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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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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의 환상


BY furndle 2004-01-25

  

 아이의 남자는 키가 컸다. 늘씬한 키에 잘 다듬어진 근육들로 남자는 빛났다. 그 남자는 이미 첫여자를 잃어버린 실연의 아픔을 훈장처럼 지니고 있었다. 처음 그 남자를 만났을때 남자는 너무도 자랑스럽게 첫여자와의 이별을 얘기했다. 아이는 그런 남자가 왠지 싫지 않았다. 아니다. 그건 변명인지 모른다. 아이는 그 남자가 문이 되어주길 원했다. 문. 도달해야 하는 문. 누구나 꼭 한 번은 통과해야하는 이쪽과 저쪽의 세상을 이어주는 문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는 그렇게 간절하게 현실을 벗어나고 싶어했다. 이미 아이도 몇 번의 이별을 겪어냈다. 사랑이라는 미명아래 앓아 낸 열병. 그 열병이 죽음같은 진실이 아니라 뱀의 허물처럼 무의미한 것이라는 것을 아이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아이는 남자의 아이를 임신했다.아이의 자궁속에서 아이가 자라났다. 아이는 더 이상 아이 일 수 없었다. 남자도 또한 아이였으리라. 더 이상 아이일 수 없는 남자와 여자가 살았다. 살을 부비며 벌레가 기어가듯 꿈틀꿈틀 살아내고 있었다. 벌레다. 곤지라운 벌레의 실체를 잊어버리고 아이는 나비가 될 수 있을거라고 믿었던 것일까. 

 잊고 싶었을까. 어머니의 삶을. 아홉살 난 계집애의 가슴에 부끄러움으로 남은 어머니의 생을 잊고 싶었던 걸까. 단 한 번도 지울 수 없었던 화인처럼 박힌 당신의 삶.  벌레의 목숨을 이어받은 또 한마리의 벌레일 수 밖에 없는 당신. 그녀와 그 남자.

 그녀는 캄캄한 어둠속에서 순식간에 살이오른 불빛들을 가만가만 지켜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