당연한듯 벽이 되어 완강한 벽이 되어 버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