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들은 쏜살같이 트럭 옆을 스쳐 지나갔다. 트럭은 제몸에 겨워 몸을 들썩였다. 그때마다 여자는 아이들의 몸을 한 손으로 감싸안았다. 질주. 끊임없이 내달려 가는 차들. 저 무서운 속도로 달려가는 차들을 멈추게 할 수 있는 것은 세상속에 자신을 길들이는 것 뿐임을 깨달았다. 늘 엄마 손을 놓친 어린 아이처럼 허둥거리는 여자가 안주하기에 이 세상은 너무도 낯설고 두려운 곳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였다. 여자는 창밖으로 시선을 꽂은 듯 말없이 앉아있었다. 이렇게 무작정 길을 나설생각은 아니었다. 도망치듯 달아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러나 떠나야 한다는 생각을 늘 지니고 살았기에 D시로 가는 이사짐 트럭안에서 여자는 어처구니없이 용감할 수 있었다.
일요일 아침, 오랫만에 남편의 친구는 함께 식사를 하자며 전화를 걸어왔다. 부담없이 어울려 함께 시간을 보내곤 했던 그들과의 만남을 위해 집을 나섰다. 아이들은 오랫만의 외출이라 쫑알쫑알 신이났다. 남편은 차안에서 소란스런 아이들의 행동을 참아내지 못하는 성미였다. 아이들은 집을 벗어난지 얼마되지 않아 곧 둘이 티격태격 싸우기 시작했다. 여자가 아이들을 향하여 조용히 하라고 나무랬지만 그것으로 조용해질 아이들이 아니었다. 남편의 잔소리가 시작되었다. 아이들을 향하여 거침없이 내뱉는 남편의 기막힌 말들. 남편은 그 많은 욕들을 어디서 배워왔는지 장소를 구분하지 않고 썼다. 끝없이 이어지는 남편의 말을 그녀는 잘랐다. "그만해!" "그 말에 더 화가 난 남편은 아이들에게 퍼붓던 욕을 여자에게쏟아놓기 시작하였다. 불씨는 항상 그렇게 옮겨 붙었다. 늘 되풀이 되는 말들의 파편에 더 이상 가슴을 베이지 않으리라 마음먹었지만 그러나 어김없이 모든 것들을 뒤흔들고 말았다.여자는 급기야 참아내지 못하고 차를 세우라고 말했다. 여자의 남편은 차를 세웠고 여자는 큰길로 접어드는 도로가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타박타박 논둑길을 걸어 집으로 향했다. 여자는 자신에게 다짐시키듯 연신 똑같은 말을 뱉아내고 있었다. "더 이상은 안돼."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어."
아이들은 D시로 가는 길이 멀고 멀게 느껴질것임을 여자는 안다. 아이들이 참아내고 가기에는 길은 아무런 변화없이 똑같이 이어지고 굽이지고 또 이어지고 했다. 그새 밤이 장막처럼 아이들을 덮고 또 덮으리라.
그 많은 고속도로위의 차들속에서 여자는 남편의 차를 알아보았다. D시로 차마 가지 못하고 남편은 핸들을 돌려 집으로 오고 있었던 것 같다. 어쩌면 내내 여자는 남편의 차를 놓치지 않기위해 줄곧 시선을 달리는 차들속에 고정시켜두었던 것일까. 스쳐지나가는 남편의 차. 남편은 다만 평소처럼 시작된 그 하루가 다시 평범하게 소멸되어가는 것을 즐기며 집으로 돌아가고 있을것이다.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서 부를것이다. 아이들과 여자를.
비닐봉지속에는 은어 한마리 조심스레 꼬리를 흔들고 있다. 투명한 비닐속의 은어 한 마리. 다만 은어는 비닐 속에서 몸부림 치겠지만 아무도 아무도 은어의 몸짓을 몸부림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아이는 담임 선생님 부탁으로 은어를 가져가기로 하였다. 자연시간 반 아이들을 대표해서 특별히 담임선생님은 딸아이에게 은어를 가져오라고 시켰다. 아이와 만나지 못한 은어는 어떻게 될까? 여자는 은어의 비릿한 냄새라도 맡은 듯 순간 구토를 느꼈다.
남편은 텅 빈 집을 발견하고 어떤 기분을 느꼈을까? 늘 사랑은 모든 것을 참아내는 것이라고, 남자의 모든 행위들은 여자를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그렇게 입버릇처럼 세뇌시킨 여자에게 지금 남자는 무엇이라고 말하고 싶을까? 남자의 폭력이, 더 이상 대상을 만나지 못한 남자의 폭력이 다만 슬플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