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이 닳아 반질반질 윤이난다. 도시를 헤메고돌아다닌 시간들이 신발축에 달라붙어 허기를 채운다. 이 도시에서 젊은 날을 보내고 이 도시에서 꿈을 키웠었다. 그 개나리 꽃 같던 시간들은 어디로 갔을까.
캄캄한 어둠을 밟아가는 귀가는 빈 놀이터 그네처럼 제 혼자 도리질을 한다.
작은 창으로 불빛이 흐른다. 어둠을 우뚝 밝히고 선 그 작은 창 안에 여자의 아이들이 있다.
엄마의 늦은 귀가를 헤아리고 있을 아이들.아이들 생각에 마음이 머물자 여자는 걸음을 서두른다. 더 이상 머뭇거림이 있을 수 없다. 등대불빛처럼 여자를 생의 한가운데로 이끌고 있는 창의 불빛을 따라 여자는 잰걸음을 옮겨놓는다.
문소리가 나자 한걸음에 달려나와 엄마를 껴안는 아이들. 시인을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라했나. 바람소리가, 아이들의 가슴속에서 바람소리가 난다. 마른 풀들이 서걱거린다.
여자는 늦은 저녁을 아이와 함께 먹으면서 딸아이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는다.
아이들은 새로 사귄 친구이야기와 선생님이야기에 여자의 밥상을 풍성하게 만든다.
야생의 풀같은 아이들. 단단한 땅도 금새 뚫고 뿌리내리기를 하는 아이들이 여자는 사랑스럽다. 여자가 견뎌낸 하루는 혼자만의 삶이 아니었다.그래서 여자는 안도한다.
아주 가끔 여자는 남자를 떠 올렸다. 떠나 온 섬처럼 물안개에 가려 김ㅁ김형체마저 어렴풋한 남자를 떠 올렸다. 그 남자는 부표처럼 여자의 꿈속에서 출렁였다.꿈속에서조차 그 남자를 그만 지우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