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렸다.
두두둑 두두둑 빗발은 시나브로 거세어 지더니 금새 세상의 소리란 소리는 혼자 다 먹고 저 혼자의 음성으로 요란하다.
세상이 밝아오는 새벽의 시간. 혼자 깨어 듣는 빗물소리는 왠지 서글퍼진다. 저 비 뜯는 소리를 온전히 즐겼던 날이 있었다. 하루를 여는 이 신새벽. 듣는 빗소리가 오히려 근심이 되어 뒤척이는 그녀. 마흔의 이 고개를 넘어 선 여자. 영화처럼 시간은 금새 그녀의 삶을 송두리째 삼켜 버렸다.
자연의 소리와 빛은 얼마나 찬란하고 아름다운가!
한치의 이기도 없이 순수로 돌아가 아이같은 마음으로 이 비를 반길 수 있다면 좋겠다. 그런 날이 다시 올까?
태풍때문이다. 이 비는. 어제부터 갑작스레 쏟아지기 시작한 비는 밤 내내 줄기차게 내렸다.
이 태풍을 피해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다만 맞서 싸울 수 밖에. 온 몸으로 당당하게 부딪힐 수밖에 없다. 그녀는 이 번 태풍이 또 얼마나 많은 상채기를 내고 아니 누군가의 생을를 몽땅 앗아가 버릴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가 누가 될 지 아무도 모른다. 이 태풍 속에서도 거뜬하게 살아 더 튼실한 나무로 자리매김 할 사람이 또 누구일지 그러나 어쨌든 우린 묵묵히 하루를 받아들일것이고 그리고 살아 갈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지난 밤, 한 밤중에 걸려 온 전화는 남편의 전화였다. 술에 취한 남편은 혀 꼬부라진 소리로 미안하다고 한다. 그러나 미안하다는 말조차 더 이상 그에게서 듣고 싶지 않았다. 그의 미안함은 새로운 날에 대한 약속이 아니라 습관처럼 계속 된 변화되지 못한 삶의 또 하나의 행태였기에 말이다.
남편과 전화는 그녀의 밤을 더 심란하게 만들었다. 돌아 누우며 속상해 하는 그녀의 맘을, 딸아이가 잠들지 않았는지 언제 알아 듣고는 '엄마, 아빠야?'하였다. 아이가 먼저 알아채는 엄마의 마음을 그녀는 다시 못내 미안하였다.
어둑한 문 밖으로 성큼 발을 내딛는다. 서둘러 밥을 안치고 국을 끓였다. 개운하지 못한 몸을 툭툭 털며 아이들의 아침을 준비하며 그녀는 다시 한 번 창 밖을 내다 보았다. 아직 채 어둠이 물러서지 못한 문 밖에는 플라타너스가 한치의 미동도 없이 온 몸으로 비를 맞고 있다.
플라타너스는 늘 푸른 잎을 몸에 감고 우람차다. 여전히 이 비오는 아침에도 싱그롭다. 여자의 창 앞에서 내내 그렇게 서서 여자를 지켜 준다.